BULSIK / 명문감상 [002] "일곱걸음에 시를 지어라"

in #kr-magazine8 years ago

BULSIK / 명문감상 [002] "일곱걸음에 시를 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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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판본
煮豆持作羹 漉菽以為汁
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 칭따오는 맛있는 맥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곳에는 어산(魚山)이란 바위산이 하나 있는데 이 산에 머물던 조식(曹植)은 어느 날 하늘에 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었다. 그것은 인간세상의 소리가 아닌 아주 신비한 소리였다. 조식은 이 소리를 천상의 소리, 천상범음이라 고 불렀는데, 바로 불교음악의 가장 중요한 장르 중 하나인 범패(梵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범패는 그래서 어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라시대 당나라로 유학을 갔던 진감혜소(眞鑑慧昭, 774~850) 스님은 녹차와 함께 이 범패를 한국으로 수입했다. 이 때 녹차는 경상도 하동의 쌍계사(雙磎寺)를 중심으로, 범패는 경상도 상주에 있는 장백사, 오늘날의 남장사(南長寺)를 중심으로 한국불교의 고유문화가 되었다.

조식이란 인물은 왕자의 신분이었는데 그의 형인 조비는 형제 들을 모두 숙청하고 왕권을 잡았다. 정치적인 야심은 있었으나 형 조비에게 밀린 조식은 물론 제거 대상이었다. 조비가 조식을 제거하기 위해 명분을 세운 것이 바로 글을 열심히 보니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콩 ’이란 주제로 시가 만들어지면 살려주겠으나 그러지 못하면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시의 제목도 칠보시이다. 어떻게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 그 짧은 시간안에 누군가가 띄어 준 운으로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

조비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조비에게 조식은 죽일 목숨으로 정해져 있었고 시란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식은 단숨에 시를 지어버렸다. 그것도 정확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콩’을 솥에 넣고 뜨거운 불로 끓이는데 그 불을 때는 것은 바로 마른 ‘콩깍지’란 것이다. 원래 한 부모에서 태어난 한 몸으로 형인 콩깍지가 콩인 자신을 어떻게 이렇게 죽일 수 있느냐는 강한 원망을 콩에 비유한 기가 막힌 이 시는 결국 조식의 목숨을 살려주었다.전설같은 이이야기는 실제로 전설인지사실인지 명확하지는 않다.그러나 이 이야기의 배경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들의 활동무대였던 중국의 후한시대는 불교와 인연이 많은 시대이다. 1세기 무렵, 바로 중국에 불교가 수입되었고, 당시 이 왕조의 제2대 황제였던 명제는 적극적으로 불교의 정착에 노력했기도 했거니와 11대 황제인 환제때 안세고(安世高)가 활동했다. 현장스님이나 꾸마라지바Kumarajiva스님에게 가려 일반적으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는 인도말로 된 불경을 처음 중국어로 번역했던 사람이다. 그는 고대왕국 파르티아Parthia 출신인데 파르티아는 페르시아Persia의 전신으로 오늘날의 이란Iran이니, 인도에서 온 불경을 중국어로 처음 번역한 이가 무려 1,800여년 전 인도보다 더 먼나라 출신의 승려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 시공간의 거리란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 다.

그 바로 옆 동네인 쿠샨Kushan출신의 지참Lokaksema도 바로 이 시대에 역경(경전을 번역하는 것)활동으로 중국 불경의 역사에 참여했던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후학이었던 지겸 역시도 같은 쿠샨 출신으로 할아버지 때 중국에 와서 귀화했고 그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이 때가 12대 황제인 영제때이고, 삼국지에서 동탁에 의해 폐위된 어린 황제가 바로 그 다음 대의 13대 소제이다.

조비는 후한의 14대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를 몰아내고 위 나라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그 때 지겸은 삼국의 혼란 속에서 오나라를 선택했고 손권 에게 총애를 받게 된다. 그래서 그에 의해 박사로 임명되고 태자의 스승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겸은 특별하게도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로서 이 당시의 뛰어난 유명한 역경가로 명성을 날렸다. 또한 이 때 또 한명의 역경가인 강승회 스님은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그 역시 손권의 신임을 받았다.

손권은 그를 위해서 오나라의 수도였던 지금의 난징인 건업에 건초사를 지었으니 삼국시대에 이들로 인해 오나라는 당시 중국불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후한의 성립과 함께 중국에 들어왔던 불교는 조비의 새로운 위나라의 황제 등극과 삼국의 시작과 맞물린 이 시대에 불교역사의 몇몇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조식과 조비, 이 두 형제는 바로 삼국지의 주인공, 조조의 아들들이다. 조식은 대단히 총명하여 아버지 조조의 사랑을 받았으나 왕위에서는 형인 조비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물론 그의 방종이나 추문들이 그 결과에 한 몫 했다고는 하지만.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위의 조조는 삼국 중 가장 약한 세력의 유비 삼형제에게 항상 당하면서 소설에서는 못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역사적으로야 조조는 재평가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만약 조조가 없었다면 조식이란 인물이, 혹은 그에 의한 범패란 불교음악의 한 장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 시 - 전설이든, 사실이든, 혹은 누가 지었든 - 는 어떻게 보면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 삶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모양’, 다른 ‘생각’들을, 다른 ‘기치’들을 내세우면서 서로 반목하고 사는 우리의 실태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예전 어떤 책에서 “내 주변의 다섯명만 거치면 그 사람들을 통해 우리모두가 서로 아는 사람일 수 있다”란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정말 우리들 전부가 서로 전혀 상관없는 존재들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작은 적대감이나 원망을 비롯해서 크게는 살상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를 해하고야 마는, 전체를 놓고 보면 상대를 상하게 하는것 이란 결국 제살 깎아먹기인 셈이니 혹여 어떤 이해관계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 때 이 시를 마음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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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불식 15/02(0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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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