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연재를 앞두고

in #kr-dail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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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란 제목을 붙였다가 지운다.

운 좋게 천하제일 연재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참여를 할까 말까 약 10여분 정도 망설였다. '선착순'을 제외하고 특정한 자격 조건이나 제한은 없었지만, 스스로 대회에 참여해도 될 만한 '좋은 글'을 그 기간 동안 연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왜 나는 자신이 없었을까?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기획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 준비가 덜 됐고 성의가 없다고 느꼈다.
내가 가진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다른 이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노하우도 없다. 무언가를 깊게 파는 덕후도 아닌지라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이야기 같은 건 없다.

아니다. 좀 더 솔직해지자. 애초에 글을 쓰기 위한 플랫폼으로 스팀잇을 선택했다. 쓰고 싶은 욕망은 내 안에 분명 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그렇다면 (그게 정확하진 않더라도) 쓰고 싶은 주제가 내 마음속 어딘가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도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잡기 망설여졌을까? 그것은 회피하고 싶은 내 마음에 있다. 나는 실제로 내게 좋은 일 혹은 내가 원하고 있는 일을 막 시작하려고 해 볼 때쯤 무의식적으로 도망갈 수 있는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찾곤 했다.

'너무 피곤해. 시간이 없어. 더 준비해야 해. 기분이 좋지 않아. 역시 나는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하느니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냥 포기하면 편하지 않을까? 등등...'

나는 더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가끔씩 나에게 져줄 수야 있겠지만, 내 눈에도 뻔히 보이는 비겁한 변명을 이유로 삶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정말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거나 막상 해보니 실제로 좋지 않다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겠지만 시작도 전에 막연히 두려워 포기하는 행위는 이제 졸업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꼭 '천하제일연재대회'를 통해서만 증명되어야 하는 당위성 같은 건 없다. 이 대회가 내 운명이라는 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내 눈앞에 기회를 두고도 평소 알고리즘에 따라 궤변을 늘어놓으며 한 발 물러서려고 하는 내게 보내는 신호일뿐이다. 운 좋게 기회가 왔고 나를 위해서 두렵지만 잡아보려 한다.


결국 내게 필요한 글을 쓰기로 했다.

무얼 쓸지 꽤 고민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시리즈로 써볼까?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연애사나 연애 관련 에세이를 써볼까? 아니면 '좋아하는 이유 시리즈'를 쓰면 기분도 좋아지고 소재도 다양해서 좀 더 편하게 연재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 그러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무언가 억지로 짜 맞추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솔직하지 않으면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가 없다.

편안한 기분으로 잠시 부담감을 지우고 생각해보았다. 요즘 내가 몰두하고 있는 건 뭐지? 내게 필요한 건 뭐지? 그건 내 감정에 대한 고찰이다. 물론 항상 해오던 일이고 지금까지 썼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감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하여 하나의 글로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때보다 지금의 내겐 그 작업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늘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글을 썼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솔직하게 쓰고 싶은 만큼만 썼다. 애초에 나를 위한 글이었기에 나 자신만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혹여 누군가 좋아해 주거나 반응해주면 두 배로 기뻤고 무관심하다고 해서 글 쓰는 걸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쓰고 싶은 글을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해서 써내려 가기로 한다.

이렇게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서도 연재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들어왔다. 왜지? 평가받는 게 두려운가? 그렇진 않다. 외면받을 것이 두려운가? 아니다. 다만 다소 공적인(?) 연재 대회에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 써 내려간 글을 출품해도 괜찮을지 스스로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줄 게 없는데도 무언가를 조건 없이 받아도 되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그래. 난 여전히 행운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불행에 익숙한 자)

사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지금이라도 참가를 포기한다고 말해볼까란 충동이 든다. 습관은 버리기 힘이 든다.

결국 던진 이상 가는 거다.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의 산출물을 갑자기 생산할 수는 없다.

난 항상 그때그때 (다만 독자를 고려하지 않았을 뿐이지) 쓰고 싶은 글을 나의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써왔다. 연재 대회에 참여한다고 갑자기 내 글의 퀄리티가 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쟁심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이런 마음으로 참가해도 될지 모르지만 역시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계속 참여해보려 한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거다. 대회에 참여하는 만큼 평소 나를 좋게 봐주시는 이웃뿐만 아니라 나를 잘 모르고 생각이 다른 분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그렇다고 그 모든 걸 글에 반영할 수 없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듣겠고 불평하지 않겠다.

부담을 담아 내 욕망을 인정하기에 연재 글을 시작한다.

부디 내가 자기만족을 위한 20개의 연재 글을 무사히 써 내려갈 수 있길 기도하며.

쓰고 나니 또 혼자 편안해진다. 자기만족 자기 치유의 목적으로 글을 씁니다.


P.S. 천하제일연제대회를 개최해주시고 스팀잇에 계속 읽고 싶은 글을 만들 수 있는 생태계 늘 노력하고 실천해주시는 키퍼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보팅해주신 것도 늘 감사하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자기만족의 글이지만 대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대회를 즐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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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망치지 말아요! 거물님의 글이 얼마나 젛은데욥 ㅎㅎㅎ 늘 감사하게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화이팅!

네 스윗파파님; 도망가지 않겠어요 ㅋㅋㅋㅋ 늘 하던대로 같이 화이팅해요. -!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_+!!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어떤 글이든 고물님 쓰던 대로 쓰시면 됩니다.^^
20개의 연재 글을 쓸 이유, 동력이 생겼다는 것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면 될 거 같습니다. 전 신청이 한 발 늦었는데, 고물님 선정되어 기쁘고 축하드립니다.ㅎㅎ

솔메님의 깔끔한 정리, 그러게요. 그저 연재글을 쓸 동력으로 삼으면 될 것을 뭐 이리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_^; 원래 판을 깔아주면 더 몸이 굳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ㅎㅎ 솔메님 지혜에 무릎을 치고 갑니다.ㅎㅎ 헤헷 감사드려요! 항상 큰 힘이 되요.

사실 솔메님 신청글보고 가능하면 양도해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ㅎㅎ 다음번 행운은 솔메님께 닿으시길:D

저랑 완전 같은 고민인데 글을 엄청 잘 써주셨네요~
추천해주신분이 쓰다보면 느는거라고 해서 용기해서 신청했는데 ;;
저야말로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신청하고 고민중이었는데
@fgomul 님 글보고 자기만족으로 해봐야 겠습니다 ^^

greenapple님도 같은 고민을 하셨다니 완전 동질감 느낍니다 ㅠ!! 맞아요. 이왕 신청했으니 이 기회로 삼아 같이 으쌰으쌰 글쓰기 연습하자고요! 쓰다보면 늘겠죠. 자기만족의 글쓰기만큼 어려우면서도 쉬운 것도 없어요. ㅎㅎ
오로지 제게 달려있는 거니깐. 그린애플님 연재 응원할게요!!

저도 이 대회(3회)를 계기로 스팀잇에 정착했습니다. 이미 글 퀄리티도 높으신데 이렇게 걱정을 하시다니...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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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7님 유경험자시군요. 걱정하지말라는 따뜻한 격려 감사드립니다. :D 좋은 밤 되시길!

글쓰기는 많이 써봐야 늘더군요. 글쓰기 책들을 보면 일단 써라, 많이 써라, 글은 머리가 아니로 엉덩이로 쓰는 거다, 글이 안 써질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써질 때까지 앉아 있는 것이다라고 조언합니다. 그 말을 반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써보니 글쓰기 고수들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더군요. 글은 일단 써야 늘더군요. 많이 써야 늘더군요. 계속 써야 늘더군요. 잘 아시듯, 저는 틈만 나면 글쓰기 생각입니다. 무언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두고는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 이 말도 저번에 만났을 때 했지. 일단 쓰시길 응원합니다. 마감의 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감의 힘은 매우 강력하고 신비롭지요. 파이팅입니다!!!

하긴 오~~래 앉아있으면 어떤 글일지 몰라도 뭔가 써지긴 써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글이든 뭐든 할수록 늘겠죠. ㅎㅎㅎ 경험에서 우러나온 응원 감사드립니다!!

저도 마감의 힘을 믿어요. 마감은 강력하지요. ㅋㅋㅋ 오랜만에 글쓰면서 마감을 간접 경험해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ㅋㅋ 나하님도 화이팅 !!

감정의 고찰이나 고민의 흔적들, 고물님이 글을 잘 쓰신다고 느꼈던 포인트들이었어요. 잘 쓰실 듯 :D

헤헷 너무 기쁜 말씀이십니다. p님의 담담한 위로가 왜 이리 따뜻할까요?ㅎㅎㅎ 평소대로 써볼게요. 감사합니다.

연재대회에서 글퀄은 각자에게 맡긴 것 같으니 그냥 쓰시던 대로 즐겁게 쓰시면 되지 않을까요? ㅎ 달변가시라 연재글 20개쯤은 그냥 채우실 것 같네요. 기대합니다.

하하하. slowdive님 저 세상에 태어나서 달변가라는 소리 처음들어봐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네 어쩔 수 없이 저의 만족을 위해 쓰던대로 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D

유려한 문장력은 제가 생각할 때 가히 스팀잇 탑이신 걸요 ㅎㅎ 화이팅~

자기를 치유할 수 있는 글이면 타인도 치유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기대할게요 :)

ㅎㅎ 그럴까요? 젠젠님 그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단 한 분이라도 마음에 와닿으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 희망을 마음에 작게 품고 시작해볼까봐요 :D

대회 참가하시는군요! 대회 기간동안 멋진 글 써주세요. 늘 그래왔듯이. :)

네. 운이 좋아 참여하게됐어요! 불이님 감사합니다. 너무 힘 주지 말고 의식하지 말고 가볼게요. 응원 감사합니다!

재밌는 글로 만나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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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 지 모르겠어요. 조금은 무겁고 보기 불편할만큼 적나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특기입니다 ㅋ) 응원말씀 감사드립니다!

‘좋아하는 이유’를 ‘좋아하는 아이유’로 착각했네요. ㅋㅋ 무엇을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의무와 짐이 아닌 즐거운 참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ㅋㅋ좋아하는 아이유.. 아이유도 좋아하긴 합니다 ㅋㅋ 혹시 아이유 팬이신가요?
네 최대한 즐겁게 맘대로 써보겠습니다.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D

꼬물꼬물님 ~하고싶은거 다해! ㅋㅋㅋㅋ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평소하시던대로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전 어쩌죠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정말 뽀돌언니 제가 마이 의지(?)하는 거 아시죠? ㅋㅋ 언니도 늘 하던대로 하면 되지 잘하면서 ㅎㅎ 우리 부담갖지 말고 즐기자고요(이러고 지금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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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ㅋㅋ

저 이 노래 너무 좋아해요 ㅋㅋㅋ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ㅋㅋㅋㅋㅋ

이 노래를 좋아하신다니... 고물님 느낌 사롸있군요ㅋㅋ

크.... 고물님 글쓰는 스타일 너무 제스타일!!

어머나 부끄러워라 ㅋㅋ 코딱지님 이러면 애정하게 됩니다 ㅎㅎㅎ

저도 글 쓰는 동안 자기만족과 치유가 가능한 수준까지 가보고 싶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