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4주 충주영성학교 훈련 및 코칭후기
기도훈련의 길잡이
목사님과 코치분들의 코칭내용입니다
동기부여
성경은 영적 세계에 대하여 말하여 주는 책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영적 세계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천사들로 대변되는 빛의 세력과 사단과 악한 귀신들로 대변되는 어둠의 세력이 사람의 영혼을 두고 피 터지는 전쟁을 하는 영적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무지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만유의 주재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십니다. 사단을 이 세상 신으로 표현한 것은 실제 이 세상 사람들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세력이 바로 사단과 악한 영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영접 기도를 하고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이 빛의 세계로 들어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를 지배하는 영이 하나님인지 사단인지가 중요합니다. 그가 누구의 자녀인지는 그의 삶과 가정에 맺힌 열매를 통해서 귀신의 지배를 받는 사람인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귀신이 지배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정신질환이나 고질병 등으로 고생하며, 특별한 병이 없어도 몹시 쇠약합니다. 그뿐 아니라 뇌를 장악해서 생각을 조종당합니다. 생각을 넣어주어서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를 보십시오. 수많은 기적을 보고 출애굽 하였지만 틈만 나면 하나님께 대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모세를 반역한 고라 자손과 250명의 무리가 땅이 갈라져서 삼킴을 당한 것을 목격하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몇 시간 안 되어 모세 너 때문에 우리 동족이 죽었다고 대들고 있습니다. @.@ 참 이해 불가한 행동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제정신들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이 미혹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구약에는 축복과 저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나오지만, 실제 사람이 왜 축복을 못 받고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게 되는지 자세히 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의 전면에 등장하자 영적 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귀신들을 쫓아내고 사람들이 삶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귀신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공격하여 고통을 주고 불행에 빠뜨리는지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명백합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 26:16~18)
사단의 권세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구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당신이 본 일과 장차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나타날 일에 증인이 되어 사람들을 구원의 강가로 이끄는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십시오!
- 영적인 눈을 뜨라
영적 세계에 대해서 실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눈에 안 보이니까요. 하나님께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하여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의 훈련을 하면서 나보다 앞서서 하나님과 악한 영의 실체를 보고 경험한 증인들의 코칭을 통해 영적 세계로 입문하게 됩니다. 귀신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악한 영들이 지레 놀라서 도망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 권세를 인하여 찬양 드립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죠.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악한 영의 실체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도망하거나 공격하면서 남기는 일정한 패턴들을 통해서입니다. 이런 단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ᄒ
그러나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의 훈련을 하면서 귀신의 실체를 경험하고, 배를 쥐어짜면서 혹독하게 하나님을 부르며 많은 시간 기도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육적인 시각을 가지고 육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면, 아직 진짜 영적인 눈을 뜬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파충류는 생존 이외에는 생각지 않습니다. 파충류는 뇌간만 존재하기 때문에 감정이 없습니다. 공포 같은 것도 모르고 오직 생존하는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포유류는 파충류보다 발달한 뇌(변형계)를 가지고 있어서 감정을 가지고 교류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뇌는 그보다 더 발달한 뇌(피질)를 가지고 있어서 분석하고 추리하고 추상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파충류는 포유류를 이해할 수 없고, 포유류라 할지라도 개는 사람이 보고 느끼고 사고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피조물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죠. 육신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이해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시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주시고 의롭다 칭해주시지 않으면 즉, 성령께서 오시지 않으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동기와 힘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설교 듣고 신앙생활 해왔지만, 여전히 육체의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하면서 내 마음이 하늘나라의 일, 영혼 구원하는 일에 꽉 차 있지 않는다면 아직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뜨이면 내 마음의 소원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 기도가 영생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깨닫게 되고, 왕의 이름을 부르게 된 이 은혜가 놀랍고 귀하며, 귀신으로부터 자유케 된 자신과 가족들을 보면서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제자, 정예용사로 살아가고 싶다는 강한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이 소원을 가슴에 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권능과 권세와 약속의 수혜자로써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라합은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족속들이 모시는 여호와라는 신에 대해 듣고 마음이 녹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족속의 정탐꾼이 자기 집에 숨어든 것이었습니다.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을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 마음 가난한 여인은 이 기회를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 모두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뿐 아니라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간 몇 안 되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겨주셔야 하는데, 배에 얼마나 힘주고 기도했느냐로 내 믿음이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 밑바탕에 하나님을 구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마음이 가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성 학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세워진 곳입니다. 성령께서 목사님께 주신 많은 약속을 이루어주셨고, 이제 우리가 순종해야 할 약속들만 남아있는데 ‘한국교회의 꺼져가는 기도의 불씨가 되어라’ ‘모세와 같은 정예용사를 양육하라’‘번아웃 되니까 동역자를 세우라’는 약속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훈련생들과 공동체 지체들을 영성 학교로 인도하신 이유는 이 약속을 이룰 사람들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고, 열망이 넘쳐야 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이루어야 할 나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 약속들이 마음에 안 와닿거나 열망이 없고, 문제해결에만 관심이 간다면, 성령이 오실 리가 없습니다. 나의 속내를 살펴보십시오. 이사야가 환상 중에 주님의 보좌 앞에서 내가 얼마나 더러운 입술로 죄를 많이 지었는지 깨달았고, 죄사함을 받은 직후, 영혼 구원하는 일에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결단합니다.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기도와 많은 회개 가운에서 이사야처럼 결단하십니까? 매일 결단하십시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이기는 실력을 갖추라
이종격투기는 서로 다른 무술의 고수가 싸워 이기는 경기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무술이 주짓수이든, 쿵후이든, 태권도이든, 복싱이든 태권도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대련해서 이기면 됩니다. 동작이 기가 막히다고 파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에 탁구 종목의 국가대표선수를 모델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은 몇 개월 동안 피나는 연습을 해서 품새만 보면 국가대표선수 뺨치는 수준으로 완벽하게 준비를 했기에 진짜 선수들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러나 이기는 실력은 없죠.
이기는 자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을 생각해봅시다. 그 유명한 손자병법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전쟁해도 위태롭지 않다.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워도 위태롭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전의 우리의 삶은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삶이라 적의 종노릇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적어도 적은 아는데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겼다 졌다를 반복합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알고 나를 부인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체를 대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내 안을 파헤쳐서 내 안에 있는 거짓되고 위선적인 모습,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마음, 말, 행동, 습관 등을 버리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중간에 버림을 받는 이유는 그의 진정한 소원이 주님을 닮는 데 있지 않아서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고 있어도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성품을 닮지 않은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 마음을 지켜라
영성 학교 훈련하러 오신 분 중에는 목요일부터 오셔서 4일을 훈련하시는 분들도 있고, 토요일에 와서 이틀을 훈련하신 분들도 있고, 주일에만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목요일부터 오신 분들이 하루만 오신 분들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물론 훈련 기간이 길면 마음을 빼앗기는 것들을 가지치기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즉 마음을 지키기가 수월한 것이죠. 내공이 쌓였다는 것은 마음을 안 빼앗기고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만 가면 남편이나 자식, 돈 버는 일이나 해야 할 일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남편을 통해서, 자식을 통해서, 돈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 자식, 돈 등 때문에 걱정과 염려와 분노가 생깁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기도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어렵습니다. 마음이 자신에게 가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아침 저녁 낮에 기도하는 행위를 떠올리며 난 잘하고 있다고 속고 있습니다. 본질은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가입니다. 오래 기도해왔어도 성령이 안 오시는 이유는 항상 내 마음이 나 자신에게 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나에게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궁금합니까? 오신 것 같으면 기쁘고 안 오신 거 같으면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도 결국 성령이 오신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마음이 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죄를 지어도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불러야지, ‘나는 역시 쓰레기 같은 자구나. 난 안되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에 오래 빠져있는 것도 결국 나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이죠. 자신을 오래 붙들고 고민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게 마음이 가난한 겁니까?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나는 먼지입니다 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냥 기도하는 기계가 되어야 합니다. 결과도 보지 말고, 상태도 보지 말고, 누가 나에게 잘 해주든지, 못 해주든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있는 것 같을 때도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을 때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말하고, 행동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