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보급 인물들은 천국에 들어갔을까? 한글을 만든 총명하고 어진 세종대왕을 비롯해서 국난에서 나라와 백성을 구한 이순신장군은 천국에 들어갔을까? 필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이 예상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셨을 것이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효심이 지극한 효녀 심청이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천국은 사람이 만든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그곳을 만든 주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천국을 만든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 마음대로 거주민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당신이 소유한 집에 누군가를 살게 한다면, 당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들이는 게 당연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의 기준을 정해놓고 하나님이라도 별수 없이, 그 원칙에 따라와야 한다고 하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극악무도하고 가증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자신들이 입법자이며 재판관이 되며 법을 시행하기까지 하는 봉건주의의 제왕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본주의라고 한다. 인본주의는 사람의 기준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진리인 성경까지도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기가 막힌 것은, 아무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답답한 심정으로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먼저 목회자부터 생각해보자. 우리네 교회의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성령의 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시다시피, 필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역 초창기에는 많은 목회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코칭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목회자의 코칭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필자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자신들이 생각한 기준이 아니면 따르지 않으려 한다. 필자가 기본적으로 요청하는 기도의 기준에 아침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1시간 이상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이 기준을 성실하게 따르지 않았다.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서 20여분 기도한 것으로 대충 때웠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자, 사역하느라고 바빠서 기도시간을 채울 수가 없었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 사역이 무엇일까? 우리네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사역이 바로 교인들을 심방하거나 예배를 주관하고 갖가지 교단행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인들을 심방을 하거나 예배의식을 드리는 것이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가? 필자가 훈련하는 기도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서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이다. 사역이란 한자어로 ‘시킨 일’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이 시킨 일이 곧 사역이다. 그렇다면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사역인가?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은 성경의 명령이 아니라,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의식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필자가 우리네 교회의 예배의식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종교적인 의식을 주관하거나 참석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을 행하는 것이다. 쉬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종교적인 행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렇게 목회자들은 사역을 빙자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피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종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신도들은 어떨까? 필자가 섬기는 영성학교 공동체 식구들은 기도에 목숨을 걸라는 훈련에 순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루 두세시간 이상 기도하는 이들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도하는 것을 목표로 훈련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기존 교회의 교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도시간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기도의 질도 중요하다. 즉 기도자리에 앉으면 기도의 내용에 송곳 같은 집중을 요구한다. 그래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기도자세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잡념에 쌓여있거나 공상을 하거나 피곤해서 졸고 있다면 시간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식구 중에는 인생이 피곤한 사람도 적지 않다. 중노동과 다름이 없는 직업이 있는 가장도 있다. 그것도 회사의 사장이나 일을 맡긴 고객의 입장에서 정성껏 일을 하느라, 다른 직원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착한 직원이나 자영업자도 있다. 그래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쫓기듯 살아간다. 가장이 이렇게 피곤해서 일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을 바라보는 아내나 자녀들의 마음이 뭉클할 것이며, 회사 사장이나 일을 맡긴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드문 사람이라는 칭찬이 입에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고강도로 일하다보니 기도시간만 되면 피곤해서 졸기 일쑤가 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희생적인 가장에 듬직한 직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보다 가족이나 사장, 고객의 사랑을 받고 싶은 사악하고 가증스런 피조물일 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하나님보다, 세상과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죄가 가장 가증스런 죄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이야 당연히 자신의 관점이나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도 사람 중심으로 판단하는 인본주의가 교묘하게 들어와서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왕 노릇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고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철석 같이 믿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천국은 예수님께서 우주의 한쪽 구석에 건설한 신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통시하시면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사람만이 죽어서도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고 살고 계신가? 아니라면 당신이 이 땅을 떠나서도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전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목회자들의 사역과 삶을 모습을 보라. 그들이 과연 천국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일컫는 자들의 모습이 이럴진대, 그 뒤를 따르는 교인들을 말해서 무엇 할까? 왜 그러지 아는가? 그들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인본주의를 따라,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사랑하고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아내와 자녀, 회사사장 그리고 고객의 칭찬을 받는 것에 만족하시고 천국은 꿈도 꾸지 마시라.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우상을 섬긴 죄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