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vador Dali Print - Christ of St John of The Cross
스페인에서 둘러볼 여행지가 정해졌다. 첫번 째 행선지는 톨레도이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기차타고 직행할 계획이다. 번잡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고 게다가 좀도둑 공포증도 있고해서 마드리드는 그냥 스킵이다. 솔직히 외모가 어리버리해서 좀도둑이 보면 짤밥이다.
톨레도-세고비아-아빌라-알바 데 토르메스-로욜라-바르셀로나 근교, 이렇게 루트를 정했다. 20여일 머무르다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바로 직행할 예정이다. 그다음은 바로 이태리이다. 여행의 후반기는 주로 베네딕토 영성 실현지로 초점을 맞추었다.
My Kind of Place: Toledo, Spain
세고비아의 로마 수로
톨레도와 세고비아는 십자가 성요한의 영성이 서려있는 곳이다. 걸어서 둘러보아도 넉넉한 고도시라고 한다. 각각의 도시에 2~3일 정도 머무르면서 시간을 보낼 작정이다. 서양 영성, 특히 가톨릭 수행 전통에서 십자가 성요한의 저서들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가르멜의 산길을 읽고 있다.
며칠 전 어둔밤을 읽고 그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불교에서는 신(神)을 믿는 종교를 외도(外道)라고 표현한다. 궁극적인 것을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 구하기 때문이다. ‘나’를 기준으로 안으로 향하면 내도(內道), 밖으로 향하면 외도(外道)라고 정의하는데 수행의 경계가 깊어지면 ‘나’라는 기준이 사라져버리는 무경계덧1가 되기 때문에 도닦음에 있어서 접근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가치의 경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神)에 대한 정의도 인격적인 신(神) 말고도 다양하다. 적어도 수행 전통에서 정의하는 궁극적인 신(神)은 종교 혹은 철학을 불문하고 이름만 다를 뿐 ‘그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덧1. 무경계는 주관과 객관의 분별이 없어지는 상태이다. 상태이지만 그 상태를 인지하는 주체는 남아있다. 이것을 ‘보는마음 혹은 주시자’라고도 표현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나’라는 의식의 범위가 무한히 확장되어 우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것을 가톨릭 수행자들은 ‘하느님과 하나(일치)’가 된다고 표현하고 대승불교 수행자들은 ‘공성空性 혹은 열반’을 체득했다고 표현한다. 무경계에서 ‘나’라는 분별이 없다면 모든 것이 ‘나’이기 때문에 ‘나’가 관계하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아프고 공감되기 때문에 절대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나’가 행하는 폭력은 바로 ‘나’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가 ‘나’에게 고통을 줄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상태는 일시적인 체험이고 영원하지 못하다. 수행자들은 이러한 무분별 경계의 일시성을 영원성으로 바꾸는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십자가 성요한은 ‘어둔밤’에서 ‘하느님에 이르는 길’의 과정(수행) 중 체험되는 정신-신체 현상들을 논리적인 언어로 차분하고 자세하게 서술한다. 경험에 의한 서술이기 때문에 그의 글 속에는 힘이 실려 있다. 마치 신라시대 원측 스님의 ‘해심밀경소’덧2에서 인용되는 불교 전통 수행자들의 경계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여 깜짝 놀랐다. ‘하느님’을 ‘공성(空性)’으로 치환하여 음미해 보았다. 각각 수행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들이 불교 수행 전통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방대하면서 좀더 치밀하고 자세한 것은 불교의 해석틀인 것 같다. 앞으로 그리스도교 초기 사막 교부들의 서적들을 차분히 읽어볼 계획이다.
그렇다고 보면 인간이 수행을 통해서 체험하게 되는 정신-신체적 경계는 공유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같다. 그래서 융은 이를 ‘원형archtype’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불교와 기타종교에서 그 원형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존재한다.
실체를 가진 존재(神)인가? 아닌 것(空性/無我)인가?
그러나 수행이 깊이 들어가면 이것도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사라져버린 무경계이기 때문이다. 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관점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실천적 행위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조화’란 바로 ‘자비’ 혹은 ‘사랑’일 것이다.
덧2. 티베트에서는 원측스님의 해심밀경소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대승 불교 수행에 대한 정리가 체계적이고 요가수행의 다양한 해석틀을 꿰뚫어 정리하여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표현한 그림에서 십자가의 의미란 무엇일까? 예수는 아래로 고개를 떨구었다. 고개를 떨구었다는 것은 겸손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십자가의 고통이라는 냉혹함에서 방향을 찾을수 없는 어두운 심연深淵/깊은 연못에 빠져들고 있다. 두렵기도 하고 체념도 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겸손함이지 절대로 비굴함이 아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늘을 품고 배가 고요히 정박해있는 호수가 펼쳐진다. 상상속의 비현실적 천국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자연의 모습이다. 그러나 고요함이 주는 평온함이다. 우리는 과연 고통속에서 평온할수 있을까?
Salvador Dali Print - Christ of St John of The Cross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천국)를 찾아 떠나가는 통도사 극락전의 그림도 생각난다. 재미있는 것이 연꽃이 그려져 있다. 연꽃은 탁하고 오염된 연못에서 홀로 아름답게 피어있다. 탁함에 물들지 않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연못을 정화한다. 이 극락전의 그림은 지옥같은 고통의 사바세계에서 연꽃같은 삶을 살아야한다는 가르침이 아닐까?
십자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순간 경험하는 고통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 향한다. 그 삶의 여정 동안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고통의 삶속에는 천국이 품어져 있다. 삶을 통해서 겪어내야만 하는 고통은 천국의 까끄라기이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정화된다. 성 요한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상징(도닦음)으로서 어둔 밤을 택했다. 감성의 정화와 영혼의 정화가 실현되어야 하는데 그 바탕이 캄캄한 밤이라는 것이다. 수행자는 도닦음을 통해서 그 고통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천국에 도달하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하여 확인하고 보니 천국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이 고통의 사바세계에 있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죽음 이후의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과 영원의 구분이 없고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닿아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하나 되는 그런 삶을 뜻한다. (중략) 내 안의 참삶은 이제 하느님의 생명과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해서 죽음으로도 파괴되지 않는 영원한 삶이다. 50가지 예수모습/안셀름 그륀
사리불은 말하기를, 내가 보기에는 이 사바세계는 험한 등성이와 깊은 구렁창이 있고 가시덤불, 자갈밭, 흙과 돌. 여러 산 등 더러운 것으로 채워져 있오.
(중략)
그때에 부처님이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니 삼천 대천세계가 즉시에 여러가지 보배로 장엄된 것이 마치 보장엄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으로 장엄된 국토와 같았다. 모든 대중은 처음 보는 일이라고 찬탄하며 자기네가 보배 연꽃 위에 앉은 것을 보게 되었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불국토가 깨끗한 것을 보느냐?
(중략)
예,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였삽더니 지금에 이 불국토가 깨끗한게 장엄됨이 활짝 드러났나이다.
(중략)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그렇다. 사리불아, 만일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여지면 이 국토의 공덕장엄을 보게 되느니라. -유마경
스페인 여행前記
프롤로그
수도원 문화의 성격
Fabada Asturiana 스페인의 순대국?
500년 이상된 스페인 수행자의 밥그릇
절벽위에 세워진 수행자들의 공동터전
동굴이 왜 수행자들의 공부방이 되는가? 자발적 고립은 양날의 칼
돈키호테에게 보여진 풍차: 일수사견(一水四見)
성모님의 염화미소?
이태리 여행 前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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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십자가의 성요한, 아빌라의 테레사, 안셀름 그륀.. 익숙한 이름들을 보니 반갑네요. 쟌느 귀용도 추천 드립니다. 톨레도에서는 템플 기사단의 흔적도 찾아 보시구요. 세고비아에는 디즈니의 숲속의 미녀에 배경이 된 성이 있답니다. 스페인 미녀도 함께 ㅎㅎ
부럽습니다. 저도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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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다 잡았군요.
이제 출발만 하면 되나요?
피터님이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실천해 나가는 것 같아서 부럽네요.
저도 스페인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축구를 보러...^^
누캄프에 정말 가고 싶네요.
피터님의 루트 중 제가 가본 곳은 톨레도 한 곳 뿐이네요. 여행이 어느새 코 앞으로 두근두근:)
다들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있죠...
요기도 조심하십셔.. 사진엔 안보이지만 사람 겁나많아서 사진찍다가 짤밥당하기 딱좋은 'ㅡ'
마음은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거 같아요
여행 잘하고갑니다
여행 일정 윤곽이 잡히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