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에 대한 단상 20
<완벽한 타인>, 소름끼치도록 치밀한 '인간 분석'
*본 리뷰는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관람 후에 볼것을 권장합니다.
불과 얼마 전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들도 리뷰했지만, 문명인의 위선적인 작태를 고발하는 영화는 제법 있어서 이 작품의 메시지 자체가 참신한 건 아니다. 게다가 저녁 식사 자리에 인물들이 모여 한 배경에서만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이 영화의 방식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데, 그런 방식이라면 이미 작년 개봉해 이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더 테이블>(2017)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모르고 산다는 메시지는 불과 얼마 전에 <서치>(2018)에서도 잘 묘사된 바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얻을 게 없을 것도 같은데 묘한 흡입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왜일까.
외부 사건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게 된 태수 수현 부부 *사진 : 다음 영화, <완벽한 타인>(2018)
1.지독한 불인정의 늪
이 영화는 문명인이 거짓의 늪에 빠져 속물이 되는 최초의 원인이 ‘인정’에 있다고 본다.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은 ‘거짓’ 때문에 발생하지만, 그전에 거짓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아서' 시작된다.
먼저 태수 수현 부부를 보자. 태수(유해진)는 법규, 윤리 같은 가치를 중시해서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작은 어긋남에도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는 항상 아내 수현을 지나칠 정도로 핍박하는데, 그것은 후반부에 그의 아내가 윤리적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으로 밝혀진다. 생각해보라. 내가 몹시 혐오하는 일을 저지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윤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윤리를 배반한 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태수가 수현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는 사실상 아내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결국 그는 ‘아내의 부재’로 인해 육체적인 불만족에 휩싸여 이를 해갈할 일탈을 자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살펴보면 태수의 일탈이 낳은 ‘거짓’은 궁극적으로 수현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그의 아내 수현(염정아)은 자신을 향한 태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록 냉담한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태수는 아내의 윤리적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쓰는 사랑의 극단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현은 애써 다른 곳에서 태수가 자신을 배척하게 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녀는 자기모순의 결과로 아내를 배척하게 된 태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태수의 성적 매력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태수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노력을 마다않는데, 그것이 내키지 않는 일임에도 하게 됨으로써 그녀 역시 ‘거짓’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들 부부가 ‘진실 게임’에서 드러난 거짓으로 고통 받게 되는 것은, 흥미롭게도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서로가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임이 드러난다. 수현은 만사 윤리 우선인 태수를 윤리배반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고, 태수는 문학을 좋아하는, 인생과 사랑의 가치를 믿는 수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을 없애버려 종국적으로 이 둘은 서로에게 완전한 껍데기만 남게 한 것이다.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게 된 석호 예진 부부 *사진 : 다음 영화, <완벽한 타인>(2018)
같은 이치로 다른 부부들 역시 같은 방식의 괴로움을 겪게 되는데, 석호(조진웅)는 마음에 상처가 있음에도 정신과 의사인 예진(김지수)의 의술을 믿지 않고, 예진은 성적 불만족에 휩싸여 있는데도 성형외과 전문의인 남편에게 가슴 수술을 의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부부의 ‘불인정’은 앞선 태수 수현 부부와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이들의 ‘불인정’은 그 시작점이 서로의 존재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석호는, 아내에게 책잡힐 문제가 많다. 그들의 결혼은 석호의 부주의로 추측되는 임신으로 이루어졌고, 아내는 이른 결혼으로 성적 자유를 빼앗겼다. 그런 가운데 석호는 해서는 안 될 금전적인 문제까지 떠안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 대한 죄의식으로 상담을 요청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 문제를 덮어두기 위해서라도 그는 ‘정신과 상담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거짓된 자위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예진은 학회에 나가 논문을 강변하는 등 자신의 인생을 가꾸는데 힘을 쏟는 진취적인 여성인데다 고상함을 즐기는 심미안까지 갖췄지만 남편과의 이른 결혼으로 자유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어려서 누려야할 자유들, 예컨대 성적 자유도 잃어버렸으며, 그 결과 성적 불만족에 휩싸임과 더불어 그녀의 딸에게도 성적으로 엄격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에 언급되진 않지만 이들 부부역시 태수와 수현의 경우처럼 섹스리스 부부로 사는 것으로 짐작되는데, 석호는 아내의 자유를 방해했다는 죄의식으로 아내를 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것이고, 예진은 본성상 성적 만족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석호가 이에 응하지 못하자 그 원인이 다른 물리적인 요소, 예컨대 그가 가슴 수술 전문의이기 때문에 웬만한 가슴(?)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가슴 수술을 감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앞서 언급했듯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고, 불만족 상황을 제공하는 남편을 끝내 자신이 개선하지 못하자 태수와 같은 방식의 ‘일탈’이라는 거짓을 떠안게 된다.
앞서 태수 수현 부부가 외부 요인으로 서로를 불인정의 연쇄로 끌고 갔다면, 여기서 이들 부부는 서로의 존재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불인정의 거짓을 낳고 만다. 즉, 이 영화는 후천적인 요인과 선천적인 요인으로 우리가 ‘몰이해’와 ‘불인정’의 장으로 나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자신의 탐욕으로 불인정의 늪에 빠진 준모와 세경 부부 *사진 : 다음 영화, <완벽한 타인>(2018)
그렇다면 준모(이서진)와 세경(송하윤)부부는 어떤가. 이들 부부의 경우는 그 자신들의 자아가 강한 자들이 ‘안정’을 빌미로 자신을 속이게 되면 어떤 파국을 낳게 되는지 설명한다. 준모는 타고난 카사노바이고, 섹스 없이는 삶을 지속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런가하면 세경은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성공에 대한 갈망이 강해서, 자신의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을 원한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그 자신의 천성적인 자질 때문에 서로를 자동적으로 무시하게 되는데, 세경은 막무가내 사업을 벌이려는 준모를 혐오하고, 준모는 자신의 성적 탐닉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세경을 혐오한다. 그러나 이들이 부부로 결합해서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세경-능력, 준모-어리고 예쁜 여자) 서로에 대한 혐오를 감춰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과할 정도로 애정이 넘치는데, 그 이면에는 두꺼운 애정만큼의 뿌리 깊은 혐오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이미 서로가 무엇 때문에 그 자신들을 원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경은 원치는 않지만 과한 애정표현에 매달리고, 준모는 무리를 해서라도 여러 사업을 벌여 돈, 즉 능력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들 부부의 ‘거짓’은, 앞선 부부들이 서로에게 그 원인이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자신들로부터 탄생하게 된다. 지나친 탐욕이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들을 옥죄는 시한폭탄이 되고만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리고 인정하지 않는 영배 *사진 : 다음 영화, <완벽한 타인>(2018)
마지막으로 영배(윤경호)는 그 자신에게는 거짓이 없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이 그를 거짓으로 이끈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성소수자는 여전히 사회에게 불인정의 대상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사회를 성소수자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그는 가장 오래된 친구들에게조차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게 됐는데, 그건 분명한 기만이자 거짓으로, 그가 겪는 거짓 역시도 결국은 몰이해에서 시작된 ‘불인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각자의 사정뿐만 아니라 이들 모두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친목’을 다지는데, 그마저도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인정할 구석이 있는’ 사람들끼리 뭉쳐 비밀을 공유하다 ‘진실게임’에서 그 부작용을 폭발시키고 만다.
이 영화는 자각과 행동의 괴리라는 모순에 직면한 현대인들의 속물근성의 원인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실마리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제공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다른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몰이해에서 비롯된 불인정. 그것이 우리를 거짓의 뫼비우스 띠로 이끈다. 이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근본적인 상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건 한 개인의 자아를 인정하고 분석하는데서 시작하며, 그 이전에 내가 온전한 자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상태를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영화의 결말이 다소 힘 빠지는 ‘현실적인’ 결말로 나아가는 이유도 가식과 위선의 늪을 탈출하는데 꼭 진실의 힘을 빌려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정녕 원하는 것, 예컨대 태수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는데도 ‘진실게임’의 결과로 ‘명분상’ 헤어져야한다면 그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듯,(결말에 그들 부부에게 ‘청신호’를 켜준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진실게임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하도록, 조심스럽게 서로를 ‘인정해나가야’ 한다. 마치 밝은 달에 가끔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그러나 달은 곧 밝아지듯이 말이다.
<더 테이블>(2017)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성. 그러나 <완벽한 타인>은 그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사진 : 다음 영화, <완벽한 타인>(2018)
- 훌륭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이 작품의 시나리오가 얼마나 치밀한지는 앞선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논리 전개에 군더더기가 없으며 소름끼칠 정도로 그 안에 내포된 내용이 낭비되는 일 없이 그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연출 부분도 이 톱니바퀴에 빠지지 않고 절묘하게 들어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영화가 배우들을 활용하는 실력이 보통을 훨씬 상회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괴테가 말했듯, ‘인간 존재의 외부’는 “사회적 조건, 습관, 소유물, 의상 등으로 변형되고 덧씌워”진다. 하지만 그러한 가면들은 오히려 “그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침투해 그의 진짜 성격을 들여다 볼 수”있게 만든다. 여기서 짐멜은 인간의 얼굴에 대해 “영혼이 명백하고 궁극적인 계시의 확고한 현상으로 결정화되는 곳은 오로지 얼굴”이라고 표현했으며, 얼굴만이 유일한, “인간의 내적 인격을 직관할 수 있는 기하학적 장소”라고 했는데, 발라즈는 “훌륭한 영화란 다성적 표현이 많은 클로즈업”이 많은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위선과 가식을 고발하는 영화라면 특히 클로즈업을 잘 활용하는 영화일수록 좋다는 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영화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강점이 있다면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을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배우의 개인 역량과 이를 내러티브로 녹여낼 수 있는 감독의 역량이 필수적인데,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영화 전체를 클로즈업으로 도배한 것이랴. <완벽한 타인>은 다양한 캐릭터를 쓰면서도 그들 모두의 표정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서사에도 완벽하게 녹여냈다.
이 영화가 배우들을 중계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배우들의 색깔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는 건 배우들이 온전히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다른 인생으로 변신했다는 걸 의미한다. ‘나 연기하고 있어!’ 보기 불편했던 한국 영화 특유의 과잉 연기는 줄어들고,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살리는 데만 집중하고 열연한다. 그래서 때로는 영화를 보는 도중 연극을 보는듯한 착각마저 드는데, 그것은 그만큼 감독이 배우들을 자유자재로 잘 활용했다는 증거다. 그건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도 무척 반가운 일이어서, 아마도 연기하는 배우들 그 자신도 매우 즐겁게 촬영에 임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에 줄곧 등장하는 상징물들도 어색하지 않고 적절하다. 각 인물의 욕구를 상징하는 물건들의 이미지 배치, 예컨대 태수의 ‘수많은 책들’, 예진의 ‘콘돔’과 ‘침실의 그림’, 수현의 ‘어두운 원피스’, 영배의 ‘회색 옷’, 준모와 세경의 ‘고급 SUV’ 등 드러나는 의상과 물건들에서부터 인물들의 독특한 행동양식까지 우리가 그들의 거짓 너머를 바라보기 이전에 이미 이미지로 그들의 진실이 빠짐없이 드러나 있다.
이 영화는 내용의 치밀함을 들여다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모두 말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이미지를 해석하는 재미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일까, 과연 이 영화는 그의 제목에 들어있는 수식어 ‘완벽한’이 아깝지 않다.
*이 영화는 <퍼펙트 스트레인져스>라는 이탈리아 영화를 리메이크 했다고 합니다. 해당 영화를 관람하지 못해 연관지어 평을 남길 수는 없으나, 소재는 해당 영화에서 따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소재만으로는 저게 뭐 재밌겠어?
이랬는데 예고편 보니 재밌어보이더라구요~ㅎㅎ
좋은 작품입니다.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수작이에요 :)
중요한 건 일단 웃기고 재밌습니다!
요즘 가장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원작을 먼저 찾아볼까... 생각중이에요.^^
원작도 함께 보고 차이점을 살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오 왠지 제 취향일듯요.
뜯어보는 맛도 있는데 나름 재미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어요 추천드립니다 :)
이런 류의 영화가 한국영화에서는 뭔가 밀도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왠지 이 영화는 보고싶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의욕만 앞서서 영화의 본질은 흘려넘긴 것들이 많았는데 이번 작품은 좀 특별했던 것 같군요.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