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kan과의 만남
나는 전등사 전통 찻집 알바생. 칸은 한국에 사찰 투어를 온 불교미술 전공 대학생. 우린 4년 전에 이렇게 만났다. 그때도 코에 안경을 걸치고 칸이 뻘줌하게 찻집으로 들어와 주문을 했다. 일본인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에게 호기심이 갔다.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서빙을 해야하는 나의 본분도 잊고 이것저것 질문을 해댔다.그러다 영화 '카모메식당'에서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 아주머니는 '자신이 좋아했던 만화 주제가를 아는 사람이면 착한 사람.' 라며 짐을 잃어버린 여행객을 기꺼이 자신의 집에 묵게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 나는 칸에게 아멜리에라는 영화를 아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나는 칸이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했고, 우리는 메일주소를 교환했다. 4년 동안 간간히 메일을 주고 받았다.
칸의 메일은 네모난 일상 속에 갇힌 내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그는 거의 일본을 떠나있었고, 네팔이나 인도 등지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공부를 하며 끝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티벳에서 불교는 정말 그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인데 자신은 '불교'라는 것을 자신의 전공을 심화시키는데만 열중하여,도구적으로 쓰고 있었구나라고 후회했다. 한번은 엊그제 봤지만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가득한 메일을 받았다. 사람이 바람에 실려 흩날리는 재가 되버린 것과 그 재를 담았던 항아리의 이미지, 카르마, 사원등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다. 그의 메일은 내게 근원적인 질문을 자꾸 던지곤 했다.
다람살라에 도착하다.
미얀마에서 우연히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가 보낸 메일에 답장을 안 한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핸드폰이 없는 그와의 소통 방법은 오직 메일 뿐이었다. 하지만 스팸메일 2천통의 지저분한 메일함을 열어보고 영어로 뭔가를 쓰는 것이 당시 너무 귀찮았다. 미얀마 양곤에서 11월을 닮은 나무 사진을 찍는데 그가 인도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은 하루만에 답장을 보냈다. 다람살라까지 오는 루트를 상세히 알려주며 나와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물갈이가 도통 낳지를 않아 피골이 상접했을 때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여행지의 기분좋은 낮설음을 넘어서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더벅머리 칸의 미소로 녹아내렸다.
"어릴적 나는 디테일에 신경쓰는 사람이었다."
칸은 나보다 겨우 2살 많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삶에 대한 태도가 진지했다. 칸은 손가락에 앉은 무당벌레나 집 문틈에 집을 짓고 있는 개미들을 신경썼다. 매번 보는 거지 아이들의 땟국물 가득한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자기가 좋아하는 10루피짜리 초코 비스킷을 쥐어줬다. 나도 칸 같았을 때가 있었다. 산 속에 살던 어릴 적에는 작은 것들이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길을 걷다 비가 내린 후 연두색이 더욱 빛을 바랬던 다래순에게 입을 맞추고, 혼자 피어난 할미꽃을 한참 바라봤다. 군청에서 매일 멱 감던 계곡을 메워버리려 했을 때 민원 게시판에 여러번 글을 올렸다. 사람을 볼 때는 무리에서 뒤쳐지거나 소외된 친구가 먼저 보였다. 칸을 지켜보며 그런 것들이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아우성치듯 떠올랐다.
(칸의 방. 타다 남은 향과 차)
말랑 말랑하게 생각하기
캄보디아에 살면서 수 많은 백패커들을 만났다. 그들을 현실도피 중이라고 줄 곧 판단했다. 칸은 내가 지금껏 그렇게 여행해 왔으니 다른 이들도 그렇게 보고싶어 진다고 말했다.
탕카 패인팅을 배우고 티벳말을 하는 칸, 그곳에서 살고있는 다른 외국인들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주로 저평가되는 것들에 매달렸다. 돈벌이 보다 나를 수양하고 닦고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하루를 보냈다.
칸은 내 사고가 어떻게 굳어있는지 잘 느끼게 해줬다. 그는 위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 같았다. 나는 회색깔의 시멘트 틀에 갇혀 코 앞만 보는 사람이었다.
"일본에는 자발적으로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그건 정말 사회 문제다."
칸과 대화는 항상 나의 이런 바보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칸은 항상 질문으로 다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상기 시켜주었다.
칸은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들을 기억나게 해줬다. 뻔하다고 생각했던 말들, 충고들은 진심으로 살아 움직였다.
향냄새로 가득한 칸의 단칸방에서 옆집 아이들이 놀러와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안개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마지막, 떠나는 날, 그 정들었던 방을 하나하나 훑으며 다짐했다.
"나는 한번 산다.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내 존재가 무척이나 말로 표현 못할 만큼 사랑스럽다. 그렇기에 슬퍼하고 좌절할 일에도 항상 희망과 따듯함을 먼저 찾으며 내 삶을 오롯이 즐기는데 최선을 다한자."
멋진 인연이군요~ 좋은 인연 오래 간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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