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 자뷰니앙,『영화를 무릅쓰고 보다, 말하다, 생각하다 Voir Parler Penser au risque du Cinema 』, Press Sorbonne, 2001
서문
영화에서 철학으로, 혹은 그 역으로
“우리는 우선 조우하는 것을 구성하기 원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우하기, 조우가 가능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V. 골드슈미츠(V. Goldschmidt), 『베르그송의 연보들 Ⅰ ─ 세기 속 베르그송』, F. 웜스(편저), PUF, 2002, P.74에서 인용.
”, 장 이폴리트
이 글의 시작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있다. 그것은 질 들뢰즈가 영화에 헌사한 두 권의 책들, 운동-이미지(시네마1)와 시간-이미지(시네마2)의 지위와 관련 있다. 들뢰즈는 자신의 저작을 이루는 파열들과 연속성들에 대해서 질문하는 1988년 발간된 인터뷰집에서 이 두 저작들을 “철학에 대한 책들이다” P, p. 187.
라고 밝혔다. 바로 여기에 수수께끼, 놀라움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시네마토그래피에 대한 칠 백 페이지에 가까운 에세이가 철학에 대한 책을 구성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언제나 그랬듯이 수수께끼라는 것은 그것이 부상하게 하거나 가능하게 하는 다른 것보다 앞서 나가기 마련이다. 지금의 경우에 그것은 원칙적으로 두 영화서들을 포함한 영화적인 묘사들의 다양성으로 포획된 (철학적이 아니라) 영화 애호적인 것에 대해 알기의 자유의지에서 다시금 제기하게 되는 첫 번째 독해를 위해서 행동한다. 또한 이 책들을 철학가가 쓴 것이라고 할 때 영화에 대한 철학에 대한 움푹 파인 존재, 말하자면 움직이는 이미지들의 예술 바깥에서 응용하게 될 사전에 형성된 체제를 거의 놀라지 않고 언뜻 보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어떤 언명들, 놀라지 않고 확인할 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