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보이즈
나름 세련된 포스터와는 달리 영화는 세련되지 못하다. 세련미 없는 모양이 이 영화에 나오는 대책 없고 갑갑한 네 명이 사내들과 똑 닮았다.
델타 보이즈에 대한 선 지식 없이 영화관에 들어갔다. 독립영화를 선택할 때는 대부분 그렇다. 굳이 따진다면 상영 시간 정도. 밥 먹기 전에 볼까 밥 먹고 볼까 정도가 계획의 전부다.
초반부터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이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나 초등학교 때, 나름 유행했던 영어를 포함한 다언어 학원같지 않은 학원 ‘라보’라는 곳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배우는 영어 노래 중 하나였다.
그 단체를 검색해 보니, 약간 형태는 바뀐 듯 하지만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방학이 되면 라보에서 전국적으로 캠프를 몇 차례 진행하는데, 그곳에 모여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곡이다. 분명 선생님은 영어 가사가 무슨 뜻인지 얘기를 해줬겠지만 그것은 뒷전이고 흥겨운 노래에 춤추는 것이 우선이었었기에 기억이 안 난다. 죠슈아가 여호수아라는 사실을, 제리코가 여리고성이었다는 사실을 정말 나중에야 알았다.
캠프 갔을 때, 이곡에 서울 애들이 안무를 다르게 짜 와서 자기네들끼리 더 세련되게 춤추던 모습이 기억난다. ‘서울 것들은 정말..’ 하며 살짝 눈 흘기면서도, 스스로 지방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느끼며 소심하게 따라했었다.
“델타 리듬 보이즈”. 이 그룹의 이름에서 영화 제목을 따왔으리라. 영화 관람 후, 델타 리듬 보이즈의 공연 동영상을 보니, 영화 속에서 이 네 사내들의 몸부림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델타 리듬 보이즈에 대한 오마주였던 것.
시흥 공장 노동자 일록이 남성 중창단을 모집하는 게시물을 붙이면서 예건, 대용, 준세가 합류한다. 예건은 영어권인데, 혀만 영어권이지 사고체계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연습하기로 한 노래가 영어다보니, 그리고 그 노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예건이다보니, 그가 연습을 리드해 간다.
대용은 시장 가게 생선 장수다. 모집 공고를 보고, 김병지 머리에 양복 빼입고 공장으로 찾아간 대용. 실력은 없지만 팀웤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항상 내 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친구 부탁 거절 못하는 준세. 대용의 꼬드김으로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준세. 아내와 함께 도넛 팔다가 대용의 전화를 받고 안절부절. 도넛 파는 용달차에서 아내와 치고 받고 하는 격투(?)씬은 나름 롱테이크다.
공장, 재래시장, 놀이터, 도넛 파는 용달차, 그리고 옥탑방. 이들이 점유하는 공간들만 보더라도 이들이 몇 부 리그 인생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은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노래도 잘 하는 것도 아니요, 생긴 것도 특출 나지 못하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영민한 것도 아니고, 운발이 좋은 것도 아니다. 새마을 운동 관점에서 보면 정말 잉여도 이런 잉여인간도 없고, 이런 아들 둔 어르신이라면 복장이 터져도 몇 번은 터졌으리라.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Jericho, Jericho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And the walls came tumblin' down
성경에 따르면,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군사적인 공격을 해서가 아닌, 그 성을 하루에 한 차례씩 6일을, 그리고 마지막 날 일곱 번 돌았을 때, 무너져 내렸다.
그러고 보니 감독이 250만원 가지고 일주일 만에 이 영화를 찍었다니. 그 지점도 닮긴 닮았다.
델타 보이즈에 나오는 이 노래는 흑인 영가다. 블렉 가스펠. 노예로 백인들의 압제에 있으면서 노동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 흑인들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여리고성 같은 백인들 밑에서 하루 하루 노동하며 자신들을 여호수아로,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시하며 그들의 주위를 돌았다. 언젠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저 성벽을 무너뜨려 주시기를 바라며.
영화 속 이 네 사내들은 이 영어 노래의 가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면서 노래했을까? 아니,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너질 것 같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계층의 벽을 향해 바보스럽게 노래하는 것 그 자체가 그들의 희망이요 꿈일테니.
이들이 옷 갖춰 입고 마지막 공연(?)하는 장소는 그들이 연습했던 옥탑 방 앞마당. 그런데 그들 뒤로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교회 건물. 교회 건물 한쪽 벽면이 여리고 성과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환상일까.
이 시대의 일록, 예건, 대용, 준세를 응원한다.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429916?language=en-US
별점: AAA
@chaeg 님이 본 게시글에 500 AAA를 후원하셨습니다. 지갑 내역을 확인해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kingsguards 님이 본 게시글에 1000 AAA를 후원하셨습니다. 지갑 내역을 확인해주세요.
앗~ 감사합니다~
독립영화 리뷰의 강자가 되어주세요.
화이팅~ ^^
오늘도 글 잘 읽었어~ 이거 광고도 찾아 봤는데 재미있겠더라. ^^
은근한 재미가 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