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마음에 오래 남아서, 이 감독 영화를 찾다가 ‘어느 가족’에 이르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MSG 많이 넣지 않고 음식 할 줄 안다. 바닷마을은 순한 맛이었다면, 어느 가족은 약간 매운 맛이다. 감독은 잔잔하게 고발할 줄 아는 힘이 있다. 사실 이런 사람이 무서운 사람이다. 화 안 내고 또박또박 자기 할 말 다 하는 사람.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영화 초반에 내 머리에는 온통 법과 원칙, 윤리, 절차가 돌아서 영화를 맘 편하게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저러면 안 되는데, 그럴 때는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등등. 내 속의 정신과 의사, 사회 복지사, 임상 심리학자, 가족 치료사들이 소리를 쳐 댔다. 직업병인가.
제도권 안에서 그 틀을 벗어나보지 못한, 아니, 매우 교만하게도 그 정도까지 바닥에 내려가 보지 않아서겠지. 아니, 난 그렇게 안 될 거니까. 제도권 밖에서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생존이 우선시 되는 급박한 상황에 처해지진 않을 거니까.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생경한 내 속의 저항을 마주하니 매우 난처했다. 약간의 두통이 있었지만 꾹 참고 따라갔다. 약한 두통을 유발하는 감독이 좋은 감독이다. 영화관엔 돈 주고 아프러 가는 것이다.
아빠 오사무는 생각해 보니 기생충의 기택을 닮았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능력 없는(자본주의 시장 시각으로 봤을 때) 가장인데 준법정신도 없다. 그런데 만약 오사무가 능력은 없는데 준법정신이 투철했다면, 아마 법 지킨다고 굶다가 혼자 집에 쳐 박혀 고독사 하지 않았을는지.
할머니 역을 맡은 키키 키린은 이 작품을 끝으로 세상을 떴다. 유작이 된 셈. 어느 가족에서 죽음을 연습하고 정말 죽었다.
초등학교 때인가.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그 날 난 이웃집에 맡겨졌고, 그곳 낯선 곳에서 잠을 잤다. 그 집 아저씨가 재워줬는데, 그 토닥이던 따뜻한 손을 잊지 못한다. 정확히 기억한다. 남의 집 아빠 손길이 우리 집 아빠 손길보다 더 따뜻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영화를 보며 눈물이 났던 대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모두 노부요가 있다. 노부요가 유리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장면. 친 부모가 낸 상처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더 엄마 같은 엄마가 치유한다.
쇼타. 쇼타를 주인공으로 보면 이 영화는 성장영화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쇼타 때문에 이 가족은 파국?을 맞는다. 아니, 쇼타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그 역할. 희생양? 발화자?의 역할은 감당했어야 하는데, 쇼타가 가장 어울렸나보다.
다시 노부요. 노부요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 (일본 여배우 이름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괜히 AV 배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비밀) 안도 사쿠라가 이 영화에서 반 이상을 했다.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국제적으로 상 받은 게 별로 기분이 안 좋았었는지 크게 칭찬하고 광고하고 하질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어두운 면을 보였다나 뭐라나. 매우 속 좁은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존감이 높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아래 사람으로 두지만, 자존감이 낮고 능력 없는 자는 자기보다 실력 없는 자를 아래 사람으로 둬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니까.
기억에 남는 소품. 구슬 사이다. 구슬 아이스크림처럼 구슬을 먹는 건 아니고, 사이다 뚜껑 역할을 하는 것이 구슬이다. 처음 눌러서 구슬을 밀어 넣을 때의 재미와. 마실 때 마다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꽤 재밌다. 이름이 라무네 사이다. 라고 한다.
감독은 전통적인 가족을 해체하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가족’이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살인하는 뉴스를 듣고 보는 시대에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가족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을까. 피로 엮이든 아니든.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505192?language=en-US
별점: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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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조이님이 쓰신 리뷰 시스템오류로 너무 손해보고 보상받아 속상했습니다. 시스템이 초기라 블란정해서 그랬다네요. 이번 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kr 테그 추가해주세요. ^^
네넵!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받고 있는 우리나라도 남의 일이 아닌것 같아요..
가족이란 뭘까요??
가족증명서..로 증명할 수 있는 가족도 필요하지만.. 증명할 수 없는 넓은 의미의 가족들도 만들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살지요..
멋진 영화평 잘 보고 갑니다. 영화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꼭 보세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