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이민지)은 가출팸을 전전하면서 혼자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출 청소년이다. 함께 팸을 이룬 다른 친구들은 혼자 살아남기 위해 다들 어딘가 뾰족해져 있다. 욕설과 폭력, 술과 담배 같은 것뿐만 아니라, 다들 살기 위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것은 막다른 길에 선 사람의 본능과도 같은 절박한 감각이다. 그래서 하루 살기가 절박한 구성원들이 모인 가출팸은 함께 있음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공간만 공유할 뿐, 공동체로써 기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불행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소현은 유난히 말이 없고 감정 또한 잘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하고 순진한, 그래서 한편으로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소현은 ‘팸’의 아이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소현은 단지 불행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녀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고 있다.
영화의 시작, 소현과 팸의 아이들은 죽은 누군가를 캐리어에 담아 산에 매장한다. 이때부터 소현이 꾸는 꿈, 혹은 그녀가 들려주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음’으로 인해 팸이 흩어지고 난 뒤, 소현은 한때 자신과 동거했던 정호의 흔적을 찾아 함께 묵었던 모텔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손목을 긋고 삶을 끝내려 한다. 그때, ‘제인’(구교환)이 모텔의 문을 두드린다.
제인과 소현, 두 사람은 구면이다. 정호가 제인이 일하는 ‘뉴 월드’라는 바에서 일할 때, 만난 적이 있었다. 정호가 일할 당시 제인은 정호를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더라도 제인은 정호를 사랑했다. 그런 제인이 종적을 감춘 정호를 찾다가 우연히 소현을 만난 것이다. 제인은 갈 곳 없는 소현을 자신의 팸으로 데리고 온다. 그곳에는 ‘대포’(박강섭)와 ‘쫑구’(김영우) 그리고 ‘지수’(이주영)가 있다.
그곳에서 소현은 제인과 함께 다니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둘이 함께 찾아 나서는 ‘정호’에 대한 이야기, 제인이 살아오면서 느낀 거짓과 진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 제인은 불행은 일생에 거쳐 계속되고 행복은 드문드문 있기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인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이지만 그녀는 결국 소현이 자신의 환상을 더해 만들어 낸 인물이기에 제인의 말은 소현의 말과 같다. 하지만 소현은 그 말을 계속해서 제인의 입으로 전한다.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소현과 제인은 정호를 찾았다. 그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새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본 소현은 차마 정호 앞에 나설 수 없었다. 가진 것 이라고는 불행뿐인 자신이 그 앞에 나타나면 두 사람의 삶은 다시 과거처럼 기댈 곳 없이 무너져 내려갈 뿐이라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소현은 멀찌감치 떨어져 정호를 보고 되돌아간다. 그리고는 제인에게 거짓말을 한다. 정호가 부담스러워 그들에게 되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그 말을 듣고 깊은 상심에 빠진 제인은 다음 날 아이들에게 김밥을 싸주고 투신해 자살한다.
이렇게 소현의 이야기 속에서 소현은 자신의 죽음을 두 번 경험한다. 한 번은 제인에 의해 제지되었던 자신의 자살이며, 다른 한 번은 제인으로 대신했던 자신이 결국 투신한 일이다. 둘 다 소현과 관련된 연약한 연결들이 끊어졌을 때 발생한다. 제인의 죽음은 정호 때문이었다면, 꿈으로 들어가는 지점에서의 자살은 ‘지수’ 때문이다. 제인을 묻어주고서 소현이 죽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인 ‘지수’와 얽힌 현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제인이 죽음을 맞으며 이야기는 소현의 현실로 빠져나온다. 그녀는 취한 채로 ‘병욱’(이석형)이 꾸린 팸의 방에 쓰러져 있다. 첫 장면의 가출팸이 바로 병욱의 팸이다. 이때부터 펼쳐지는 소현의 삶은 단절의 연속이다.
팸에 섞여들지도, 세상에 섞여들지도 못한 채 부유하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지수’다. 지수는 팸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꿈이 있다. 그 꿈은 소현이 그렸던 제인과의 꿈과는 다른 모습이다. 소현이 그린 꿈은 흩어져버리기 쉬운 연기 같은 환상이었다면, 지수의 꿈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하게 자라나는 나무 혹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건물과도 같다. 비록 지금의 지수는 가출팸의 일부로 짙게 깔린 불행의 안개 속에 있지만, 그녀는 곧 그녀의 동생과 함께 살아갈 집으로 나아갈 것 같다. 소현은 그런 지수에게 의지하고 싶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 서툰 소현은 지수와의 관계를 쌓는 일도 어렵다. 소현은 지수가 팸 중에서 유일하게 비밀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이긴 하지만, 그녀의 미래에 소현을 데려갈 수는 없다.
팸 내부의 분열과 폭력적 상황으로 인해 지수는 팸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다 끝내 목숨을 잃는다. 갇힌 방에서 탈출하다가 추락해 죽은 지수의 모습은, 제인의 투신과 겹쳐진다. 그나마 소현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후로 소현의 상황은 더욱더 비참해져 간다. 유일하게 연락이 닿았다는 이유로 지수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원망과 분노를 뒤집어쓴 소현에게 이제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처참한 현실을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골라 연약한 포장지를 만들어 덮어버리는 일 정도다.
지수의 죽음의 공범이 된다는 의미로 지수가 모은 돈의 일부를 일방적으로 받게 된 소현은 그 돈으로 케이크를 산다. 그리고 후에 지수의 동생이 소현에게 건네준 것은 캐러멜 류 사탕 한 개다. 케이크와 사탕 둘 다 단맛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소현이 선택한거나 혹은 그녀에게 주어진 이 단 맛들은 불행에 드문드문 주어지는 행복의 단편이다. 그 행복은 강한 단 맛을 가지고 있지만, 나눌 이가 없이 단독적으로 행해지며 지속시간은 매우 짧다. 현실은 끝까지 소현에게 그녀가 원하는 행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소현과 제인의 과거를 보여주며 연속된 불행 속 찰나의 행복을 제시한다. 그 추억은 ‘뉴 월드’에서 시작된다. ‘뉴 월드’는 입장할 때 손목에 ‘UNHAPPY’(불행)이라는 도장을 받아야 입장할 수 있다. 불행이라는 입장권을 들고 모인 사람들이 잠깐의 행복을 나누고 돌아가는 것이 ‘뉴 월드’의 룰 아닌 룰이다. 제인이 소현의 팔목에 ‘UNHAPPY’라는 삶으로의 입장권을 찍어줬던 그 날부터 소현은 ‘뉴 월드의 제인’이 정의한 불행으로 초대되었다. 하지만 그 불행은 소현이 겪었던 불행과는 다르다. 언제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불행, 그것은 혼자였을 때보다 견딜만하다. 그리고 어쩌면 각각의 불행들이 서로 부대껴야지만 그제야 찰나의 행복이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에 선 제인이 차분하게 꺼낸 자신의 이야기는 영화 속 소현의 비극을 관통한다. 거짓이 되어버린 삶 안에서 사람들 곁에 머물 방법을 몰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사랑받고 싶지만 그 방법도 모르는 채로 혼자가 되어버린 제인. 그녀는 관중들에게 말한다. ‘불행이 영원히 지속돼도, 어쩌다 한 번 행복하면 된 거라고.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다시 이곳 ‘뉴 월드’에서 만나자‘고. 제인의 말이 주는 위로는 영화 내내 펼쳐진 불행을 녹여낼 만큼 따뜻하다. 그리고 소현은 그 때의 연결, 제인이 자신에게 직접 건넨다고 생각했던 말과 노래들을 기억한다. 이것은 소현이 불행을 감출 때 썼던 얄팍한 꿈과는 다르다. 제인의 말처럼 불행의 연속인 삶 속에서 오롯하게 체험한 연결의 감각, 소현이 과거를 뒤져 찾아낸 그 실재적 감각은 그녀를 다시 삶을 향해 걷게 만든다.
https://brunch.co.kr/@dlawhdgk1205/206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420965-jane?language=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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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에서 눈여겨 봤던 배우네요.
스토리가 안타깝다라고 밖에 말을 못하겠습니다. ㅠㅠ
영화의 부분부분들은 꿈꾸는 듯하지만 소현의 현실은 정말 차갑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