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서 비트코인을 검색해보았다.
비트코인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 채 베껴쓴 수준 이하의 글이 너무 많다.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려주고 튤립광풍이나 뉴튼의 글로 양념한 뒤 '투자에 유의하시오' 정도로 마무리한 글이 사설이랍시고 올라와있다. 전문가 행세 하시는 분들의 수준이 이러니 아직 비트코인의 성장은 많이 남았나보다.
'비트코인은 화폐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어렵다.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화폐의 개념을 바꿀 것이다.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다양한 화폐가 존재했다. 단순하게 조개껍데기, 금화, 지폐(현재의 통화시스템, 신용통화)로 나누어보자.
조개껍데기에서 금화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에 '금화는 조개껍데기인가?'라는 질문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혹은 금화에 익숙해져있던 사람들이게 지폐를 도입할 때, '지폐는 금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금화와 지폐는 둘 다 통화로 사용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속성을 갖는다.
금화는 '희소한' 금이 없으면 제작할 수 없지만, 지폐는 흔한 종이로 제작한다.(*물론 지폐는 종이가 아닌 다른 재질로도 제작된다.)
금화는 사용된 금의 양만큼 내재적 가치를 지니지만 지폐에는 내재적 가치가 없다.
지폐는 무게가 아닌 사회구성원 사이의 약속에 의해 가치가 매겨진다.(종이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 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금화는 무겁지만, 지폐는 가볍다.
등등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폐가 도입되는 초창기에 지폐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금태환'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지폐의 가치를 이해시켰다. 굳이 무겁게 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지폐(신용통화)라는 시스템이 금화를 기반으로한 시스템보다 편하다는 것을 납득시켰기 때문이다.
다음 희곡을 읽어보자
재상
(천천히 다가온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행복한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 그럼 모든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은
이 역사적인 문서를 보시고 또 들어주십시오. 읽는다.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하노라. 여기 이 지폐는 일천 크로네의 가치가 있다. 제국의 영토 내에 매장되어 있는 무진장한 보화를, 그 확실한 담보로 제공할 것임을 보증한다. 이 풍부한 보물을 곧 발굴하여, 태환용으로 사용하도록 조치하였다.”
황제
철면피한 짓이, 엄청난 사기가 벌어진 것 같구나!
누가 여기에 황제의 서명을 위조했단 말이냐?
이런 범법 행위를 했는데도 처벌되지 않았단 말인가?
재무상
기억을 더듬어보십시오! 폐하 스스로 서명하셨나이다. 바로 어젯밤 일입니다. 폐하께서 위대한 판 신으로 서 계실 때, 재상께서 신들과 함께 나가 진언드렸사옵니다.
“이 성대한 잔치가 백성들의 행복이 될 수 있도록
몇 글자 적어주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폐하께서 순순히 적어 주셨고, 그날 밤으로 즉시
만능술사를 시켜 수천 장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가 만백성에게 골고루 미치도록, 소신들도 당장 연명으로 날인하였으니, 십, 삼십, 오십, 일백 크로네짜리 지폐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백성들을 기쁘게 했는지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시내를 돌아보십시오! 반쯤 죽은 듯 곰팡이가 슬어 있던 것이, 지금은 모두 소생하며 환락에 젖어 들끓고 있사옵니다!
폐하의 이름은 오래 전부터 세상을 복되게 하였었지만, 이번만큼 만백성이 우러러본 적은 없었나이다. 다른 글자들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고, 어명의 서명 글자 속에서만 모두가 행복을 느끼고 있답니다.
황제
그럼 백성들에게 그것이 금화 대신 통용된단 말이오?
군대나 궁중에서도 완전한 급료로 지불되고 있단 말이오?
몹시 놀라운 일이긴 하나,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다.
궁내상
순식간에 퍼져 버린 것들을 회수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번개처럼 빨리 흩어져 유통되고 있습니다. 환금 은행들은 모조리 문을 열어놓고 있습지요, 한 장 한 장의 지폐에 대해 당연히 할인은 하지만, 금화나 은화로 바꾸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푸줏간, 빵집, 술집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세상 사람 절반은 오직 먹는 것만 생각하고,
나머지 절반은 새 옷을 해 입고 뽐내려는 것 같아옵니다. 소매점에선 옷감을 끊어주고, 재단사는 옷을 짓고 있나이다. 지하 술집에서는 “황제 만세!: 소리가 들끓고, 지지고, 굽고, 달그락거리는 접시 소리가 요란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
누구든 테라스 위를 홀로 산보하고 있으면, 화려하게 차려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자랑스러운 공작털 부채로 한쪽 눈을 살짝 가리고, 방긋이 웃으면서 그런 지폐를 곁눈질해 본답니다. 어떤 위트나 재담으로보다도, 이런 것이라야
풍성한 사랑의 재미를 더욱 빨리 안겨줄 수 있지요. 지갑이나 돈주머니처럼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지폐 한 장이야 가슴에 품고 다니기도 간편하며, 연애 편지와 짝짓기하기도 편하단 말입니다. 신부는 경건하게 기도책 속에 끼워 가지고 다닐 테고, 병사들은 허리에 찬 전대가 빨리 가벼워져서, 그만큼 재빠르게 동작 방향을 바꿀 수 있지요. 너무 사소한 것까지 아뢰어 이 위대한 업적을
천하게 보이도록 했다면, 폐하께 용서를 비는 바입니다.
파우스트
무진장한 보화가 폐하의 영토 안에서, 깊은 땅속에 묻힌 채, 때를 기다리며, 이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원대한 사상일지라도, 이러한 재보에 비하면 한없이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또한 공상이 제아무리 높이 날아올라,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충분히 성취할 수가 없나이다.
그러나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고귀한 정신은 무한한 것에
무한한 신뢰를 갖는 법입니다.
메피스토텔레스
황금이나 진주를 대신하는 이런 지폐는, 아주 편리하고, 자기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도 알 수 있소이다. 그래서 우선 흥정을 한다거나 환전할 필요도 없으며, 마음껏 사랑이나 술에 취할 수가 있습니다. 금속으로 된 돈을 원하면, 환전소가 준비되어 있고, 그곳에도 금이 없으면, 잠시 동안 파내면 되지요. 파낸 잔이나 목걸이를 경매에 붙여서, 당장 지폐로 상환해주면 될 것이니, 우리를 건방지게 비웃던 놈들이 창피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폐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은 원치 않을 겁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황제의 영토 어디를 가나, 보석과 황금과 지폐가 얼마든지 넘쳐날 것이옵니다.
괴테 ㅡ<파우스트>ㅡ 중에서
금화를 사용하던 시기에서 금태환을 통해 신용통화를 도입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황제가 지폐를 찍어내고 모두가 부자가 되어서 기뻐한다.... 정말 모두가 행복해졌을까?
현재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로 지폐(신용통화)로 교환될 수 없다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도 현재의 신용통화 시스템을 뛰어넘어 신용통화를 대체하는 혹은 최소한 신용통화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왜나면 신용통화 시스템은 위의 괴테의 글처럼 '사기'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에서 황제가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 신용통화를 마구 발행해서 모두 부자가 되었을 때, 누가 손해를 보았을까? 그건 바로 안먹고 안쓰고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돈을 모아온 서민이다. 통화를 발행할 권한이 있는 황제가 통화를 마구 찍어내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물가가 미친듯이 치솟게 된다.
돈을 마구 찍어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예전에는 이렇지는 않았는데, 만원짜리 하나 들고 가면 마트에 가서 살 게 없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과일 하나 사먹을 때 큰 맘 먹어야 하고... 도대체 치킨은 왜 이렇게 비싸지는 건지....
성실하게 부자가 되겠다고 조금씩 돈을 모아온 사람은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집값이 상승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절망하게 된다.
<파우스트>의 황제가 만들어내는 인플레이션 속의 세상은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그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를 보면 한심해보이는가? 우리 서민도 인플레의 고통에 시름하고 있다. 단지 간신히 견딜만하게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비트코인 실험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바로 인플레이션 속의 세상이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메피스토텔레스가 지폐의 가치를 담보하기 위해서 금태환이 필요했던 것처럼 당분간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담보하기 위해서 신용통화가 필요하다.
현재 비트코인의 속성은 화폐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가깝다. 직접적인 사용보다 가치의 저장/투자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보다 신용통화로 교환한 뒤 사용하게된다. 하지만 부동산과 달리 비트코인은 쉽게 분할이 가능하고, 유통이 간편하기 때문에 화폐로서의 활용이 늘어날 것이다.
잠재적인 비트코인의 적은 신용통화시스템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다. 그들이 과연 어떤 수단을 쓸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찰리 리가 말한 것처럼 비트코인의 핵심은 censorship-resistance다. 중국도 비트코인을 완전히 규제하는 데 실패했다. 달러 중심의 패권에 저항하고 싶은 몇몇 나라는 비트코인의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의 싸움이 어떻게 펼쳐질 지 관전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