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는 이스탄불 여행객들에게 추천되는 장소 중 하나인, 그 유명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가 있지요. '바자르'는 이슬람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군요. 저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 전통상가와 지하상가의 분위기와 흡사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 상인들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호객합니다. 마치 명동 상인들 같은?
▲ 그랜드 바자르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jikatu/3924492530)
각설하고, 이번 글에서는 그랜드 바자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오픈 바자르'라는 개인간 거래 플랫폼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나라와 유사하면서 지마켓이나 옥션 같은 오픈마켓 성격을 결합한 모양새의 플랫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특징을 몇가지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픈 바자르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여 거래
- 결제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를 사용
- 개인이 상품을 리스팅하고 판매할 수 있으며, 리스팅이나 판매에 따른 수수료가 없음
- 안전한 거래를 위해 중개자(moderator)를 통한 거래 선택 가능 (에스크로와 유사한 개념)
▲ 출처: https://openbazaar.zendesk.com/hc/en-us/articles/208020193-What-is-OpenBazaar
오픈 바자르에서의 거래는 이더리움의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서비스와 플랫폼 유지에 필요한 서버 및 데스크탑용 클라이언트, 각종 도구들은 오픈 소스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이커머스 서비스 또는 오픈마켓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서비스가 특정 벤더가 아닌 사용자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바로 여기가 블록체인 생태계의 특징이 개입하는 지점입니다.
오픈 바자르를 구성하는 기술
오픈 바자르 네트워크
오픈 바자르를 둘러싼 생태계를 이해하려면 어떤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개별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떤 동기부여에 의해 특정 벤더없이도 개별 사용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기술적인 파악은 필요합니다.
먼저, 판매자가 자신의 상품을 등록하려면 해당 데이터 저장소와 서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픈 바자르는 특정 벤더가 유지하는 서비스가 아니지요. 그러면 이 저장소와 서버는 어디에서 관리하고 있는 걸까요? 답은, IPFS입니다. IPFS는 개별 콘텐츠에 해시기반의 유일한 주소값을 부여하고 P2P 네트워크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서비스하기 위한 프로토콜을 제공합니다. 어려운 말인 것 같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파일 공유 서비스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토렌트처럼 콘텐츠를 관리하는 방식을 떠올리시면 쉽습니다.
그러면 IPFS에서 콘텐츠 저장과 서비스에 사용되는 저장소와 서버는 누가 왜 제공할까요? P2P 파일 공유서비스에서 파일을 받으려면 자신의 컴퓨터를 P2P의 저장공간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처럼, 오픈 바자르를 사용할 때는 각 개인(Peer)이 콘텐츠를 캐싱하고 서로 간에 그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오픈 바자르 네트워크'라고 부릅니다.
오픈 바자르 토큰
오픈 바자르에서의 거래는 비트코인(Bitcoin Cash, Zcash도 가능)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왜 토큰이 등장하느냐. 이 토큰은 거래가 아닌 오픈 바자르 생태계 유지를 위해 사용됩니다. 이건 위에서 설명한 오픈 바자르 네트워크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도입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IPFS 라는 탈중앙화 네트워크 방식의 특성상 콘텐츠의 발견과 검색을 위해서는 별도의 콘텐츠 수집, 색인 등을 별도로 구성해야 하는데 이 기능을 서드파티가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오픈 바자르 토큰(OBT)를 부여하게 됩니다. 오픈 바자르에서의 계약 정보(이더리움 스마트계약 블록)에는 상품들의 주소값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모니터링하면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거죠.
그러면 OBT는 어디에 사용하느냐. 상품 광고나 리스팅의 우선 순위 부여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오픈마켓에서 광고비를 내면 파워클릭 등의 이름으로 상위에 노출되는 것처럼요. 즉, 오픈 바자르에서 판매수익을 극대화(이커머스에서 광고는 수익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므로) 하기 위해서는 오픈 바자르 생태계에 기여를 하라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 오픈 바자르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 스크린샷
이베이, 아마존을 넘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오픈 바자르는 IPFS와 블록체인(이더리움) 생태계에 이커머스 도메인을 결합한 서비스 사례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오픈 바자르는 이베이, 아마존 등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까요?
일단 수수료가 없다는 점은 판매자 입장에서 큰 매리트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생태계 기여를 통해 광고 비용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이건 생태계 기여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효과를 분석해봐야 하니 구체적인 측정이 필요하겠지만, 아무래도 기존 광고비용보다는 상당히 낮은 비용일 확률이 큽니다). 결국 이러한 비용 절감을 판매가격을 낮추는 것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판매자와 구매자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각 개인이 번거로운 사업자 등록 등의 절차 없이도 쉽게 판매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C2C 비즈니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블록체인을 통한 익명화된 거래가 장점일 수도 있겠죠. 이러한 점들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점진적인 사용자 확대를 충분히 기대해 볼만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존 이커머스 기업들의 서비스 수준을 따라잡기에는 여러 장벽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첫번째 장벽은 온라인 쇼핑 고객들은 주로 익숙한 UX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존 이커머스 업체들의 UX에 길들여져 왔고 아직까지는 암호화폐를 통한 거래가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쇼핑 경험을 위해 별도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점은(복잡하던 아니던 간에) 첫 진입에 있어서 꽤나 큰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UX의 개선이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고객의 요구사항에 대한 발빠른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두번째 장벽은 특정 벤더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닌 오픈 바자르의 특성상, 프리미엄 서비스라던지 각종 프로모션과 포인트/쿠폰 등의 락인(lock-in) 효과를 갖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커머스 사업에서 이러한 서비스들은 고객 유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마케팅/영업 요소이지만 오픈 바자르는 생태계 구조상 이런 방식들을 차용하기 어렵습니다.
세번째 장벽은 앞의 두가지와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초기 사용자 확보의 어려움입니다. 어느 서비스나 초기 사용자 확보 문제를 겪게 마련이지만 오픈 바자르의 경우는 P2P를 활용하는 기술적 특성상 사용자의 확보가 서비스 제공의 품질(상품 검색 속도, 상품정보 조회 속도 등)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필자가 테스트해 본 바에 의하면, 한국에는 오픈 바자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노드들이 거의 없어서인지 특정 상품 정보를 보려면 5초 이상 걸리거나 아예 조회가 되지 않는 경우들도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콘텐츠 조회 대기시간에 대한 고객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보통 2-3초 정도로 보는 서비스 품질 기준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이는 다시 사용자 확보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언
앞서 나열한 어려움들이 있음에도, 블록체인 생태계의 다이내믹한 변화와 확장은 기존 이커머스 업체에게 있어서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으리라 예상해 봅니다. 위협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판매자 수수료와 광고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이커머스 업체들 입장에서는, 사용자 중심으로 형성되는 온라인 쇼핑 대체제의 성장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이베이나 아마존이 오픈 바자르와 같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운영해버리면서 더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고, IPFS를 통한 서버 운영 비용 등을 절감하는 등의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2014년에 네이버 웹툰에서 이미지 로딩에 따른 서버 부하 절감을 위해 그리드 컴퓨팅 방식을 도입하여 고객 휴대폰을 사용하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사건이 문득 떠오르네요(관련기사). 물론 IPFS와는 기술적으로 다르기도 하고 네이버처럼 막무가내식으로 접근한 실패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겠지만, 서비스 제공자나 고객 입장에서 워낙 여러가지로 리스크가 큰 변화일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와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겠지요.
아무튼, 오픈 바자르가 단순히 중고나라 같은 커뮤니티의 확장 방식이 아닌 탈중앙화 기술을 발판으로 삼은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는만큼 계속해서 지켜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 오픈 바자르 홈페이지 (https://www.openbazaar.org)
좋은글에 감사합니다.
MCC가 생각하는 플랫폼과 비슷한 재미있는 서비스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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