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_리처드J. 번스타인 / 김선욱 옮김 (한길사)

in #book5 years ago

01.jpg

한나 아렌트의 저서를 몇 권 읽게 되며, 그녀 철학의 핵심 개념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한나 아렌트의 생전, 실제 그녀와 교류한 경험이 있는 저자 덕분인지, 한나 아렌트가 주요하게 문제시했던 현상들을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한나 아렌트, 그녀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일생동안 관심있게 다루었던 '난민' 문제에 대한 일부를 본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난민, 이제는 일부 국가의 문제를 넘어서 국제적 현상이자 사회 문제로 자리하게 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난민 문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난민 문제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작년, 제주도 난민 이슈가 터지며 국가 차원에서 난민들에 대한 처우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갑론을박도 심심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18년간 무국적 상태였다고 한다. 맘 편히 몸을 누일 나라가 없다는 사실은 그녀의 삶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양한 난민들을 만나며, 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문구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권리를 가질 권리라는 문구였다. 그녀에 따르면 난민들은 절대적인 국가 내 국민으로서 인정받지 못 하기에 누구보다 나라의 성실하게 협조하며 최고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국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는 커녕 '의견을 가질 권리'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그 결과 인권을 주장할 자격조차 없는, 인간임을 인정받지 못 하는 '잉여'로운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녀가 난민 문제에서 역설하고 있는 바이다.

왜 나는 한 번도 난민들의 정치적인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 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난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갈 수 고향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 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토록 모른 척해왔던 것일까? 인권을 말하기 앞서,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먼저 논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어떠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절대적인 기준 인권. 그들에게는 이 너무나도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인권을 가질 수 있는 권리조차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인 차원에서 내집단과 외집단을 확연하게 구분하여 조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국가란 그런 의미로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가 어떠한 집단 내에 소속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적용 가능한 제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한 국가에 속한 사람이 또 다른 국가에서도 국민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것은 제재의 대상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민, 그들의 경우는 이와 같은 기준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은 외집단이니, 우리의 국민들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을 긋는 행위는 애초에 잘못되었다. 그들이 소속된 집단이란, 이제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삶 속에서 난민 문제에 대해 첨예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전개해나갔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그녀의 논의가 현 사회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통찰력 있는 분석으로 수면 위에 드러난 난민들의 현실이, 아직까지도 개선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가슴 아프다. 사람들은 때때로, 보이는 것에 휘둘려 진짜 중요한 것을 보지 못 하곤 한다. 책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를 읽으며 난민 문제 또한 우리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잃은 것은 단지 나라만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즉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권리. 그들이 궁극적으로 잃은 것은 바로 이 '권리를 가질 권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Sort:  

Congratulations @ria-ppy!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distributed more than 500 upvotes. Your next target is to reach 600 upvotes.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