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철학적 사상의 토대를 살펴볼 수 있는 책 『인간의 조건』. 철학 서적은 역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처음 접했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수월한 읽기가 가능했던 것 같아, 상대적으로 편안했다 말해본다.
책의 제1장, <인간의 조건>에서 그녀는 인간의 세 가지 근본 활동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노동: 노동은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과 일치하는 활동이다 (pp.73).
작업: 인간의 실존에서 비자연적인 부분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위와 같음).
행위: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일한 활동이다 (위와 같음).
개인적으로 '노동'을 생물학적 과정이라 설명하는 부분이 새로웠다. 흔하게 사용하는 노동의 정의는 아렌트에 있어 '작업'이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그녀는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발달하는 모든 순간을 노동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한다면, 성장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가만히 있는다고 자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생각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수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아렌트에게 '노동'보다 중요한 개념은 '행위'이다. 책 『인간의 조건』에서 그녀는 이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글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인간의 삶에 있어 타인의 존재를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인간 삶의 특이점이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강조는 행위능력을 신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영역으로 한정지을 수 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무한한 영생을 누리는 신들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능력이 바로 행위. 이 '행위만이 타인의 지속적인 현존을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pp.92).
이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해보려 한다.
인간의 공동체에 나타나는 필요한 모든 활동 중에서 두 활동만이 정치적 활동으로 간주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 삶이라 부른 것을 구성한다고 여겨졌다. 그것은 행위와 언어이다. 행위와 언어로부터 인간사의 영역이 발생하며 단순히 필요하거나 또는 유용하기만 한 모든 것은 이 영역에서 배제된다 (pp.94).
이것이 본래 의미하는 바는 폭력의 영역 밖에서 대부분의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한, 말을 통해 실행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발견하는 것이 행위라는 점이다. 오직 순전한 폭력만 말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폭력은 결코 위대할 수 없다 (pp.96).
정치적이라는 것, 즉 폴리스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힘과 폭력이 아니라 말과 설득을 통하여 모든 것을 결정함을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은 설득하기보다 폭력으로 사람을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이 전-정치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방식은 폴리스 밖의 생활, 즉 가장이 전제 권력을 휘두르는 가정과 가족생활의 특징이며 또는 아시아의 야만적인 제국의 전형적인 생활이다. 제국의 전제주의는 흔히 가정의 조직과 유사했다 (pp.97).
한나 아렌트의 철학의 중심에는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그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녀가 폭력에 대해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 즉 폭력을 위대하다는 표현과 함께 배치하는 부분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민족적 상처가 드러남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도, 어쩌면 인간으로서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것은 누군가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이지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에 대한 철학은 상당히 심도 깊은 통찰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과학의 발전에 따른 인공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불편함이 느껴졌다. 과연 과학을 발전이 야기하는 인공성으로 변화를 맞이하는 인간의 삶을 단언적으로 위기에 처했다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그로 인해 더욱 인간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주목한 것이 그보다는 기술에 밀려 일자리를 잃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하지 못 하게 된 인간들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아렌트의 책은 비단 철학책이라고 정의하기에 에세이의 면모를 띄고 있는 문구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말하고 싶다. 그녀의 사상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개인사가 보여주는 방향성이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어쩌면 진정한 철학이라 말하기엔 너무 사적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그녀의 글에는 힘이 있다, 그녀를 지지하고 싶다. 아렌트의 글은 감정이 담겼기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글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영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