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도의 8일_조성기 (한길사)

in #book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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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죽음, 그 8일의 기록을 소설로 풀어낸 책 <사도의 8일>. 뒤주 안에 갇힌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시선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는 단지 뒤주에 갇힌 후의 상황 뿐만 아니라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그리고 영조 사이의 사건들 또한 회상의 방식을 통해 전하고 있다.


사실 나는 본 소설을 읽기 전, 사도세자를 그저 아버지 영조의 잔인한 처사로 뒤주형에 처해진 가여운 인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사도세자가 누군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쩜 자신의 아들을 끔찍한 죽음으로 몰아갔던 아버지의 연유와 그러한 형벌을 받게 된 아들의 사연을 궁금해본 적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두 인물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따라서 소설을 읽으며 마주한 역사적 사실들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세자가 의복을 입는 일을 병적으로 기피했다는 것도, 심사가 뒤틀리면 살생을 저지르곤 했다는 것도 다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었다. 즉, 사도세자가 단순히 억울하게만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본 소설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죽음을 단순히 그의 잘못이 야기한 결과라고 하기엔, 그 과정에서 아버지 영조의 행적이 수상스럽다. 완벽을 추구했던 임금 영조. 역사는 그를 성군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소설 속 영조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는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자유로운 성품에 무예와 예술에 소질을 보였던 사도세자와는 달리 충과 효, 예를 중시하며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했던 영조는 사도세자를 품어주기엔 여유가 없었다. 영조의 호령 앞에 아비의 정을 갈구하던 사도세자는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정신적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스트레스가 병이 되어 점점 망가져가던 사도세자. 따라서 온양온천으로의 요양을 위해 홀로 궁 밖을 나섰을 때, 궁에서와는 달리 어질고 현명한 군주로서의 태도를 보이는 부분에서 상당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문제가 단순히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렷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또는 따스한 말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면, 부자 사이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내가 사도세자였더라도 그의 자리를 감당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만큼 그를 바라보는 혜경궁 홍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다.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세자의 곁을 지켰던 그녀. 세자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했을까? 더구나 자신의 남편이 뒤주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도대체 어떠할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정말이지 사도세자를 바라보는 혜경궁 홍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연민이었을까? 공포였을까? 다른 건 몰라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 책 <사도의 8일>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어떠한 심경이었을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풀어간 소설이다. 따라서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사건들을 딱딱하지 않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감성적으로 역사를 배울 수 있어 단순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통해 들으니 훨씬 몰입감도 좋고 역사를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한 인물의 사연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어 속도감 있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더불어 영조가 아닌 사도세자가 되어 글을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영조를 바라보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본 소설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역사는 영조를 칭송하기에,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영조를 바라보는 것은 영조를 이해하는 또 다른 시선을 선사해줄 수 있다 생각한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왕실의 관계가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역사 시간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생소하기 그지 없다. 책 <사도의 8일>을 읽으며, 역사가 흥미롭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들의 관계가 파국에 치닫게 되었는지, 만일 지식백과와 같은 글을 통해 읽었더라면 잘 읽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명하게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접하니 각 인물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볼 수 있었다. 더불어 혜경궁 홍씨의 입장에서도 뒤주형을 바라보고 있어 당시 왕실 여성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본 소설은 여러모로 나에게는 단순한 소설책이상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두루 살필 수 있게 해주었고 꺼져있던 역사 흥미를 북돋아주었다.

생각할수록 애련한

책 <사도의 8일>의 부제목은 생각할수록 애련한이다. 이를 통해 작가가 사도세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사도세자가 가여웠던 것 같다. 그 가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가 말하는 사도세자는 그의 삶에 얽힌 배경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자진하여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본 소설의 문체가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게 느껴졌다. 무언가 해탈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뒤주 안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사도세자를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라도 기운찬 문체의 글은 쓰지 못 했을 것 같다. 사도세자가 조금이라도 덜 아팠기를 바라며, 삶의 미련이 사라진 듯한 문체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그것이 그를 위로하는 최선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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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작가의 책 오랜만에 보내요.
몇년도에 출간한 작품인가요?

2020년도에 출가한 따끈한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