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편이고, 오래 쓰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별개로 애플 제품이 나를 엿먹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고통을 주는 것은 단연코 아이튠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이튠즈의 복잡함이란 정말 이해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2010년부터 아이폰과 아이튠즈를 쓰고 있지만, 아직도 이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필시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겠지. 정말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무슨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제품 사용법을 익히는 데, 알아갈 수록 점점 알 수 없는 부분이 나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 난해함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애플이 그렇게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용자 경험’을, 어찌된 일인지 아이튠즈에서는 그런 단어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데이트 되고 나면 유저 모르게 이러저런 버튼을 지워버리고 이름을 바꿔버린다. 얼마 전에는 새 아이폰에 벨소리를 넣으려다 기겁했다. 어찌된 일인지 벨소리라는 항목 자체가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업데이트 되면서 ‘유저가 벨소리를 추가하는 방식은 후진적이고 보안에 위험을 가져오기 때문에 삭제됩니다. 이를 원치 않으시면 아니오를 눌러주십시오’ 같은 안내문이라도 떴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냥 말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런 것은 한여름밤의 꿈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결국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하면 된다’는 유저의 지침을 찾아내서 벨소리를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폰에 원하는 벨소리 넣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가진 음원을 벨소리 생성 사이트에 올려서 몇 초로 잘라내고 형식을 변환하는 등, 무슨 2000년대 게임기에 억지로 동영상이나 텍스트 따위를 넣는 듯한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아예 그 항목 자체를 없애버렸다니, 유저가 불편을 겪는 모습을 차마 봐줄 수 없었던 탓일까? 참고로 그때 벨소리를 넣은 방법은 지금 아무리 열심히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생전 처음 가는 골목길에서 지도만 보고 이리저리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한 뒤 지도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상태다.
(애플은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이튠즈에서는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을 찾기 어렵다)
플레이 리스트 역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플레이 리스트를 새로 생성하려면 사이드바에서 +표시를 찾아 누르면 되었던 것 같다. 아닌가? 어쩌면 맥북의 이메일과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같은 회사에서 만든 두 앱의 비슷한 기능을 사용하는 법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일단 문제가 명확하다. 아무튼 오랜만에 아이튠즈로 플레이 리스트를 관리하려다가 당혹했던 것만은 확실한데, 역시 검색해 보니, 정답은(현재의 정답이란 뜻이다) '모든 플레이 리스트'라는 문구를 우클릭하거나 ‘파일>신규’로 들어가서 생성하는 것이다. 이것 참 직관적이군! 지금 아이튠즈는 ‘모든 플레이 리스트’라는 문구에 커서를 가져가면 오른쪽에 숨어있던 ‘숨기기’ 메뉴가 스르륵 나타나는데, ‘숨기기’를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그 옆에 항상 잘 보이도록 + 버튼을 달아놓으면 무슨 애플의 위대한 미학이라도 파괴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문제를 찾으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아이튠즈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익숙한 파일 관리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사만의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 독창적인 방법이 도통 유추하기 힘든 방식인 데다 심지어 익숙해질 시간을 주지 않고 자꾸 변화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어제는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서 아이패드의 동영상 앱에 동영상을 추가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정말이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건 마치 주기적으로 작동 방식이 변화하는 고성능 폭탄을 해체하는 방법을 전화로 설명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튠즈를 통해 파일을 넣은지 몇 년이나 지난 나로서는 뭘 어떻게 했는지 어렴풋한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통학로를 떠올리면서 그때 거기 무슨 문방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당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튠즈를 오랜만에 열어보니 아니나다를까 방법이 조금 바뀌었다. 모래 사막은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경이 바뀌어 한 번 갔던 길이라도 헤매게 된다는데, 딱 그 상황이었다.
아이튠즈를 써서 아이패드 앱에 동영상을 넣으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드로이드라면 그냥 케이블을 연결하고 저장소에 동영상을 복사해서 넣으면 끝나는 일인데, 아이튠즈의 경우 이 과정을 숙지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케이블을 연결해야 한다. 그러면 사이드바 위에 있는 드롭다운 메뉴 오른쪽에 BB탄보다 조금 큰 버튼이 생긴다. 동시에 사이드바에는 보관함 항목 아래에 기기 항목이 생긴다. 어떤 버전은 사이드바라는 것 자체가 증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설명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이드바 위쪽에 생긴 버튼은 태양계를 벗어나며 바라본 지구처럼 아주 작디 작은데, 사이드바의 변화는 토성에서 본 고리처럼 아주 크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이드바의 기기 항목에는 기기 이름도 표시되고, 음악, 동영상, TV프로그램, 책, 오디오북, 소리(즉, 벨소리다. 없어졌는데 다시 생겼나? 뭐가 뭔지 모르겠다), 구입함, 플레이 리스트까지 모두 표시된다. 아하, 기기를 연결하면 이 항목을 통해 관리할 수 있겠군요!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그냥 이런 게 있으니 보라는 것이고, 기기 관리를 하려면 위쪽에 있는 그 조그만 버튼을 눌러야 한다. 노안이 왔다면 대체 무슨 그림인지 눈치채기 어려울 아이콘이 그려진, 아무 설명도 적히지 않은 버튼을 클릭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에서 성배를 찾으러 갔을 때 '성배는 왕의 잔이니까 가장 화려한 잔이 분명해’ 하고 생각한 것은 오답이고, 가장 소박한 잔이 진짜 성배였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느냐? 사이드바가 진짜 기기 관리 상태로 변신한다. 기기 모양도 나오고 충전 상태 따위도 표시되었으니 의심할 수 없는 기기 관리 상태다. 하지만 아래쪽에 요약, 음악, 동영상 등등 메뉴가 있는데, 여기서 무엇을 눌러야 할까? 물론 이것은 버전별로 다르다. 예전에는 ‘App’을 눌러야 했다. 이것을 누르면 오른쪽 화면에 앱 목록과 홈화면이 떠서 홈화면을 편집하고 설치할 앱을 선택하는 메뉴가 표시된다. 그러면 화면을 밑으로 내려서 누구도 예상할 수 없게 감춰져 있던 비밀의 파일 공유 메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내가 파일을 넣을 앱을 선택하고 파일을 드래그해서 집어넣으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App’이 아니라 ‘파일 공유’를 눌러야 한다. 예전과 같은 문이긴 한데 명패가 바뀐 셈이다. 천변만화하는 유저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법하지만, 어디서 뭘 누르는지 적어 놓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변화다. 아무튼 이것을 누르면 오른쪽에 곧장 파일을 넣을 수 있는 앱 목록이 떠서 이것을 선택하고 파일을 추가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예전보다는 더 간단하고 알기 쉽게 바뀐 셈이다. 친절한 배려에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다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기긴 한다. 홈화면 편집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런 기능은 이제 사라졌나? 예전에는 아이튠즈 쪽에서 보유하고 있지만 설치는 되지 않은 앱을 확인하고 추가할 수 있었다. 가령 마켓에서는 사라졌지만 나는 보유한 앱을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홈화면 편집이 사라지면서 그런 것은 불가능해진 모양이다. 물론 검색해 보면 또 뭔가 방법이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요는 아이튠즈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할 거라 신뢰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어느날 갑자기 멀쩡히 쓰고 있던 메뉴가 증발해버릴지 모른다. 아이튠즈는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일상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토대 위에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민방위 훈련 같은 존재다. 가끔씩은 내가 자주 쓰는 메뉴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라도 써야 할 지경이다.
이렇게 욕을 하는 나도 한 때는 분명 아이튠즈도 익숙해지면 썩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는 입장이었다. 음원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스마트 재생목록을 생성하는 기능은 분명 탁월하다. 재즈 장르에서 내가 별 5개를 준 음악만 따로 모아서 표시하는 등 응용해볼 구석이 많긴 하다. 하지만 파일 하나 넣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 그 방법조차 자꾸 변화하니 슬슬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백업이나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저장공간을 무섭도록 차지해서 저장 경로를 바꾸고 보관함을 옮기고 어쩌고 하는 짓도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쓰면 쓸수록 기능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초고대 문명의 기기를 손에 넣어 조금씩 연구하면서 사용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풀 메탈 패닉이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조종하는 로봇에 ‘람다 드라이버’라는 신비의 병기가 탑재되어 있고 이것을 사용하려면 고도의 정신집중이 필요한데,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이 병기에 대해 주인공은 ‘누르면 바로 나가야지 정신집중이니 어쩌니 알아먹을 수 없는 과정이 필요한 병기는 제아무리 성능이 우수한들 신뢰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병기는 병기로서 완전히 실격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아이튠즈를 쓰고 있으면 주인공이 어떤 기분인지 맛볼 수 있다. 그러니 아이튠즈 따위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지만...... 오랜 애플 기기 유저가 그렇듯이 완전히 발이 묶여 있는 상태라 어쩔 도리가 없다. 애플은 고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고 스트레스에 대한 실험이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2018.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