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리듬 게임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이하 데레스테)’를 새해에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예전에 소셜 게임은 어지간해선 하지 않는 게 편안하다는 글을 쓴 주제에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그 이후로 오히려 하는 게임의 갯수가 늘어 버렸으니, 통 발전이 없는 인생이라고 누가 꾸짖어도 딱히 둘러댈 말이 없다.
물론 죽자살자 이 게임만 붙들고 사는 것은 아니다. 로그인해서 로그인 보상만 받는 날도 적지 않다. 게임을 굳이 로그인만 하고 끄는 행위의 허망함이란 참으로 괴상망측한 것이지만, 어쨌든 열과 성을 다해서 게임을 즐기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그나마 변명거리라면 변명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열과 성을 다해서 게임을 해야만 하는 기간이 꼭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바로 이벤트 기간이다. 이 이벤트 기간 동안 게임을 열심히 해서 포인트를 열심히 모으면 새로 나온 캐릭터 카드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마음에 든다면 아무래도 게임을 열심히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딱히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받을 수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이 짓을 몇 번 하다 보니 이게 그리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고 재미나게 게임하고 카드도 받는, 그런 희망찬 구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벤트 몇 종류 중 하나인 수집 이벤트를 예로 들어 보자. 수집 이벤트의 보상은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을 포인트로 순위를 매겨 몇 위 안에 들어오면 주는 보상이 있고 단순히 몇 점이 되기만 하면 주는 달성 포인트 보상이 있다. 상대 평가와 절대 평가 비슷한 차이다. 그런데 일단 순위 보상은 다들 이를 악물고 맹렬히 하는 게 보통이니 내가 낄 자리 따위 없는 게 당연하다. 이만하면 썩 괜찮지 않나 싶어 확인해 봐도 다들 저만치 달려가는 세상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시도를 해봤지만 단 한 번도 변변한 순위 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할 때마다 새벽 여섯 시쯤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지독한 자괴감이 들어 순위 보상은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골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성 포인트 보상쪽은 어떤가. 이쪽은 절대 평가니까 내 페이스대로 달리면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서 편안하지만, 계산을 해보면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 내 기록을 토대로 계산해 봤다. 일단 구조는 이렇다. 일반 곡을 플레이 하면 포인트 약간과 이벤트 곡을 플레이 하는 데 사용되는 아이템(재화)을 모을 수 있고, 이 아이템을 소모해서 이벤트 곡을 플레이하고 대량의 포인트를 적립하게 된다. 일반 곡을 플레이 하는 데에는 시간에 따라 저절로 충전되는 스태미너를 소모한다. 이벤트 중에는 이 스태미너를 2배 소모해서 두 번 플레이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렇게 내가 한 곡을 뛰면 53포인트 정도(플레이어의 실력이나 카드 상황에 따라 차이는 날 것이다)와 이벤트용 아이템 106개 정도를 모을 수 있다.
그리고 이벤트 곡을 한 번 하기 위해서는 아이템 150개가 필요하다. 이벤트 후반에는 최대 네 배까지 소모해서 효율을 높일 수 있으니 이쪽으로 계산하자. 아이템 600개를 소모해서 내가 얻은 결과는 1280포인트다. 점수 보상에서 카드는 2종이 있는데, 낮은 것이 10000포인트를 요구한다. 즉, 이것을 목표로 할 경우 이벤트 곡을 8번 뛰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그리 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 같지 않지만, 이벤트 곡을 4배로 플레이 하려면 아이템을 600개 모아야 하니, 이벤트 곡 한 번에는 일반 곡이 6번 따라오는 셈이다. 일반 곡을 6번 플레이하면 318포인트가 모이고, 이 때 모은 아이템으로 이벤트 곡을 플레이 하면 1280포인트가 모여, 한 사이클에 1598포인트가 모인다는 계산이다. 즉, 7곡으로 구성된 사이클을 6회 하고도 몇 곡을 더 뛰어야 10000포인트가 모이니, 하위 보상을 위해 42곡 이상을 플레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계산해 놓으니 역시 쉬운 일이 하나 없다. 이벤트 기간은 일주일. 따라서 하루에 6곡 이상을 플레이 하는 것이 기본이다. 20000점짜리 상위 보상을 받으려면 당연히 두 배를 노력해야 한다(당연히 상위 보상을 더 갖고 싶을 때가 많다). 한 곡에 3분이라고 치면 하루에 기본 18분에서 많게는 36분 동안 게임을 붙들어야 한다. 마음 먹으면 쓰지 못할 거야 없는 시간이긴 하지만, 리듬 게임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짓을 하면서 느긋하게 플레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요는 하루에 20분 동안 초집중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물론 20분 내내 쉴새 없이 연속으로 게임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일하는 중간중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나야 프리랜서니까 일하다 말고 게임을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10분씩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흡연자 입장에서는 여기에 게임까지 덧붙인다는 게 이만저만 난감하지 않다. '열심히 일했으니까 슬슬 이벤트도 뛰고 담배도 피우고 와야지’ 따위 사치스러운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를 수 있는 것은 게임과 담배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담배를 고른다. 이쪽에는 마감도 할당량도 점수도 없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이벤트 보상을 매번 놓치고 있는데, 이 게임 저 게임 집적대 보니 어느 것이고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무료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어쩐지 자꾸만 마감이 설정되고 할당량이 주어지며, 저 앞에는 당근이 놓인다. 당근을 먹으려면 좋든 싫든 마감 기한 안에 뛰어가야 하고, 더 빨리 뛰고 싶으면 돈을 써야 한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런 모바일 게임은 패키지 게임처럼 스테이지 몇까지 끝내서 마침내 엔딩을 보고 다음 게임을 하게 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늘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엔딩 따위 없다. 게임이 망하지 않는 한 끝없이 반복된다. 그러니 하는 게임의 종류가 늘어날 수록 해야 하는 일도 두 배 세 배로 쭉쭉 늘어난다. 마치 매주 과제를 내주는 강의를 몇 개씩 듣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벤트라고 발랄한 이름을 붙여놓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긴급 마감 기간 같은 것이다. 결국, 아무리 열성적인 게이머라도 즐길 수 있는 게임에 한계가 생겨서 여러 게임 중에 할 게임을 취사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것이 아무리 막대한 돈이 된다고 할지라도 건강한 산업 구조인지는 역시 의문이 든다.
아무튼 나는 이런 구조 안에서 그나마 열성적으로 하는 게임으로 데레스테를 남길 수밖에 없었는데, 게임을 하면서 회의를 느끼는 게 이벤트 때만은 아니다. 사실 항상 마음 한구석에서 회의를 느끼고 있다. 게임을 매번 순수하게 재미로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돈을 노리고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새 아이돌 카드를 갖고 게임을 해서 육성하면 새 카드를 뽑는 데 사용되는 유료 아이템인 쥬얼을 얻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항상 좋아하는 카드가 아닌 새 카드만 갖고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종종 내가 돈을 벌고 있는 건지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이렇게 고생해서 모은 쥬얼을 한 방에 2500개씩 카드 뽑기에 써 버리고, 원하는 카드가 나오지 않아 고통받은 뒤, 다시 새로 나온 카드를 육성해서 쥬얼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다. 이 끝없는 반복은 마치 고사나 신화에 가까운 느낌마저 든다. 행복을 찾아다니는 인생의 모습 그 자체인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물욕을 기술적으로 자극하는 게임을 언제까지 하게 될까? 환갑 잔치 하다가도 핸드폰을 꺼내서 이벤트를 뛰게 되는 것은 아닐까? 농담 같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정말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에 적용될 가능성조차 있다고 생각한다. 장 보러 가서 마트 포인트로 기간한정 SSR 대파 같은 것을 덜컥 뽑아 올 수 도 있다는 말이다. 그건 그것대로 재미야 있겠지만, 마감에 쫓기며 불안정한 수입으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역시 좀 느긋하게, 원하는 물건을 정확한 가격으로 소비하고 싶다. 서두르지 않아도 어디 도망가지 않는 행복을 즐기기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걸까?
(201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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