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8장의 비둘기는 물이 마르고 처음으로 세상에 날개짓을 한 생물입니다. 죄악으로 덮힌 세상을 향한 물심판 후에 성결한 첫 날개짓을 하는 비둘기는 한없이 성결하고 깨끗함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이 비둘기의 날개짓이 하나님이 심판이 지나 간 것을 알리는 희망과 소망의 날개짓이라는 것입니다.
아가서에서는 이 비둘기가 사랑스러움의 상징입니다.
아가서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마태 3:16에서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신다고 묘사함으로 비둘기의 모습이 고귀하고 깨끗한 성령님의 임하심에 대한 모습으로 묘사할 정도입니다. 또, 이사야 에스겔 나훔 같은 선지서에서는 비둘기의 울음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슬픔 마음을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비둘기의 개체수가 늘어남으로 공항에서는 큰 골칫거리가 됩니다. 또한, 우리들의 눈에도 비둘기는 그냥 길가에 오물과 쓰레기를 쪼아먹는 지저분하고 오리같이 뒤뚱 뒤뚱거리는 닭둘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결함을 가진 신자의 모습이 이 비둘기와 같아야 하는데, 오늘날의 비둘기처럼 편안하고, 죄 가운데 살면서 성결함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빗대어 사람들은 초심을 잃었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왜 성결함의 상징일까요? 아마도 창세기의 기록이 비둘기의 성결함을 알려주는 것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비둘기가 성결한 이유를 길을 가다가 깨달았습니다. 이건 성경적 해석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한 의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자리에 앉아서 꼼짝 안하고 있었습니다.
뭐지 궁금해서 근처에 갔는데도, 날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로 슬쩍 닿았는데, 여전히 꼼짝 안하는 것입니다. 궁금했습니다. 상식적인 비둘기가 아니라서 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발로 쓰억 밀었더니 그 비둘기 밑에 메추리알 같이 생긴 알이 있었습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길거리 한 가운데 비둘기가 이상한 알을 품는 사건이요? 여하튼 그것은 비둘기 알은 아닌 것 같은데, 비둘기는 알을 보자 본능적으로 그 위에서 그것을 품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비둘기의 동물적인 본능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멍청하게도 이미 삶아서 길거리에 떨어진 알인데도 그 비둘기는 자신을 버리고 그 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정말 멍청하고 바보스러운데, 저는 한편으로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직하고 멍청하게 생명에 대해서 사랑하고 보호하고 품고자 하는 비둘기의 본능이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너무 멍청하고 바보스러운 사랑의 본능이 비둘기가 성결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이익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로 잰듯한 마음으로 생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본능적 사랑과 구원에 대한 소망이 바로 우리들이 비둘기에게서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보다 성결한 것이 있습니까?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백성은 죄 가운데 거할 시간이 없습니다. 영혼이 눈에 들어오고 영혼에 대한 마음이 삶을 지배하는데 다른 것으로 더럽힐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비둘기는 집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둘기는 무식하기는 하지만 고집이나 집요함이 강한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위해서 생명을 걸고 투자할 수 있는 집요함이 있다면 그것은 영혼에 대한 것입니다. 그 길거리의 비둘기가 저에게 보여준 것은 생명을 향한 집요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