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누군가가 필자의 카페에 자신들의 교회 예배실황을 첨부하면서, 그 예배를 통해 기쁨과 감격이 넘치고 있다고 적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짐작한대로 서울 강남의 유명한 교회에서 창단한, 율동과 찬양실력이 탁월한 찬양예배 팀이라고 세간에 인기가 자자하였다. 사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대형교회에는 이렇게 뜨거운 찬양으로 감동의 물결이 넘치는 예배 팀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실황을 캡처하여 유투브에 올리거나 음반을 발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뜨거운 감동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이런 교회를 선호하게 되고, 찬양예배를 드리는 곳에 참석하여 감동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호주의 힐송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뜨거운 예배는 젊은이들만의 희망사항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예배자라면 누구나 감동적인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예배를 갈구하고 있다. 그래서 뜨거운 찬양으로 감동이 넘치는 기쁨의 예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뜨거운 찬양으로 군중을 휘어잡는 곳에는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드럼과 키보드가 동원된 심장을 쿵쾅거리는 악기,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거대한 음향시설, 현란하고 감동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명시설, 그리고 기가 막힌 말솜씨와 추임새로 군중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팀 리더 등이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찬양예배에 참석하면 자신도 모르게 분위기에 압도되어 감동의 물결에 휩싸이고 눈물이 솟는다. 그래서 물어보겠다. 그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것인가? 물어볼 것도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은혜가 넘치고 감격해 하는 상황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곳에서 주로 드리는 찬양곡은 작곡한지 이삼백년이 넘은 찬송가가 아니라, 기교가 현란하고 곡조가 빠른 CCM이다.
찬양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은혜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면서 찬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조용하고 느린 찬양이 묵상하기 좋은 곡이 될 것이다. 또한 주변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새록새록 생각나기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귀가 째지는 드럼과 타악기의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하고, 현란한 조명이 휘황찬란한 곳에서 무슨 하나님의 잔잔한 평안과 은혜가 넘치겠는가? 이런 분위기는 나이트클럽이나 아이돌그룹의 콘서트와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교회가 세상적이고 세속적이며, 육체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야 하는가? 그것까지 좋다. 그래서 그런 집회에 참석하고 나면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보자. 집회장을 나서기가 무섭게 건조하고 냉랭한 마음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그런 교회예배나 찬양집회장에만 계신분이신가?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영혼이 건조하고 허망해서, 세상의 즐거운 것을 찾아다니게 되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신 분이라면 조용한 골방이나 평안한 숲길, 적막한 광야나 도시의 번잡한 뒷골목에서도 함께 계시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집이나 직장, 길거리나 전철 안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굳이, 이렇게 눈과 귀, 그리고 분위기를 띄우는 집회를 찾아다녀야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네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방식과 인본적인 방법을 섞어서 감정을 부추기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찬양예배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산에 가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까, 조바심이 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금은 귀금속을 녹여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그게 애굽에서 이끌어내었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소리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기뻐했던 사건과 닮아 있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교묘하게 지어낸 하나님을 성경 속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예배와 찬송의 방식으로 자기만족의 예배의식을 드리면서 감격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종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유투브 등에서, 크리스천들에게 자신들의 집회에 참석해서 환희와 감동을 맛보라고 부추기고 홍보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물론 필자도 주일예배 시에 찬양을 드리고 있다. 그것도 1,20분이 아니라, 한 시간 가까이 찬양을 드린다. 예배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 교인이 함께 참여하는 찬양을 부르는 시간이야 말로 예배의식의 중심에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울 영성학교는 타악기는 차치하고, 30년이 넘은 선물 받은 중고피아노가 전부일 뿐이다. 그리고 CCM을 부르지 않고 오직 찬송가만 고집한다. 물론 CCM이라고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곡조가 빠르고 기교가 현란한 곡은 가사를 기억하며 음미하기 어려우므로 선호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가사를 깊이 묵상하며 부르는 곡이 아니라 진정한 찬송이 아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로 만들어진 유행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그 곡을 부르면서 자기의 감정에 도취되거나 마음이 즐거워진다면, 그게 무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인가? 자신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분위기는 주일예배 때만이 아니다. 귀신축출기도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축출기도시간에는 피아노반주조차 없이 아카펠라로 부른다. 열곡의 보혈찬송을 부른 뒤에 뜨거운 기도를 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감정을 격앙시키거나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법은 없다. 예배 시에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면 그것으로 우리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고, 귀신을 축출하는 기도시간에는 귀신이 쫓겨나가고 귀신들이 일으킨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자기만족의 찬양이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예배방식이나 신앙방식을 들여와서 대체하고 있다. 그래서 절에서 거대한 탑이나 엄청난 규모의 불상을 절집에 들여다가 사람들을 압도하듯이, 천문학적인 건축비용을 들여 교회건물을 웅장하고 럭셔리하게 건축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예배의식을 거행하여 젊은이들의 취향과 현대인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진정한 예배는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도구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면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자기만족의 신앙행위를 추구하고 있으니, 그런 교회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겠는가? 기가 막히고 답답한 일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