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거움을 추구하며 산다. 머리를 깎고 깊은 산속에 들어간 중들도 육체의 욕망을 포기한 대신 영혼의 기쁨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선택한 종교가 진리인가는 별도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크리스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멀리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기쁨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여기에 대한 분명한 선을 긋고 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추구하는 기쁨의 공급원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담배를 배운 사람이라면 담배가 주는 육체적인 쾌락을 얻는 대신, 니코틴의 결핍에서 오는 고통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물론 담배를 배울 때, 그 고통의 깊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술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지속적으로 알코올이 체내에 흡수되지 않는다면 쾌락은 끔찍한 고통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담배이든지 술이든지, 이를 끊으려면 지옥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이다.
천국의 자격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고백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반하는 모든 행위들을 멀리할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한 마디로 죄라고 단정하고 있다.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을 망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들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탐욕, 방탕, 술 취함, 음란, 간음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술 취함이나 음란, 간음 등은 방탕에 속할 것이다. 방탕이라는 말은 술과 여자에 빠져 추저분한 생활을 일컫는 말로, 극단적인 무절제와 탐욕이 가득한 방종한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통상적으로 이방신 숭배와 관련되어서 말하고 있다. 왜냐면 바알이나 아세라 등의 이방신의 우상이 세워진 성전에는 그들의 신을 즐겁게 한다는 명목하게, 성전에서 고용된 창기들과 술에 취한 채 음란한 섹스를 즐겼기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에 유혹되어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지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허락한 것을 제외한, 모든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들을 죄라고 말하고 있다. 이 중심에 술 취함이나 성적인 음란과 불륜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뿐만이 아니다. 도박이나 게임, 과도한 취미생활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이러한 행위들은 죄다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술 취함과 음란 그리고 불륜은 이 시대 최상의 쾌락을 던져주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목록에 들어가 있기에, 크리스천들은 여기에 발을 딛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이 주는 육체적인 쾌락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짜릿하기에, 목회자를 포함해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유혹의 덫에 걸려들고 있는 설정이기도하다.
그러나 죄의 덫을 밟게 되면 끔찍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술을 즐긴다고 가정이 깨지는 법은 별로 없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영혼이 황폐해지고 불행한 가정의 빌미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이혼의 사유가 되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평안한 삶이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에 걸린 크리스천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네 교회는 술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에, 규칙적인 예배행위를 드리면서 술에 취하는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술로 인한 해악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그러나 불륜은 순식간에 영혼을 파괴하고 가정을 무너뜨린다. 불륜에 빠진 남녀가 평소에 음란에 심취해 있었다면 쉽사리 불륜으로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평소에 음란에 심취해 있지 않았더라도 불륜은 방심한 틈을 타고 순식간에 빠져들어 간다. 그래서 불륜이 음란보다 더욱 무섭고 후폭풍도 엄청나다. 불륜에 빠진 행각이 들통 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 후에는 짧은 쾌락을 즐긴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 것이다.
필자가 오늘 음란이나 불륜의 해악을 지적하려고 이 칼럼을 쓰는 것은 아니다. 육체의 쾌락을 좇는 삶의 태도는, 그보다 더 큰 기쁨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과 자유함 그리고 영혼의 기쁨이다. 이는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게 되면 얻어지게 된다. 이 평안을 한번 맛본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안은 육체의 쾌락과 달리,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가능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해야 지속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육체가 주는 쾌락과는 질과 양에서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부작용이 없고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다. 말하자면 유통기간이 없으며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샘솟듯이 흘러넘친다. 그래서 이 기쁨을 맛본 사람은 평생 기도의 삶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들이지 못해서 성령이 주시는 영혼의 기쁨에 무지하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육체의 쾌락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가 주는 쾌락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갈증이 심화된다. 말하자면 쾌락의 포로가 되어 육체와 영혼을 황폐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의 증상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며, 주변에 불륜에 빠진 이들이 치러야 하는 끔찍한 대가를 생각해 보시라. 그러나 더욱 불행한 일은, 이 죄들을 완전하게 돌이키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과 세상의 축복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기쁨을 포기하면서,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육체가 주는 쾌락의 유혹에 취약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을 견디다 못해, 순식간에 세상의 즐거움과 육체의 쾌락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 잘못으로 치르게 되는 대가는 너무도 끔찍하다.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이 받게 되는 고통과 상처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죄와 싸우는 영적 능력도 얻어야겠지만, 먼저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는 육체가 주는 쾌락을 넘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기쁨은 육체의 쾌락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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