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프랑스~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며 EBS의 세계테마여행의 이탈리아 편인 이탈리아의 유산(성악가 이규성 교수 진행, 2008년)을 보았다. 여기엔 여러 지역의 소개가 있었고 모두 좋았지만, 3편 "인생은 아름다워" 편에서 한 꼭지로 다룬 친퀘테레 지역 편에서 다른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방송에 출연한 마리아 할머니>
친퀘테레(Cinque Tere = Five Villiages)에 속한 5개의 마을의 역사와 생활, 배를 타고 바다에서 보는 마을의 풍경, 그리고 리오마조레(Riomaggiore) 마을의 한 가정을 방문하여 마리아라는 할머니로부터 가정식 와인 만드는 과정과 함께 선물로 진행자가 그 집에서 만든 와인 한병을 선물로 받아 가는 내용이었다. 우리 가족은 이 친퀘테레를 가야할 곳에 추가하며, 저 할머니 만나면 재미있겠는 걸 하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여행 출발. 프랑스 국경을 넘어 조금 더 지나니 친퀘테레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1박 2일 일정을 잡았고, 첫날은 북에서 남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가장 북쪽에 있는 다섯번째 마을인 Monterosso al Mare에서 첫날 오후와 저녁을 보냈다. 이곳에서 정말 꿈같은 하루를 보냈지만, 그건 생략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제일 아래 첫번째 마을인 Riomaggiore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는 두번째 마을인 Manarola 까지 사랑의 길(Via Dell'Amore = Love Walk)이라는 절벽을 따라 낸 길이 있어, 결국 다섯개 마을 중 1, 2, 5번째 마을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Riomaggiore 가기 전날 혹시라도 그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보여주기 위해 비디오에서 할머니 등장하는 노트북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어갔다. 설마 하면서도...
<아름다운 리오마조레 마을>
차량이 많아 힘들게 마을 위쪽에 주차한 이후 마을과 어우러진 바다를 바라보니 환상적이었다. 마을 중앙으로 내려가니 조그만 광장이 있고, 그 광장 옆의 벽에는 친퀴테레 재건의 역사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우리나라 80~90년대 민중벽화와 비슷한 풍이다. 고난을 극복한 주민들의 노동과 협동을 그린 것이라 그럴까? 이 광장에서 사랑의 길 쪽으로 걸어가는 게 다음 일정.
<리오마조레 마을 광장에서 바라본 건물과 벽화>
잠시 쉬며 광장을 구경하는데, 저 옆에 어디서 많이 본 할머니가 보인다. 순간 마리아 할머니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이런 우연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당신을 보고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했었는데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다.
<정말... 우연한 만남>
이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태리 말 아니면 알아듣지 못겠다며 그래도 휴대폰의 사진을 보고는 바로 상황을 눈치챈듯 하였다. 다행히도 근처에 영어를 할줄 아는 할머니의 조카 며느리(게다가 일본인)가 가까이 있어, 그녀를 통해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할머니는 몇년 전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 찾아와 자신의 집에서 촬영을 했었는데 즐거운 경험이었다 했다. 다만, 촬영팀이 나중에 할머니가 나온 방송을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아직까지 보내지 않고 있다며 섭섭함을 표하기도 하였다. 아, 그거라면 우리가 보내줄께요 하고, 한국에 가서 조카며느리에게 이메일(+ 대용량다운로드 서비스)로 보내주기로 했다. 뭐 불법 다운로드 파일이긴 하지만, 방송국이 잘못했으므로 괜찮을거다 생각하며. :-)
할머니는 요즘 나이가 들어 1주에 한번 정도만 바람쐬로 밖에 나오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하면서, 우리의 만남이 참 인연이다 하셨다. 그걸 떠나서도 그 방송을 보고 할머니를 기억하며 마을로 찾아온 이방인을 만난다는 게 어디 단순한 우연이라 할수 있을까? 촬영할때 한국인들도 친절했었는데, 우리 가족을 만나서도 너무 기분이 좋다 하시며, 같이 광장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할때 쯤, 할머니가 잠깐 기다리라며 집으로 들어가시는게 아닌가?
<헤어지기 전 황급히 집에 들어가시는 할머니>
방송에서의 장면을 연상하며 혹시나 했었는데, 잠시 후 종이에 싼 병과 꾸러미 하나를 들고 오신다. 그 방송에서도 선물로 주셨던 귀한 손님에게만 준다는 그 친퀘테레 홈메이드 와인!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자식들 손주들 위해 손수 만드셨다는 빵까지 주셨다. 아, 이렇게 고마울수가. 그 자체로 감사하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의 여행에서 큰 추억거리를 남겨주신 게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사랑의 길을 걷고, 피사의 사탑을 거쳐, 저녁에 피렌체의 호텔에 도착하여, 할머니가 주신 그 빵과 와인을 후식으로 먹고 마셨다. 어느 무똥 머시기 와인보다 더 의미 있는 와인이었다. (실은 좀 달달한 스위트 디저트 와인이긴 했지만...)
<마리아 할머니가 싸주신 빵과 와인. 이딸리아 친퀘테레 리오마조레 마을 산>
귀국 후 비디오를 이메일로 보내고, 다시 감사의 의미로 한국의 문화 소품 몇가지를 우편으로 보내드렸더니, 그 조카 며느리로부터 할머니가 너무너무 좋아하시더라는 답장을 받았다. 우린 여행을 통해 여행마다의 고유한 기억과 의미를 갖게되지만, 친퀘테레 마리아 할머니와의 인연은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에게 깊은 추억을 남겼다는 점에서 우리 가족에게 길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여행 이후 3년 반이 지났는데, 오늘 오전 페이스북에서 친퀘테레의 봄 사진을 보고나서 생각이 나서, 그때의 추억을 글로 남겨본다. 할머니는 아직 건강히 잘 계시겠지? 혹시, 우리가족처럼 또 어떤 한국인 가족이 그 비디오 보고 할머니를 만난 것은 아닐까? ㅎㅎ
작년엔가 친퀘테레에 큰 홍수가 나서 마을에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는 데, 그 과정에서, 그 이후에도 잘 지내시는 지도 궁금하지만, 우리 가족과 마리아 할머니와의 추억을 위해 더 이상 추적하지는 않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친퀘테레를 가게 되고 리오마조레 마을의 광장을 가게 된다면 다시 두리번 해볼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불러볼지도 모르겠다.
마리아 할머니, 저희 가족 다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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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엄청 신기한 인연이네요. 운이 좋다고 해야할까요.ㅎ
글을 보니 가족이 모두 이렇게 여행을 다니시는거 같은데 엄청 부럽네요. 쌓아두신 에피소드들이 많으실거 같은데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팔로우하고 갑니다. ^^
그렇죠? 정말 우연이었지만 이렇게도 세상의 저편 사람들과 만나게도 되는구나 생각되더군요.
마리아 할머니 지금도 잘 계시려나 궁금도 합니다. TV출연때 대비 만났을때 나이가 꽤 더 들어 보였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