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얘기 중 사무실의 '충돌친화적' 구조가 있다.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등 다양한 직군들이 자주 마주치며 뒤섞일 수 있는 공간을 회사의 곳곳에 만들어 놓는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만나며 그 사이에서 새로운 창발이 일어나도록 자극하는 구조다.
일전에 소개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제인 제이콥스가 강조한 원칙 중 하나, '블록은 짧아야한다, 모퉁이를 돌 기회가 많아야 한다'.
구불구불하고 짧은 가로로 분절된 작은 지구들은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한다. 전체적으로 볼 땐 큰 지구가 잘 뭉쳐져 있는 듯 보인다. 실은 분절된 작은 마을들이야말로 유기적으로 구성돼있다.
연남동 숲길공원의 매력은 널찍한 공원이 아니라 세세한 지류처럼 뻗어있는 골목들에서 나온다. 우리 몸처럼 대동맥에서 모세혈관으로 흐르는게 아닌 아마존 강처럼 지류에서 모인 매력이 큰길을 따라 흐른다.
요즘 재밌다는 동네는 죄다 강북이다. 이태원, 홍대, 합정이나 회기동 같이 소소한 동네들. 신기한 물건파는 가게도 강북에 많고 맛있은 식당이 즐비하다. 매력적이다.
언제부턴가 강남은 참 재미없고 가고 싶지 않은 동네다. 뻥뻥 뚫려있고 높은 건물도 많아서 도시 같기는 한데.. 가능한 가고 싶지 않달까?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생각만 든다. 한기가 들 정도로 큰 고속도로를 뚫어놓은 코엑스도 그렇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섬들이 둥둥 떠 다닌다.
강남 같은 블록 혹은 슈퍼블록 단위로 구성된 도시 구역은 개개의 섬처럼 따로 논다. 걸릴게 없고 부딪힐 일이 없다. 대로변이 번화해지니, 대로를 많이 만들자며 그 뿌리인 골목들을 밀어버리는건 도시를 죽이는 일이다.
2000년대 초 뉴타운 광풍이 불었다. 금융위기가 오는 바람에 대부분이 무산됐다. 그때 만약 아마도 그들이 생각했을 메머드급 '뉴타운'이 모조리 실행됐다면? 서울이 얼마나 더 재미없는 도시가 됐을까. 강북의 '무슨무슨길'들은 지금쯤 6차선 대로와 푸르지오로 가득했을지도. 생각하면 오싹하다.
읽으면서 끄덕끄덕 했습니다.
좁은 골목 굽이 굽이 걷다가 느낌 좋은 가게에 들어가 두리번 거리던게 생각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