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역사

in #coffee6 years ago

I. 커피나무가 맨 처음 발견된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커피가 문헌상에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0세기경 아라비아의 의학사 라제스(Rhazes:850~922)가 Bun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위장 수축을 부드럽게 하여 주는 반면 각성제로 좋은 약으로 달여 먹던 것이 기호 음료로 전환되었으며 페르시아, 아라비아 전역에서 음료로 마시게 되었다는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Bun은 커피나무를 뜻하고 그후 아비시니아에서 홍해를 넘어 아덴, 메카, 카이로로 전파되었고, 1300년경 이란에 전파되었다. 1517년 터어키의 세림 1세가 이집트에 원정차 방문했다가 커피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II. 커피의 전설

  1. 칼디의 전설

서기 6~7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지역에 칼디라는 양치기 소년이 살고 있었다. 칼디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염소를 돌보고 있었는데 염소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뒤로 염소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염소 떼들이 붉은 빛나는 열매를 따 먹는 것을 보니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칼디는 그동안 알고 지냈던 한 수도승에게 가져다주고 그 사실을 알렸다. 그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수도승들은 밤기도를 위해 먹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여러 사원으로 퍼져 나갔고 신이내린 산물이라하여 억류되었다가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오마르의 전설

아라비아의 이슬람 승려 셰이크 오마르는 기도와 약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1258년 아라비아의 승려 셰이크 오마르(Sheik omr)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예멘 모카항 근처의 사막으로 쫓겨난 오마르는 굶주림으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문득 지평선 너머로 화려한 깃털의 새가 작은 나무숲에 앉아 빨간 열매를 쪼아 먹는 것을 보고 그 열매를 따 먹었다. 빨간 열매는 보기와 달리 매우 쓴 맛이 있어 날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매를 달여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온몸의 피로가 풀리고 심신에 활력이 되살아 나는것을 느꼈다. 오마르는 이것을 이용해 많은 환자들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 그 소문이 왕에게 알려졌고, 왕은 오마르를 사면하게 되고 이 일로 오마르는 유배에서 풀려나고 이슬람 성자로 추대 되었다.

III. 커피의 전파 경로

  1.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12세기-14세기)
    에티오피아가 525년에 이라비아를 침공할 때 참전했던 흑인 노예들이 비상식량으로 커피를 가지고 건너가 아라비아에서 커피가 재배되었다. 예멘은 모세가 홍해를 열고 건너간 곳이며, 아라비안나이트를 후세에 전한 사라센 제국의 한 지역이다. 역사상 최초로 대량으로 커피가 재배된 곳이다.

  2. 비엔나 커피의 고향 오스트리아
    폴란드 출신의 쿨시츠키와 아르메니아 출신의 디오다토는 변장을 하고 오스만투르크의 부대로 잠입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통해, 밀려드는 추위와 빈의 구원군이 도착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으로 오스만투르크군이 곧 철수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아내어 빈 당국에 알렸다. 두 사람은 오스만투르크의 진지로 다시 잠입해 오스트리아의 원군이 곧 당도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인근에 있는 소규모 군대를 빈의 구원군처럼 위장시키고 원래 군사 숫자보다 많은 횃불을 밝혀 오스만투르크 군을 위협했다. 며칠 후 오스만투르크군은 그들의 계략대로 전면 철수하게 되었고 빈 당국의 고위 관료들에게 포상으로 오스만두르크 군이 남긴 커피를 주게되었는데, 쿨시츠키와 디오다토도 그 커피를 자기들에게도 달라고 하여, 이를 바탕으로 1683년 빈의 슈테판 성당 옆에 <푸른 병의 집)이라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커피 열매의 과육을 제거하고 커피 원두를 볶는 방식은 오스만투르크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3. 네덜란드로 전파(1610년)
    유럽인들이 커피를 저음 접한 것은 12세기의 십자군 원정 때였지만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배척했다. 커피가 유럽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은 인도의 이슬람 승려 바바부단에 의해서였다. 그는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들른 이집트의 커피 농장에서 커피 종자 몇 개를 몰래 빼돌렸고, 본국에 돌아온 1600년엔 훔쳐온 씨앗을 인도 남부의 칙마갈거 지방의 카나타카에 뿌려 농장을 일궜다. 1616년여 예멘의 아덴에 진출해 있던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서 커피가 자란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전해 듣고 상인으로 가장한 스파이를 인도로 밀파한다. 이 스파이는 인도에서 재배하고 있던 바바부단의 커피 원두와 묘목을 확인하고 이를 입수해 본국으로 밀반출했고, 네덜란드로 들어간 커피 묘목은 네덜란드 식물원에서 증식됐다.

  4. 터키
    아라비아인들은 자신들의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싹이 터서 발아 할 수 있는 종자를 삶거나 불로 건조 시켜서 반출을 막았다. 터키가 아라비아반도와 유럽의 일부 나라를 지배한 16세기에 커피는 이스탄불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터키에서는 아침마다 남자가 생두를 볶아 커피 가루와 물을 섞어 여자에게 대접했다. 맞선을 본 여자 집을 방문했을 때 커피를 대접하지 않으면 결혼을 거절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때 나온 커피가 술탄 커피인데 술탄 커피는 씨를 발라내지 않은 커피 열매를 그대로 말려 빻아서 만든 커피로 걸쭉하게 마신다

  5. 인도네시아
    1616년 예멘의 아덴에 진출해 있던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서 커피가 자란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전해 듣고 상인을 가장한 스파이를 밀파한다. 1658년 스리랑카 실론섬에서 본격적인 커피 재배를 시도했으나 해충에 의해 실패하게 된다. 1696년 암스테르담 식물원의 연구원이었던 헤리쿠스 츠바아이 데크론이 예멘의 아라비카 커피 종자에 인도 산 말라바의 종자를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을 만들었고, 커리의 이상적인 기후조건을 갖춘 네덜란드형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농원을 이루는 것에 성공했다. 이후 자바섬에서는 커피의 대량생산에 성공하였고, 1706년부터 자바에서 생산된 커피를 유럽으로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이 커피가 바로 현재까지도 좋은 커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자바커피의 탄생이다. 이때부터 한동안 대단위로 세계로 보급되는 커피는 모카(Mocha)와 자바(Java) 커피가 유명해졌으므로 모카와 자바가 커피라는 뜻의 보통명사로 통칭된다.

  6. 콜롬비아
    19세기초 중남미 지역 중 브라질 다음으로 커피 생산량을 자랑하는 콜롬비아에서의 커피 경작은 10세기 초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안데스산맥의 가파른 언덕에 아라비카종을 심었다.
    콜롬비아는 커피 재배의 우수한 지형 조건과 가공 기술로 유럽에서 브라질을 제치고 가장 선호하는 품질 높은 마일드 커피의 최대 생산국이다. 마일드 커피란 고급스러운 신맛을 가지고 있으며 브라질 커피와 비교하면 부드러우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7. 프랑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커피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령 자바 섬에서 수확되는 커피의 주요 고객인 국왕을 암스테르담 시장이 국빈 방문했을 때 커피 묘목을 선물로 건네주었고, 프랑스에서는 이 열대과일을 잘 키우기 위해 처음으로 온실을 지었다고 한다.

  8. 프랑스에서 아메리카로 그리고 중남미 전역에 전파
    프랑스에서 아메리카로 커피가 건너가게 된 사연에는 특별한 일화가 있다. 1714년 네덜란드로부터 들어온 커피나무는 파리의 왕립 식물원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이때 아메리카의 프랑스령 군도인 ‘마르티니크’로 발령받은 해군 장교 ‘가브리엘 미티유 드 클리외’는 임지로 가기에 앞서 기념으로 가져갈 것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친구와 함께 야밤에 식물원으로 들어가 1.5m의 커피나무는 가지고 나왔다. 배에서 운반도중 본인에게 할당된 물까지 커피 묘목에 주면서 운반된 커피나무는 마르티니크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1726년에 첫 열매를 맺었다. 훗날 포랑스령 가이아나로 옮겨져 더욱 번성하게 되고, 1777년 ‘마르티니크’에는 1천 900만 그루의 커피나무가 지라고 있었고, 이곳의 묘목은 다시 아이티와 산토 도밍고, 과텔로프 등지로 보내졌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다시 브라질과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전역으로 확산 되어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1748년에는 쿠바에 전파되었으며 1825년에는 미국의 하와이 코나 지역에 전파되어 지금도 유명한 하와이언 코나의 신화를 일궈낸다.

  9. 자메이카(1725년)
    당시 영국령이던 자메이카 최초의 커피는 1725년에 니콜라즈 라웨즈 경에 의해 마르티니크 섬으로 부터 아이티를 거쳐 들여와 그의 소유지인 앤드류 성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이곳의 커피는 곧 포틀랜드 성과 토머스 성으로 묘목이 이식되어 재배되었고 재배 된지 8년 동안 37만5천Kg이 수출되었다. 이 무렵 유럽에서는 자메이카 커피가 우아하고 환상적인 맛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커피의 황제”라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탄생하게 되었다.

10, 브라질 커피의 전파(1727년)

브라질은 1500년에 포르투갈의 인도 원정대의 ‘카브랄’ 제독과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발견되었다. 카블랄 제독에 의해 처음에는 ‘테라다베 라크르지’라고 불렀으나 몇 해 안 되어 브라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17세기 말엽, 브라질과 수리남 사이의 국가 ‘가이아나’는 네덜란드령과 프랑스령으로 분리되었는데, 크고 작은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프랜시스코 지 멜로’라는 육군 상사를 단장으로 한 특별 사절단을 ‘가이아나’에 파견했다. 멜로 상사는 형식상으로는 영토문제를 해결하는 사절 대표였지만 비밀 임무는 가이아나에 있던 커피나무의 묘목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용모를 지닌 멜로는 가이아나 총독을 만날 때는 영도문제 해결에만 온통 신경을 쓰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저녁에 열리는 파티 클럽에서는 음악과 식물에 조예와 관심이 많은 낭만적인 인물로 변신하여, 가이안 총독 부인의 관심을 얻는데 성공한다. 총독 부인이 자신에게 빠져 있다고 확신했을 때 멜로는 그녀에게 은밀하게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았다. 커피나무를 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운데 브라질에는 이 나무가 없어 무척 아쉽다고 말하고 귀국하게되면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커피나무를 바라보고 싶다고 하면서 몇 그루를 가져갈 수 없느냐고 호소했다. 귀국하는 날 총독 부인은 커피나무 반출 금지령임에도 불구하고 멜로에게 작별인사로 건네주는 꽃다발 속에 다섯 그루의 어린 묘목이 있음을 확인한 후 브라질로 귀환했다.

  1.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대중화 됨

이탈리아 사람들은 하루 3번 커피 타임을 가지는데, 아침엔 카페라떼, 점심엔 에스프레소 도피오, 저녁엔 카푸치노를 즐겨 마신다. 미국인들은 유럽에 비해 묽은 커피를 마시는 편이고, 전체 인구의 65%가 아침에 거피를 마신다. 우리나라는 1896년에 아관 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고종 황제가 머물면서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가 소개하여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고, 그 후 1900년 우리나라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에서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당시 서양에서 들어 온 국물 이라는 뜻으로 양탕국이라 불렀다. 1902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커피샵을 개장한 것은 손탁 호텔이다.

IV. 최초 커피 하우스 오픈

유럽최초 1720년 베니스 삼마르코 광장에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 개장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 1650년 야곱(Jacob)
런던 최초의 커피하우스 1652년 파스콰 로제(Pasqua Rosee)가 (Cornhill) 오픈
미국 최초의 커피하우스 1696년 뉴욕에 John Hutchins가 더킹스암스(The King’s Arms) 오픈
프랑스 최초 커피하우스 1686년 프로코피오(Procopio) em 프로코프(Cafe de Procope) 오픈
미국의 시애틀에서 1971년 스타벅스 1호점 오픈
1773년 보스턴 차사건으로 미국인들이 홍차 대용 음료로 커피를 장려하였다.

V. 커피 단어의 어원

커피의 식물학상 속명은 Coffea이다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북부의 카파라는 지명 커피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 밖에 ‘기운을 북돋우는 것’, ‘술’ 등의 의미를 가진 ‘카와(Qahwah, kahwa)’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탈리아는 caffe, 프랑스는 cafe, 독일은 kaffee, 네덜란드는 koffie. 영국은 coffee, 일본은 ‘고히’라고 하며, 중국은 가(咖)', 러시아는 kophe, 체코슬로바키아는 kava, 베트남에서는 caphe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