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정해져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정해져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와같은 이야기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곤 한다.
먼저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조차도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운명 자체가 본래의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또는 카르마와 다르마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카르마는 정해진 숙명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다르마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카르마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선택하며 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운명의 큰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세세한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에 있는 사람이 서울로 가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차를 몰고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버스를 타고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간에 문제가 없다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고속도로를 타고갈 수도 있고 국도를 타고갈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가 우리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칠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하나씩 말하자면 잘못된 내용이 하나씩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명이라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하는 필연적이고도 초인간적인 힘을 말하는 것인데 빈틈이 있다?
그것 자체가 이미 그들의 말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타고가며 경험할 수 있는 것과 국도를 타고가며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할 수 있지만, 차를 몰고가는 것과 자전거를 타고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차를 몰고가는 것은 그저 도로를 타고 주변 환경을 돌아보는 것이 전부이나 편하고 빠르다.
자전거를 타고가는 것은 느리고 힘들지만 주변 환경에 더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으며, 어디서든 힘들면 쉬어갈 수도 있다.
두가지 경험은 명백히 차이가 있으며, 그 경험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경험이 운명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러한 경험을 하였지만 운명은 저러한 방향으로 삶을 결정하도록 하였으니 운명이 시키는 방향으로 가게되는가?
한두명이면 모르겠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 문제는 모든것을 주관하는 운명이 있다면 해결되는 문제이다. 내가 서울을 향할 때 이동수단을 결정하는 것은 미리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을 타고갈지 고민하더라도 그것조차도 운명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문제가 한가지 있다. 그 운명은 누가 결정한 것인가.
만약 초월적인 무언가가 우주의 모든 것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라면, 그 무언가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가?
만약 그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이 바로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순간까지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그의 운명은 누가 결정하였는가?
이것은 마치 인도철학의 오류와 같다.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인도철학에서는 거대한 코끼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거대한 코끼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 아래에는 거대한 거북이가 있다고 한다.
운명이 초월적인 무언가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은 이같이 결과에 대한 원인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운명은 결정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개개의 존재가 결정하고 행동한 것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서 바라보면 이미 고정되어버린 과거이므로 운명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그것이 운명적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여 결정된 것이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 것이므로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고 노력하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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