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큰 나무 같았다. 키도 크지만 하체가 늘씬하니 길어서 비율도 좋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짙어 동네 아주머니들 시선을 많이 받았다. 엄마가 아빠 칭찬을 하실 때면 빼놓지 않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다. 엄마와도 이십년 가까이 나이차가 나신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너 할아버지야?” 했을 때 아. 아빠가 나이가 많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인가 아빠가 내 생각보다 나를 더 빨리 떠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죽음이 책 속의 텍스트가 아니라 내 삶속에 있다는 걸 배웠다.
아버지는 시계처럼 부지런했다. 당신은 그런 습관을 자랑스러워했다. 새벽이면 흙 묻은 장화와 자전거를 끌고 5분 거리 텃밭으로 향했다. 도시농부다. 텃밭이 아니라 본격적인 밭이었다. 밭 한 가운데는 호미, 가래, 낫 같은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고, 밭 주변에는 몸 굵은 오동나무가 둘러서 있었다. “우리 딸들 시집갈 때 장롱 해줘야지이.” 오동나무를 심은 이유를 그렇게 설명하셨다.
밭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할 수 있다. 막내 동생까지 걷고 뛰는 게 수월한 나이가 되었을 때 가끔 볕 좋은 날 우르르 밭으로 몰려가 농사놀이도 하고 콩을 걷어서 불에 그슬려 먹기도 했다. 겉이 시커먼 콩줄기를 열어보면 김이 모락 나는 콩들이 줄맞춰 누워있었다. 진하고 달콤한 초록색 콩. 볼따구니며 손에 검댕이 묻는 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었었다.
6살 때부터 다닌 마리아유치원은 수녀님들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그 깜깜 시골에서 큰 기린모양 인형이며 미끄럼틀, 마루로 된 바닥이 있던 근사한 유치원이다. 마루는 초칠하고 마른 걸레로 닦아 반짝 반짝 윤이 났다. 유치원복을 입고 타이즈를 신고 걷다 보면 꽈당 미끄러질 때도 많았다. 유치원 복에 노란 모자를 쓰고, 하얀 타이즈를 신고 아버지 자전거 뒤에 매달려 유치원을 다녔다. 아버지 허리춤을 꽉 잡으면 눈앞에 아버지 넓은 등만 보였다. 킁킁. 아버지 냄새. 그리고 함께 맡아지는 바람 냄새.
동생들과는 한살 한살씩 차이가 나는 연년생인지라 서로 싸움도 잦았다. 사소한 걸로 신경전을 벌이고,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말싸움을 하고 있으면 몽둥이를 든 아버지가 나타났다. 맏이인 내가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 억울하다. 아버지의 규칙이 어거지 같았다. 아마 그 시절이 사춘기였나 보다. 사춘기를 속으로 보내면서 아버지와는 좀 멀어졌던 거 같다. 대신 이상은, 최재성, 이문세에 빠져서 지냈다. 친구들 집에 처박혀 책을 보거나,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서 동아전과, 표준전과를 보고 문제집을 사다가 집에서 풀면서 시간을 보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아버지는 나의 세계에서 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