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 30대에 해야 할 일들 같은 시리즈가 유행했다. 누군가는 열심을 내면서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것 중 하나이다.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어렵게 느껴지는 일. 벽을 넘는 작업 같은 거다. 나에게 글쓰기는 무엇인가?
반칙
초등학교 저학년 글쓰기 숙제가 생각난다. 방학마다 있던 독후감. 초등학교 시절에 우리집 책도 모자라 친구네 집 책까지 섭렵할 정도로 책에 빠져서 글을 읽었지만 글을 따라 가던 내 감정과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독후감은 난감한 숙제였다. 그 해 방학 독후감 숙제는 참 찝찝했다. 내가 고른 책은 집에 있던 전집이었는데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계어린이명작 시리즈였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책의 서문에서 문장들을 가져왔던 기억이 난다. 설마 선생님이 똑같은 책을 가지고 있을까 하며 두근거리던 마음. 숙제를 내면서 떳떳하지 못하던 기분이 생생하다.
동경
고등학교 친구 민희는 글 솜씨로 유명했다. 도내 대회에서도 뭔가 상을 탔던 것도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내가 그 친구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도 사실 가물가물하다. 아마 가을철 학교 축제 때 그 친구가 쓴 시를 한편 읽었던 것도 같다. 그 친구와 나의 교집합은 영어선생님이다. 영어선생님 J는 민희의 담임선생님인데,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J를 사랑했다. 가끔 J가 민희의 글솜씨를 칭찬할 때면 묘하게 질투가 났다. 마치 나도 글을 잘 쓴다면 J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상상 하기도 했다. 후에 민희는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을 했다.
혼란
대학, 대학원을 거쳐 마지막 관문인 졸업논문을 쓰게 되었을 때, 글쓰기는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몇 단락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논리적인 글을 써야 했을 때 막막함과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논문의 핵심은 그 안에 내 생각을 녹이는 것인데, ‘내 생각’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읽은 글을 이해하고 소화해서 내 관점과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점이 불안을 발동시켰고, 어딘가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이 논문, 저 논문을 뒤지기에 바빴다. 뭔가 부족하고 어색해 보이는 부분을 고칠수록 글은 더 이상해졌다. 마치 벽에 난 흠집을 고치기 위해서 손을 댔는데 눈에 띄게 더 이상해지는 식이었다.
유니콘 찾기
논문작업을 하면서 1년 동안 헤매고 헤매다가 한계점에 도달했다. “시간을 충분히 준거 같은데 뭘 했는지 모르겠군요. 고친 부분이 더 읽기가 어려워요.” 심사위원 한분의 이야기였다.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해서 글을 고쳤는데 고치기 전 보다 더 이상하다니. 최대한 내가 낼 수 있은 시간을 더 확보하고, 잠도 줄이면서 고쳤는데... 뭐가 문제일까. 문제는 나도 아직 내용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 명료하지 않은데 있었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는 것인데 그 사실을 믿지 못해서이다. “이미 이 안에 내용이 다 있는데 잘 엮지 못해서 그래.” 지도교수님 말도 믿기지 않았다.
해체와 정제
잠시 논문작업을 쉬면서 나를 돌아봤다. 글을 쳐다보면 불안이 올라오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니 생각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깊은 숨을 쉬면서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했다. 그들이 내 논문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그러자 명료한 무언가가 내 안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의 글 안에 녹아들었다. 그런 부분들이 늘어나자 어디가 과도하고 어디가 비어있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더할지가 명료히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쓰기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기는 감각을 위해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1회, A4 한 장 가량의 글을 쓰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는데, 쓴 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작업이 어색했다. 읽는 사람의 시선이 자꾸 의식 됐다. 그 감정은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그다지 쿨한 사람은 아니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유치한 마음이 읽혔다. 총 16주 동안 15개의 토막글을 써서 올리고, 다른 사람의 글도 읽어보면서 역시 세상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다시 알게 되었다. 뭔가 안심이 되면서 한편으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순간은 아버지에 대한 글 두 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미처 하지 못한 애도를 글쓰기를 하면서 찬찬히 할 수 있었다. 그 두 편에 아버지 이야기는 아직 마무리 하지 못했는데 당분간은 그대로 두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더 곱씹어보려고 한다. 글쓰기가 나에게 주었던 가슴적시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앞으로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고 싶다. 어떤 식으로 언제, 누구를 향해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 때까지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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