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은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아직 나이 어린 중학생인 여동생 민경과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으레 학교마다 몇 있는 결손가정의 비행청소년, 그것이 우경의 모습이었다. 허나 동생 민경은 그런 우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경과는 반대로 환경이 그러하니 철도 빨리 들었는지 행동거지도 또래 아이들에 비할 바 없이 성숙했다.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그런 모범생이었다.
어린 시절엔 그렇지 않았지만, 민경은 우경이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하며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밖에선 어떨지 모르나 이젠 우경에게 아예 말을 걸지 않았다. 허구한 날 쌈박질이나 하고, 나약한 아이들이나 괴롭히는 오빠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일 터였다.
우경이야 그런 민경이 그리 달갑지 않았으나 자신이 나서서 그런 민경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관계를 바로 잡거나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좀 지나다 보니 단칸방에 단 둘이 살고 있으면서도 둘은 마치 서로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점점 더 그게 편해졌다.
언젠가 한 번 민경이 술에 취해 돌아온 자신을 멸시하는 듯 바라보는 시선을 느껴 술김에 뭘 꼬나보냐 욕설을 하며 몇 대 쥐어박았는데 민경의 반응이 놀라웠다. 아니 반응이랄 것이 없었다. 무슨 나무토막에 대고 욕을 하고 손찌검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 일이 있은 뒤론 우경도 민경에게 완전히 신경을 꺼버렸다. 최소한의 양심인지, 겁을 집어먹은 건진 몰라도 그냥 민경을 내버려두었다.
우경은 매일같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놀다가 들어가면 민경은 자고 있었고, 우경이 어쩌다 일찍 들어가면 민경이 도서관에 가고 없었다. 그러니 딱히 얼굴을 마주할 일도 거의 없었다.
우경은 이날도 마찬가지로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민경은 여느 때처럼 방 가장자리에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은 채 자고 있었다. 우경은 옷을 벗지도, 씻지도 않고 그대로 비어 있는 공간에 쓰러지듯 누웠다.
“씨발... 씨발.......... 씨발..........”
우경은 연신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욕지거릴 뱉었다. 고양이의 발톱에 긁힌 손목이 아려왔다. 눈을 감자 우경의 눈앞에 세로로 째진 무시무시한 짐승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귓가엔 고양이의 울음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했다. 우경은 욕설을 뱉고, 끙끙거리며 앓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우경은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단 느낌에 퍼뜩 눈을 떴다. 아직 사위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막 잠을 깬 우경은 실제인지 허상인지 모호했으나 자신의 가슴을 타고 올라앉은 시커먼 그림자를 보았다.
우경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검은 그림자 안에서 두 개의 손이 뻗어 나오는가 싶더니 우경의 목을 틀어쥐었다. 따끔할 정도로 차가운 손이었다. 좀 이상한, 이질적인 감촉이었다. 목에 닿는 손바닥이 까슬까슬했다. 우경의 목을 틀어쥔 두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위라도 눌리는 걸까?
우경은 끙끙 신음을 흘리며 속설을 따라 천천히 손가락 끝부터 힘을 주고 움직이려 애써보았다. 효과가 있었다. 조금씩 손가락이 끄트머리부터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경의 목을 틀어쥔 손은 아주 세게 힘을 주지는 않았다. 어째 당장에 죽여 버릴 기세는 아닌 것 같았다.
우경이 마침내 두 팔을 자유로이 움직이게 됐다고 생각됐을 때, 문득 불이 탁 켜지듯 우경의 가슴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는 것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경은 그걸 보자마자 기겁하여 얼른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여태 본드의 환각이 계속될 리는 없다. 우경의 가슴 위에 올라타고, 두 손을 뻗어 우경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그림자!
그것은 분명 우경이 밟아 죽인 검은 고양이였다.
그것이 인간의 형체를 하고 우경의 가슴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하지만 시커먼 털북숭이 몸뚱이에 목 위로 올라붙은 그 얼굴은 분명 검은 고양이의 그것 그대로였다. 쫑긋한 두 귀에 옆으로 비어져 나온 여섯 가닥의 수염, 살짝 입이 벌어지며 뾰족한 송곳니와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 보였다. 길게 찢어진 눈동자로 우경을 똑바로 보다 고개를 쳐들면서 기분이 좋은 듯 연신 목을 울리며 그르릉거렸다.
우경은 우으으- 하는 신음을 흘리며 동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생은 이불 안에 들어박혀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우경이 다시 고개를 바로 했다. 분명했다. 우경이 제 손으로 죽였던 그 녀석이 우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 생각만큼 힘이 강하진 않았다. 우경은 용기를 냈다. 자신의 목을 조른 손을 콱 붙잡았다. 이제 몸이 꽤 자유롭게 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우경이 확 몸을 돌리자 목을 조르던 녀석이 옆으로 홱 굴러버렸다. 생각보다 훨씬 나약했다. 우경은 자신감이 생겼다.
‘씨발! 좆만한 고양이 새끼가! 두 번은 못 죽일 줄 알아??!’
우경은 지난밤에 죽인 것보다 훨씬 거대해진 사람의 몸을 한 검은 고양이를 향해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얼굴을 향해 주먹을 꽂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는 이내 축 늘어졌다. 우경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우경의 이내 검은 고양이가 그러했듯 그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죽어! 씨발! 죽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