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 kr_fiction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in #fiction7 years ago (edited)

300px-Cerebral_lobes.jpg

  1. P군의 급우 L의 증언

“P는 원체 이상한 짓을 많이 했어요. 평소엔 너무 얌전하고 착해요. 그냥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어요. 사실 대개는 그래요.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 이상한 짓을 해요. 앞자리에 앉은 애 뒤통수를 후려치질 않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질 않나 처음엔 그냥 웃어넘겼는데 이게 반복되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당연히 애들이랑 다투기도 많이 다퉜죠. 주먹다짐도 하고. 생각해보세요. 가만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거나 발로 차여보세요. 그렇잖아요. 가뜩이나 다들 예민한 중학생, 그러니까 사춘기 시기잖아요. 쉬는 시간에 바로 한판 붙는 거죠. 웃긴 건 막상 얻어맞은 애가 씩씩거리면서 P한테 가서 욕을 하고 싸움을 걸면 P는 막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이 먼저 사과해요. 그런데 선빵은 항상 P가 먼저 날렸어요. 아- 먼저 때린다고요. 그리고 더 웃긴 게 뭐냐면 치고받고 싸우는 와중에도 P는 입으론 사과를 하기도 해요. 미안해! 진짜 미안! 이러면서 주먹 날리고, 이단 옆차기를 해요. 이러니까 나중엔 애들이 미친놈이라고 다 피했어요. 뭐 저도 결국엔 슬슬 피했죠. 그리고 P는 뭐랄까? 항상 불안해했어요. 어쩌다 뭐가 그리 불안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P가 답하길, 아무래도 조만간 자기가 자기를 죽일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딱 그 얘기 듣자마자 얘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게 웬걸? 진짜 그렇게 됐잖아요? 좀 안됐어요.”

2, P군의 외할머니의 증언

“P가 어릴 적부터 내 입이 아프게 말했어요. 애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러니까 귀신이 들린 것 같다. 큰 굿을 한바탕 해야 된다고요. 당연히 애 엄마야 이런 말을 통 들어먹지 않았죠. 그거 때문에 거의 의절할 지경까지 갔어요. 아직도 예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돋아요. 애가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을 거예요. 저희 집에 처음으로 놀러 왔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저는 제 외손자가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죠. 마냥 귀엽고, 예뻤죠. 시골집에 처음 놀러 온 어린 손자를 그냥 보듬고 볼에 뽀뽀해주고 그랬죠. 그날 밤에 저는 안방에서 자고, 애 하고 애 엄마는 사랑방에서 잤어요. 그러다 한밤중에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서 깼어요. 마당에서 뭐가 막 탁탁탁 소릴 내면서 뛰어다니는데 저는 누렁이 목줄이 풀렸나 싶어서 살짝 문을 열고 작은 틈으로 밖을 봤는데, 글쎄 이제 걷기 시작한 애가 그 한밤중에 마당을 이리저리 걷고 뛰고 하는 거예요. 아무리 제 손자라지만 퍼뜩 겁이 나더라고요. 그러다 아이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서더니 제 쪽을 홱 돌아보는 거예요. 어휴........ 정말 까무러칠 뻔했어요. 애가 눈이 감겨 있더라고요. 전 얼른 문을 닫고 문고리를 잠갔는데, 탁탁탁탁! 문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나더니만 문고리를 붙잡고 막 흔들어대는 거예요. 저는 부처님, 신령님 찾으면서 이불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죠. 그렇게 한참을 문고리를 잡고 흔들다가 소리가 멈추더라고요. 전 도무지 밖에 나가볼 엄두가 안 나서 그대로 밤을 새웠는데 다음날 날이 밝아서 나가보니까, 애가 엄마랑 밖에 나와 있는데 지난밤 일은 전혀 기억 못 하는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 이래도 애가 귀신 들린 게 아니에요? 진즉에 살풀이를 했어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네요........”

3, P군의 어머니의 증언

"솔직히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점점 나아졌어요.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부터 애한테 귀신이 들렸네, 미쳤네, 어쩌네 하는 소리 들으면서도 제 자식이니까, 제가 낳았으니까 꼭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고 애썼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천성은 정말 착한 아이였어요. 제가 엄마니까 알아요. 정말 천성은 선한 애였어요. P는 이상한 짓, 못된 짓을 하고 나면 제가 한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어요. 말과 행동이 좀 달랐지만, 제 힘으로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았어요. 제 행동을 자기도 어찌할 수 없다면서 울기도 했어요. 저는 아이에게 매달려서 이 사회와 사람 사이의 관계,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지켜야 할 도리, 질서, 법규, 도덕 조금 과할 정도로 아이를 압박했어요. 어쩌면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이는 나름 잘 따라줬어요. 제게 고맙다고도 했어요. 하지만 아이의 내면 깊숙한 곳에 뭔가 끔찍한 게 있었던 거예요. 아이는 어떻게든 제 말에 따라 정상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그것만은 확실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 내면의 숨어 있던 그 무언가가 아이를 끝장내버렸어요. 저도, 아이도 졌어요. 그 끔찍한 것에 진 거예요. 그게 다예요."

4, 뇌신경과학자 H의 증언

"이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P군의 사례에 관해 국과수에서 일하는 동료인 K로부터 전해 듣고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동의 하에 아이의 부검에 직접 참관 및 참여하게 됐습니다. P군의 두뇌를 살펴봤죠. 더 정밀한 분석을 진행할 것도 없이 제가 의구심을 품었던 부분이 금방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P군의 경우 선천적으로 뇌량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기형이었죠. 쉽게 말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뇌가 좌뇌, 우뇌로 되어 있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두 뇌는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하는데 아시다시피 좌뇌는 논리와 언어중추를 담당하고 우뇌는 정보를 종합하고 즉흥적, 예술적인 부분을 담당하죠. 최종적인 결정과 부조리의 합리화, 구체적 표현은 좌뇌가 담당합니다. 뭐 쉽게 말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대부분 좌뇌가 결정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가끔 이 두뇌를 잇는 뇌량이 끊어지거나 형성이 안 될 수가 있는데 그럴 경우 두 뇌는 제각기 다른 사고를 합니다. 제가 보기에 P군의 이성적이고 예의 바른 언사는 좌뇌에서,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우뇌에서 제어한 것 같은데 뇌량이 없으니 이 두 가지가 하나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완전히 상반된 행위를 동시에 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그것은 사춘기에 이르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 자살충동에까지 나아갔고, 보통의 경우 그것은 좌뇌의 논리적 결정에 의해 폐기됩니다. 하지만 P군의 경우 좌뇌의 논리적 결정에 따라갈 틈도 없이 우뇌가 행동을 개시해버린 겁니다. 최근 들어 인간의 두뇌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고, 나노 탐침이나 나노탄소튜브 등을 활용한 두뇌의 물리적인 장애 및 정신문제 치료법도 실제 도입을 앞두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군이 겪은 문제를 일컬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증후군이라고도 부릅니다."

-끝-

Sort:  

Hi! I am a robot. I just upvoted you! I found similar content that readers might be interested in:
https://brunch.co.kr/@sohyunsoo/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