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내 것이 아닌 공간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 지배하려고 들었다. 나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는 반항밖에 배우지 못한 어린 영혼은 내 공간을 마련한다는 명목하에 스스로를 돈 버는 도구로 세상에 내던져 버렸다. 끊임없이 욕망하는 나를 채우는 것은 '소비'였다. 나의 필요를 가장한 욕망으로 빈 공간을 채워갔다. 합법적으로 공간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도구로서 존재하던 나는 세상과 분리된 공간은 그저 공구상자일 뿐이었다.
과거의 시간이 나를 만들었지만 붙들고 있는 과거의 기억은 흐릿하다. 어떻게든 윤곽을 그려 그 순간을 잡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에게 과거의 시간은 일기장에 토해낸 잉크로 말라붙어있지만 이 전시공간에 남은 과거의 시간은 무의식 저편에 남아 바람이 불면 부스럭대며 일어나 나를 강하게 뒤흔든다.
100년이 넘은 이 집은 일제시대 작곡가 채동선 선생님이 살던 곳이다. 6.25전쟁 중 채동선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비어있다가 이화여대 김용서 교수님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할 때까지 살다 지방으로 내려가셨다고 한다.
고사리 작가는 이 집 내부를 꼼꼼히 소품 하나하나까지 비닐로 감싸놓았다. 마치 '염'을 하듯. 집과 내가 비닐로 분리된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조심스럽다. 비닐 저 편으로 보이는 집의 어른거리는 피부결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집의 역사와 나의 역사를 연결시켜본다.
두 번째 찾아왔을 때, 집은 혼자 비닐을 바스락거리며 중얼대고 있었다. 다락에서 어릴 때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내가 세상을 피해 숨죽이고 있던 공간의 냄새와 같아 잠시 머물러있었다.
마당으로 나와 이 집이 그랬던 것처럼 고사리 작가를 기다렸다. 작가는 작품이 감상하는 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하고 이후 잊혀지더라도 어떤 계기로 폭탄 터지듯 강하게 인생을 뒤흔들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전시를 보고 온 날, 집을 청소하고 내가 가진 물건들이 왜 이 자리게 있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되물었다. '소비'로 물건을 '소유'하여 '필요'를 채우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소비가 아닌 방법으로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기로 했다. '두려움'이라는 비닐에 갇혀 서서히 죽어가는 나의 내면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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