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당시 중국과 소련의 관계를 절묘하게 이용해서 등거리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션즈화는 북한이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을 중국이 북한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으나, 그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1959년 2월 13일 마오쩌뚱은 국무원외사판공실에서 정리한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일부 동지들이 조선 동지들의 결점을 많이 언급하면서, 성과는 비교적 적게 언급하여 문제를 단편적으로 평가하는 잘못을 범했다’는 것이다.(446, 주 235, 건국이래모택동문고, 제8책, pp.41-43)
1960년 10월 진행된 중국과 조선의 추구시합 중 발생한 조선심판에 대한 비난에 대해, 조우언라이는 직접 국가체육위원회의 관련부서를 비판하면서, 군중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446, 주237, 중국외교부당안관 116-00498-07, p.51)
상기한 내용은 중국이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중국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그기간에도 북한이 공개적으로 중국에 반발하는 것을 무마하는 정도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북한이 중국의 편을 드는 것은 후르시쵸프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북한이 후르시쵸프를 비판한다고해서 소련과 관계를 악화시켰다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중국세력을 제거했던 결정적인 시기인 56년 반당종파사건때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0년 김일성이 항조우로 마오쩌뚱을 방문했다. 이때 마오쩌뚱은 미제국주의에 대한 후르시쵸프의 유화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김일성은 마오쩌뚱의 발언에 맞추어 1955년 후르시쵸프가 자신을 불러 미제국주의에 대해 반대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말했다.(447, 주 238, 모택통전(1949-1976), pp. 1075 -1076)
션즈화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를 북한이 중소분열시기에 중국에 보다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주요한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447) 그러나 당시 북한이 중국이 미제국주의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소련보다 중국을 더 지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북한은 소련의 후르시쵸프가 평화공존을 한참 주장하던 당시에 소련과 손잡고 북한에서 중국세력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시기 중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것은 이미 북한내에서 연안파를 완전하게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상태에서 개인숭배를 반대하는 소련보다는 자신과 유사한 입장의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권력장악과 유지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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