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낙태 수술을 하던 중 아기가 살아서 태어나자 숨지게 한 산부인과 전문의
가 재판에서 “아이가 태어났어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일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장철익 김용하 부장판사)는 업무상촉탁낙태, 살
인 등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전문의 A 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심리했다.
A 씨는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임신 34주 여성에게 제왕절개 방식
으로 낙태 수술을 하려다가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며 살아 있는 채로 태어나자
의도적으로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임신 후기인 34주에 이르면 태아는 몸무게가 2.5kg 안팎으로 자라고, 감각 체계
가 완성된다.
A 씨는 ‘생존한 채로 태어난 아이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하냐’는 재판부의 질문
에 “숨이 꺾인 상태는 아니었다. (산모의) 배 속에서 죽는 상태는 분명 아니었
다”면서도 “산모의 출혈이 심해 이를 신경 쓰느라 태어난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고 답했다.
아울러 “앞선 태아 초음파검사 결과 심장병이 있었던 만큼 아이의 생존 가능성
이 낮았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A 씨는 “어떤 경위든 30주가 넘은 태아를 수술한 것은 잘못”이라며 “산모가 강간
을 당했다면서 부모가 부탁한 사정 등이 있지만, 결국 제가 떨치지 못하고 수술
해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A 씨 측 변호인은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음
에도 1심에서는 이를 유죄를 판결했다. 낙태죄는 무죄로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
다. 또한, 살인죄가 아닌 영아살해죄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산모의 모친이 ‘딸의 인생을 위해서 꼭 낙태 수술을 해달
라’고 사정해 수술하게 된 것”이라며 “이 사건은 강간 사건임이 명백해 모자보
건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강간 등에 의
해 임신한 경우 낙태가 허용된다.
앞서 1심 재판부는 A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낙태 수술 중 태아가 산 채로 태어났음에도 아이에게 아무런 조치 없이
양동이에 넣어 사망하게 한 것은 비난 정도가 크다”며 “피고인은 수사과정에서
간호조무사와 병원 직원을 접촉해 ‘출산 당시 아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허위진술을 종용하고, 허위진료기록부를 작성하게 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양
형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