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에 대해 '참'이다! 라고 주장할 때 그것의 진위를 가리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그것이 구체적인 오감으로 경험이 되는가?
만일, 내가 지금 마우스를 만지고 있고 내 마우스는 흰색이라고 할 경우 이것은 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내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에도 같이 작용할 확률이 거의 100%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물리적인 세계에서의 참은 이런 오감의 참에 근거한다.
또하나는 오감으로 경험할 수 없지만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 참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것은 삼단 논법의 원리에 의해 명백하게 도출될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두가지 '참'에 대해 주장할 때 여전히 우리는 '경험'에 의지 한다는 데 있다.
눈으로 확인하여 참이라고 하는 것도, 사고작용을 통해 추론을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그 작용의 핵심은 '경험'에 근거해 있다. 단지 차원이 좀 다를 뿐.
그렇다면, 무엇이 참이라고 주장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경험'을 믿을만한 근거가 되는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사람의 오감도 서로 다른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고, 사고 작용도 수준에 따라 매우 다르게 체험될 수 밖에 없기에 우리는 '참'을 따질 때 반드시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진실성'을 따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진실한가? 사유하고 있는 사람의 성품이 얼마나 진실한가?는 지식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된다.
최근 썰전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 점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는 형식논리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는 주장을 하지만, 그 주장의 이면에 어떻해서든 관점을 왜곡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주장을 볼 때면 그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객관적인 사실 뿐 아니라 그 사실을 바라보는 사람의 진실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바람직한 지식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