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22)를 찾았다. 최기영 대표께서 이태리 조각가 메리 폴라(Mary pola)의 개인전 작품 디피를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 디피를 하려면 작가와 대화를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이태리 통역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이태리에서 유학했던 임원행 작가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임 작가께서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우리는 필동면목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를 방문했다.
우리는 메리 폴라와 남편 마우로(Mauro) 그리고 친구 엠마누엘라(Emanuela)와 인사를 나누었다. 메리와 마우로는 이번 한국 방문이 첫 방문이란다. 하지만 엠마누엘라는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단다.
그들은 친화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낙천적이었다. 우리는 작품 디피에 대해 논의했다. 난 메리에게 두 가지 작품 디피 방안을 제안했고, 메리는 그 중 한 가지 작품 디피 방향을 결정했다. 우리는 곧바로 작품 설치에 들어갔다.
한 달 전 최 대표로부터 메리의 작품 디피를 요청받았을 때 메리의 작품을 연출하기 위해 난 최상흠 작가에게 작품 받침대에 관해 자문을 얻었었다. 최 작가는 나의 연출 방식에 대한 말을 듣고 받침대를 직접 제작해 주겠다고 하였다.
최 작가가 보낸 작품 받침대들은 최 작가답게 꼼꼼하게 포장되어 왔다. 난 포장을 하나씩 하나씩 풀었다. 메리와 마우로 그리고 엠마누엘라는 ‘베일’을 벗은 작품 받침대를 보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시공간에 작품 받침대들이 설치되자 메리의 차례가 시작되었다. 메리 역시 작품들을 꼼꼼하게 포장해 왔다. 난 메리의 작품들을 사진으로만 보았다. ‘베일’을 벗은 작품들이 나타나자 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메리의 작품은 답배갑 크기의 작은 조각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조각들은 크기와 달리 매우 정교했다. 난 섬세하게 표현된 그녀의 조각 작품들을 보고 홀딱 반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조각 작품들은 손으로 직접 제작한 것이라기보다 마치 기계로 제작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975년 이탈리아 서쪽에 위치한 사르디냐 섬(Sardinia)에서 태어난 메리 폴라는 사싸리 국립 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Sassari)과 피렌체 국립 미술원(Accademia delle Belle Arti di Firenze)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중부의 움브리아(Umbria)에서 작업하고 있다.
메리의 작품들은 이탈리아는 물론 러시아 등 유럽지역에서 전시했을 뿐만 아니라 베이징 현대미술관(Beijing World Art Museum)에서도 전시되었다. 물론 이번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의 메리 개인전은 한국에서의 첫 전시회이다.
난 최 대표로부터 메리 개인전 소식을 전해 듣고 그녀의 홈피(http://www.marypola.com)를 방문해 보았다. 그녀의 대표작은 미니멀한 철조각 작품이었다. 홈피에 올려진 그녀의 작업실은 망치와 용접기 등 전통 작업방식의 환경을 가진 마치 기계공장처럼 보였다.
메리의 철조각 주요 재료는 쇠(iron)와 코르틴 스틸(corten steel)이었다. 그녀는 철판과 고철(scrap iron) 그리고 오래된 오일 드럼통(old oil drums)을 망치로 두드리고, 끌로 다듬고, 커터기로 자르고, 용접기로 붙이는 부단한 수작업을 통해 미니멀한 조각을 탄생시킨다.
메리의 철조각은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 대표는 나에게 그녀의 미니멀한 철조각에 반해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조각의 미니멀한 형태에 주목한 반면, 메리는 철의 이질적인 특성에 주목했다.
“나는 금속의 상반되는 두 가지 다른 성격, 즉 철의 단단하고 반짝이며 뚫리지 않는 강성과 이에 대비하여 산화에 연약한 표면과 쉬 녹슬어버리는 약성에 주목했습니다. 나의 조각은 따뜻한 색조로 세월을 보여주는 두 얼굴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 전시되는 그녀의 일명 ‘기억(Memories)’ 시리즈는 이전 단순함에 정교함을 접목시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단순함’은 형태의 단순함보다는 어디선가 봄직한 형태라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메리의 작은 조각들은 마치 유럽의 박물관에서 봄직한 유물들과 닮았다고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조각들은 뒤샹(Marcel Duchamp) 식의 ‘레디-메이드(ready-made)’는 아니다. 그녀는 어떤 유물들을 모델로 삼아 재해석한 것이다.
물론 2015년부터 시작된 메리의 ‘기억’ 시리즈 경우도 금속의 두 얼굴을 지닌 세월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녀의 ‘기억’ 시리즈는 정교함과 함께 산화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메리가 ‘기억’ 시리즈에 사용한 재료는 금속판뿐만 아니라 주석과 구리 그리고 은 등 다양하다. 머시라? 구체적인 사례로 메리의 작품을 들어 언급해 달라고요? 조타! 여러분의 요청에 따라 그녀의 두 작품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첫 사례로 타원형의 형태로 제작된 오브제 작품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마치 귀금속 같은 귀중한 물건을 담아놓는 작은 ‘함(case)’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작은 타원형 ‘함_작품’에 산화된 못 하나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메리의 진술을 들어보자.
“그것은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오래된 작은 함을 모델로 삼아 재해석한 조각 작품입니다. 은으로 제작된 타원형의 뚜껑을 보면 이니셜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이니셜은 제가 구입한 작은 함에 새겨져 있던 이니셜을 좀 더 화려하게 새긴 것입니다. 물론 제가 구입한 작은 함은 ‘보석함’입니다. 보석함은 흔히 다이아몬드나 에메랄드 그리고 사파이어 또한 루비 등의 보석으로 귀걸이나 목걸이 등을 넣는 상자로 간주되지요. 하지만 저는 보석함이 꼭 귀금속만 담는 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보석’에 대한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어떤 이에게는 녹슨 하나의 못조차 귀한 추억을 간직한 보석이 될 수 있으니까요.”
흥미롭게도 이번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 전시된 메리의 12점 조각 작품들 중에 단 한 점만 제외하고 11점의 조각에는 ‘못’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못들은 한결같이 다른 크기와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
더군다나 그것은 구부러지고 녹 쓴 못들이다. 물론 그 못들 역시 모두 메리가 쇠로 제작한 것이다. 그녀는 은으로 제작한 함과 쇠로 만든 못을 교묘하게 산화시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난 지나가면서 메리의 ‘기억’ 시리즈 중 한 점만 못이 부재한다고 중얼거렸다. 그 조각은 묘한 형태의 조각이다. 언 듯 보기에 식물의 입을 다문 잎사귀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는 작은 뚜껑과 걸이용 줄도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에 유럽인들이 사용했을 것 같은 어떤 오브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기억해보고자 했지만 어디에 쓰였을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난 메리에게 물었다. 그녀의 답변이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 향수를 담는 것으로 사용한 오브제를 재해석한 조각 작품이지요.”
아~~ ‘향수병’! 그래서 뚜껑이 있고, 목에 걸 수 있는 줄도 있었던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메리의 ‘향수병’은 향수(香水)가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향수(鄕愁)가 담겨진 오브제이다.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람이 사용했던 물건은 남는다. 우리는 그 남겨진 유물로 이미 떠난 사람을 기억하곤 한다. 따라서 사물은 인간을 ‘보충-대리(supplement)’하는 셈이다. 혹자는 말한다.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기억의 죽음, 즉 잊혀지는 것’이라고. 내일 저녁 6시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서 오픈하는 메리 폴라의 개인전 <기억>에서 ‘기억’이라는 향수(鄕愁)가 담겨진 조각을 향수(享受)하시길 바란다.
물론 나도 낼 오픈에 참석할 것이다.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의 메리 폴라 개인전 <기억>은 6월 30일까지 전시된다. 강추한다!
@ 이태리 통역과 작품 설치까지 해주신 임원행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이번 메리 폴라 전시를 위해 아름다운 선반과 받침대를 제작해 주신 최상흠 작가께도 감사드린다.
@ 이번 전시를 위해 협찬을 해주신 파올라 치콜렐라(Paola Ciccolella)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장과 직원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작품 디피를 위해 협력해주신 마우로와 엠마누엘라에게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