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 발제문

in #kr-art6 years ago (edited)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와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연관성 상에서 국가간의 경계와 그 상상적 공동체라는 것과 지금의 아시아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한 고민입니다.

‘지금 세계 모든 민족의 생활은 서로 교류하고 생산물을 교환하고 있으며 모든 관계는 상호적이다. A국의 문화는 B국으로 수입되어 그 나라의 새로운 문화를 낳는 재료가 된다. 그리고 B국의 신문화가 성립된 후에는 다시 그것이 A국으로 수입되어 A국 개혁의 모범이 된다.’ 이 말은 쑨원의 비서로 일본을 방문한 다이지타오가 1928년 간행한 『일본론』에서 문화형성이 서로의 교류에 의해 진전되어 가는 것의 의의를 말하던 부분이다. 그는 이 글에서 무력행사가 때로는 문화의 역행을 불러오기도 하는 지점을 우려하기도 했다.(772)

광주비엔날레 전시 <상상된 경계들>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큐레이터: 클라라 킴
모더니즘의 유산에 대한 새로운 고려 사항을 제안하고, 우리의 공유 및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상기시키고자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관념이 특히 유효하다. 국민국가란 사회적으로 구축되고 본질적으로 상상된 존재이며 인쇄 매체의 출현으로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유통이 가능하지고 따라서 소속감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됨에 따라 나타날 수 있었던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모더니즘의 분명한 그림자를 꼽자면 여러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상징 권력이 분명 내재한다는 것이다. 서구 모더니즘 건축 역사는 서구권 이외의 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의는 간과되거나 실패한 유토피아 서사로 일축되기 일쑤였다. 일부학자와 이론가의 관점으로 보자면 모더니즘의 세계적 확산은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 역학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작가들이 본 모더니즘 프로젝트란 사회적 진보나 경제적 발전이 아닌 급변하는 정치적 흐름 속에서 애초의 타당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에이미 시겔, Lot248, 2013, HD video
에미이 시겔, 프로버넌스, 2013, HD video
포스트 식민주의 시대의 새로운 인도라는 맥락 하에 서구의 모더니즘의 건축을 모방하게 했다. 60년 후 주요 경매 쇼룸에 동양의 멋이 수놓이 모더니즘 최상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로버넌스(소장이력)>은 가구(의자)가 여러 경로로 이동하며 공간에 위치해 있는 것을 영상에 담은 작품이다. 오랜 시간에 걸친 그 의자의 이동 경로의 네트워크는 가구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은 가리며 대화를 피함으로써 가구의 주인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언캐니하고도 의인화된 디아스포라의 재연을 보여준다.(2018 광주비엔날레 카달로그)

사상연쇄로서의 문화 교류의 측면에서 위의 전시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의 교류와 그것의 이동 경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프로버넌스>에서 여러 장소에 있는 의자를 보게 되는 게 나는 그게 되게 오싹하게 느껴졌다. 공포영화에서 계속 사람이 쫓아오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었다. 어느 장면에서 주시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작가도 작품 설명에서 그것이 언캐니한 느낌을 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낯선 것 같으면서도 익숙한 형태에서 느끼는 감정인데 그 의자가 같은 문화의 복잡성과도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매를 통해 다시 유통되는 과정은 현재의 문화가 어떻게 교류되는지 자본적 차원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측면을 말하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 사업은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평화를 보증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모하마드 하타는 일본 침략에 동조하는 인물로 보일까봐 일본 군인을 만나는 것도 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내셔널리스트적인 사상을 갖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조카에게 일본 유학을 권유하는 양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주변국을 의식해야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지점은 조요보요의 예언과 전설에 따라서 사람들이 일본을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아시아 민족을 지배하는 지점을 비판하기보다 일본을 아시아의 힘으로 인식하여 일본에 기대감을 걸었던 것이다. 사실 예언과 전설은 아주 미신적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동양에서는 그런 것들을 중시 여기며, 그러한 맥락에서 동양적인 특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본이 스스로 갖는 아시아에 대한 책임감과 의식에 동조하는 경향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고 거기에서 쓸 인재를 키우기 위하여 유학을 장려하고 교육을 했던 지점에 근거로 인식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은 서구의 국민국가와 달리 동아황화권으로 위계질서가 있으며 평등이나 자유가 없었다. 그것은 가족적인 국가로 민족적 제휴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동아시아의 유학생들은 일본에 소외감을 품기도 했다. 헌병대의 감시를 받거나 교육시설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학생들은 일본의 의도와 달리 자신들이 배운 것이 쓸모 있는 지식이었다는 친근감을 표하는 부분도 있었다. 왜냐면 결국 일본은 점령에 실패하였고 그 과정에서 문화 교류에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유학생들은 여러 정세에 따라서 본국에 돌아가서 국제적 알력에 노출되어 자신의 처신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정세에 따라 생존하기 위해서 입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알력 아래서 개인의 정체성은 유지되기 힘들었고 국가 사이에서 공동보조를 하거나 아시아주의자로써 행동하기도 했다.

호 추 니엔, 무명과 유명, 2015-2018, Synchronized doble channel HD projection on 2 side of a screen
호 추 니엔 작가는 <동남아시아 비평 사전>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것은 동남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동남아라는 말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생겨난 말로 미군이 일본 점령으로부터 해방시킬 지역을 동남아라고 부른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가 알파벳을 따라 정한 26가지 단어 중 <무명>은 G에서 Gene Z. Harahan, Ghost, Ghost writer와 연관 있다. 한라한은 멕시코 혁명에 관한 책부터 헤밍웨이의 저작을 번역하기도 한 작가인데 그의 정체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대필저자이거나 조직의 일원일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Ghost writer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클리셰와 같은 고스트는 코뮤니즘과도 연결된다. 공산주의는 유령적이다. 공산당 선언을 보면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좌익 역사는 항상 억압되어 그들의 행위는 혼령화되고 유령화 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측면과도 연관성이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한라한을 표현하기 위하여 할리우드 영화에서 집필행위를 담은 영상을 수집하여 편집하여 만들었으며 한라한이 쓴 글로 영상을 구성했다.
<유명>은 라이텍에 관한 이야기이다. 라이텍은 그가 가진 15개의 이름 중 하나이다. 그는 3중 간첩이었다. 말라야 공산당 서기장이었으며, 프랑스, 영국, 일본을 위해 일했다. 그에 대한 정보 역시 소문이며 불확실한 약력일 뿐이다. 왜냐면 모든 혁명과 반란 반역자에 대한 기록은 형사의 보고서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양조위의 영화를 편집하여 만들어졌다. 양조위는 영화에서 간첩, 밀고자, 첩자의 역할을 맡기도 했기도 했기 때문이다. (유튜브, 호추니엔 불확정성의 원리 참고)

-아시아적인 것은 존재하는가?
일본이 아시아와 외교 교섭을 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식민지 이었음으로 그 국가의 주체가 아시아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일본은 그 교섭과정에서 국제법적으로도 구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아시아의 문화와 국제사회(구미)라는 이중적인 조건에 맞춰야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먼로주의는 바보의 꿈이라고 보는 니나가와 아라타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아시아적인 것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스즈키 다이세쓰에 따르면 “서양 사람들은 사물이 두 개로 나뉜 후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그 지점에서 사문을 생각한다. 공양은 대체로 이와는 반대로 사물이 아직 이분되지 않은 곳에서 생각을 시작한다.”라는 점에서 서구와 비교하여 아시아의 특징을 찾고자 한다.
호 추 니엔은 말레이 민족의 애미니즘에서 호랑이를 조상 영혼의 매개로 여기는 것에서 시작하여 동양의 호랑이에 대한 생각으로 발전시켰다. 호 추 니엔의 작품에서 호랑이는 서구의 공간 통제와 질서 부여를 깨뜨리는 동양적인 힘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후에 호랑이는 서구에 맞서는 일본군으로 묘사되거나 공산당으로 표상되는 부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인간”인간도 언급되었는데 호랑이 인간은 티모테우스A.쿠스노<호랑이의 죽음과 다른 빈 자리>에서도 나오는데 여기서도 호랑이 인간은 타자화되는 대상, 기록되어지지 못한 대상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역사적으로 서구에 맞서는, 주류에 맞서는 대상으로 야만적이고 미개한 인간으로 인식되었다는 차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