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다녀와서
덕수궁미술관에서 카페 회원님들과 본 <피카소와 모던 아트>전은 진정 위대했다. 서양 근대미술이 황금기를 건너갈 때 뭇 사조들이 출몰하던 시절의 핵심 사조인 '야수파' '큐비즘' '표현주의' '신표현주의' 그리고 피카소 시대를 가로지르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티스와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각각 한점 밖에 전시되지 않았으나 그래도 좋았다. 잔느 에뷔테른의 그림을 딱 한 점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행복은 무한리필 되었다. 키르히너, 에밀 놀데, 피카소의 작품들은 많았다.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 그림들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 힘든 시간이었다.
덕수궁의 만추는 아름다웠다. 관람을 마치고 전시실을 나서니 석조전 쪽에서 대금 가락이 한자락 흘러 나왔다.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는 것은 서울 사람들에게 축복이다. 덕수궁에서 남대문 시장까지 걸었다. 막내 이모의 걸죽한 입담과 인정이 베어 있는 <막내횟집>에서 쇠주를 마셨다. 못내 아쉬워 근처 포장마차에서 쇠주 한병을 맥주에 타서 마시고 집에 왔다. 집에 오면서도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느의 초상이 눈에 어른거렸다. 가을 바람이 휑하게 나의 심장을 뚫고 지나간다.
반 동겐 <푸른 눈의 여인>
네덜란드 출신 야수파 화가 반 동겐의 ‘푸른 눈의 여인(1908)’은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 그림이 너무 좋습니다. 처음엔 이 여인이 눈탱이가 밤탱이 되도록 누군가에게 맞은 건줄 알았어요. ㅋㅋ... 계속 들여다 보니 이 여인이 상당히 지적으로 보이네요. 요염하면서도 서늘한 지적 풍모를 잃지 않는 모습입니다. 보는 대상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의 강렬함. 자신의 내면에 함장된 폭발하는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자 했던 표현주의 화풍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림입니다.
모딜리아니 생각
예전에 나는 모딜리아니 평전열정의 보엠>을 읽은 적이 있다. 이목구비가 수려한 이탈리아 남자. 그는 허무와 퇴폐가 어우러지는 세기말에 파리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낸다. 그 때 이웃 비엔나에서는 클림트와 에곤 쉴레, 프로이트와 코코슈카, 바그너 등 예술의 천재들이 쏟아져 나와 지식 사회가 열광의 도가니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구체제 몰락과 자유주의자들의 등장, 권위에 대한 부정 등이 혼재하면서19세기까지 모든 가치관이 푹푹 썩어 나갔다. 신을 비웃고 가치의 전도를 외친 니체는 서양철학 전체를 뒤엎어버리고20세기 여명이 동터오는 아침에 죽었다.
모딜리아니가 살아 숨쉴 때 파리 예술계는 만가지 꽃이 피는 시절이었다. 이제 막 후기 인상주의를 건너온 파리 화단은 세기말을 앞두고 새로운 예술 사조의 싹이 움터오는 시기였다. 서민들 술인 압생트에 취해 눈빛이 몽롱했던 모딜리아니가 거닐던 몽마르트 주변엔 피카소, 툴루즈 로트렉이 있었고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베를넨느가 비역질을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모딜리아니는 수려한 용모로 파리 사교계의 뭇 여성들을 단 한번 눈빛 만으로 사로잡았던 난봉꾼이었다. 비엔나에서 노총각 클림트가 수많은 여인을 화실로 불러들여 사랑을 나눌 때 모딜리아니는 잘 생긴 얼굴 하나만을 밑천 삼아 파리 사교클럽을 휘어잡았다. 그는 파리의 클림트였다.
난봉꾼이며 가난한 화가였던 그가 마지막 연인 잔느 에뷔테른을 만난 것은 너무 늦었다. 그의 몸은 이미 술에 절어 있었고 병색이 완연했다. 14세 연하의 잔느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모딜리아니는 수많은 잔느의 초상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은 둘을 갈라놓고야 만다. 결핵성 늑막염이 모딜리아니의 사인이다. 마지막 사랑의 화염이 너무 뜨거웠던지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뱃속엔 모딜리아니의 아이가 있었지만 불꽃 같았던 사랑의 여운이 식기 전에 잔느는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다. 모딜리아니가 죽고 난 뒤 이틀 뒤 일이다. 둘의 사랑은 전설로 남고 <잔느의 초상>은 예술의 판테온 신전 한 가운데 빛나는 별이 되어 걸리게 된다.
"너무 느긋하게 있어서는 안돼. 너무 늦게 돌아오면 싫어. 당신이 너무 오래 내 곁을 떠나 있는 것은 안돼…, 나는 아틀리에에는 돌아가지 않겠어. 몽파르나스를 한 바퀴 쭉 둘러보고, 당신을 마중 가겠어. 당신 라탱가를 지나서 오겠지? 내가 그쪽의 작은 술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모딜리아니는 잔느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잔느가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모딜리아니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빨리 오라고 안달을 한다. 사랑하는 이가 없는 빈집에 가는 것보다 술집에서 기다리겠다고 떼를 쓸 만큼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온몸으로 사랑했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느의 초상들
모딜리아니의 마지막 연인 잔느 에뷔테른. 모딜리아니가 죽기 전 만나 사랑을 불태웠던 운명의 연인인 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자 그의 무덤에 흙이 마르기도 전에 뱃속에 모디의 아이를 갖고 건물에서 투신, 사랑하는 연인을 뒤따라 간다. 사랑이 이토록 치명적일까? 사랑은 가고 잔느와 모디는 페르라세즈 묘지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잔느의 초상만 남아 짧았던 사랑의 시간을 환영처럼 증거할 뿐....
좋은작품들 감상 잘했습니다^^
날이 너무 덥습니다......덥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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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모딜리아니에게 발목을 잡히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 ...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ntity/m0gsc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