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 이야기
친구들과 뗏목 시합을 벌였다. 누군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경주였다. 다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속도를 높여갔고, 나는 그만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지고 말았다.
수영할 줄 몰라 깊이 가라앉는 도중 어디선가 나타난 물고기 떼가 나를 거세게 휘감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가라앉으며 고래와 펭귄과 물개의 환상을 보았다. 바다 바닥엔 기대와는 달리 물풀이나 말미잘, 가라앉은 해적선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황량한 바닷모래 위로 세월에 풍화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나는 G, Em을 순서대로 연주했다. 날 둘러쌓은 물고기들은 음표에 맞춰 춤을 췄고, 나는 뗏목 경주를 하는 친구들이 걱정되어 바흐의 C#m 전주곡을 연주했다. 습관처럼 틀리던 부분에 이르러 나는 연주를 중단하고 일어나 다시 물고기 떼에 몸을 맡겼다. 고래와 펭귄과 물개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2. 오늘의 일기
오전에는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친구는 장염 때문에 어젯밤 응급실에 갔다가 바로 입원했다고 한다. 친구는 배가 아프기도 하고 옆자리 아주머니가 밤새도록 코를 골아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게 너무 심심하다고 해서 노트북을 빌려주러 간 것이다.
침대 옆 의자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었다. 친구는 나의 방문에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점심때가 다가오고 배가 고파졌기에 집으로 돌아왔다.
낮잠을 조금 잤다.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지은 다음 잠깐 누워 있었는데 잠이 든 것이다. 사라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사라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수학 단원평가를 잘 봤다고 자랑을 했고, 계산기를 사야 한다고 했다.
저녁에는 컴퓨터를 많이 했다. 내 노트북은 친구를 빌려줬기에,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했다. 왓챠플레이에서 영화 '테이크 쉘터'를 봤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 내내 커티스를 따라다니는 이 불안. 노아는 어땠을까? 수십 년간 비난과 조롱 속에서 묵묵히 방주를 짓고 있었을 텐데.
영화 '사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징조들, 개인적인 징조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정말 자신이 선지자인 건지, 아니면 미친 건지 누구도 알려줄 수 없다. 커티스는 가족을 위해 체념했고,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은 오히려 위로가 된다. 종말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건 종말보다 슬픈 이별이었을 테니까.
3.오래된 일기
2015년 6월 20일의 일기
하루를 시작할 용기마저 들지 않는 아침
다시 이대로 잠이 들어 천년 쯤 뒤에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든 것이 희미해질
그때라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여름에는 잘먹어야해요 장염 고생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