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천재소년 두기 @doogie 입니다.
오늘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오셀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4대 비극은 막장 중의 막장 드라마들입니다.
그래서 대충 읽어버리면 도대체 이게 왜 고전인 거지 의아해하며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게 고전이라면 나라도 쓸 수 있겠구나 할 정도의 건방에 빠질 수도 있고요. 저또한 이게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고전이란 말이야 하며 처음엔 허탈해 했습니다.
허나 작품들이 희곡이고 오래된 작품이기에 시대배경을 조사하고, 인물들을 나름 헤아려보고, 이들은 도대체 왜 이랬을까 하며 의문을 던져보며 여러번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엔 재미도 없었고 극중 드라마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표현들은 아주 뛰어났습니다.
극중배우에게 감정이입을 하려고 소리내어 대사를 날려보며 어떤 구절은 여러번 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읽어야 하나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혼자 읽었다면 고전의 맛을 맛보지 못하고 흘려 읽었을 겁니다. 그것 아무것도 아니더라 하면서요.
허나 이 책은 독서모임에 나가기 위한 것이였기에 대충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읽어야만 했습니다. 왜냐면 독서모임에서 일주일 전에 5가지 정도 토론 꺼리를 공지해놓는데, 그 질문들과 연계해서 읽고 가지 않으면 독서모임에서의 말잔치에 참여하는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책읽기가 좋다좋다 하지만 그게 상당한 시간과 집중을 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읽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아 시간낭비가 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둔재라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여러번 읽고 관련서들을 찾아 읽어보는 게 좋더라구요.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른 관점들에 대해 들어보기도 하고 그에 대해 다른 저의 관점을 얘기하다 보면 공감과 이해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의문점의 씨앗을 안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모임을 끝내는 게 저한테는 가장 좋더라구요. 뭔가 생각할 꺼리, 의문꺼리를 안고 오면 생각을 더 할 수 있거던요.
독서모임이 끝난 뒤 의문점을 안고 집에 온 뒤 여러 번 더 읽다가 제 자신이 [오셀로]의 무서운 질투심을 이미 체감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오셀로"는 제 밖의 누군가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저 자신도 이미 "오셀로"였다는 걸 알고는 두렵고 겸손해지게 되었습니다. 아! 나도 이렇게 내 질투심에 마구 흔들리는 하찮은 사내였구나 하면서요.
그런 뒤, 아! 이래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하는구나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400년 전에 쓰여졌다니, 셰익스피어의 인간이해의 깊이에 놀라고 맙니다.
[오셀로]는 "질투"를 다루는 드라마입니다.
뉴스에 보면 남녀가 헤어진 뒤 협박, 폭력, 살해(심지어 가족살해까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라고도 한다면 그 범죄의 한 가운데는 남녀간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들이 상당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질투"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복수심이나 분노를 느꼈거나
가까운 이의 "질투심"으로 인해 위기의식을 느꼈거나
또는 "질투"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적극 추천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 질투는 내 마음 알지 못하네
갑작스럽고도 충격적으로 사랑에 배신당하고 시간으로부터 추방당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질투는 논리와 달리 근거가 부실하여도 스스로를 완성합니다. 사실이 아닌 마음에 근거한 것이기에, 믿고자 하면 표정 하나 손짓 하나도 명확한 근거가 되어 사실로 둔갑하고, 그런 사실들이 모여 되돌릴 수 없는 진실이 됩니다.
질투는, 의심과 사실 사이에 놓여있는 긴장이란 보이지 않는 여백을 못 견뎌 합니다. 질투에게 그 여백이란 괴로움의 시간이어서 서둘러 메우려고 합니다. 질투는 고민의 세계가 아니라 확신의 세계에 가까워 보입니다. 질투는 확신하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이라 시간이 머무르지 못합니다. 조급한 마음은 과정을 불필요하게 여겨 부실한 결론에 가닿습니다. 질투는 인과론을 신중히 따지지 못하기에 함정에 빠져 사태를 그르치게 됩니다. 질투의 내적 함정은 확신하고자 하는 조급함이 만들어내는 비합리적인 인과론입니다.
잘못된 결론에 이르면, 질투는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 폭주할 위험이 큽니다. 배신과 복수라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하였고, 믿었던 시간 또한 빼앗겼습니다. 그에겐 사람도 없고, 추억의 시간도 없습니다.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괴로운 배신감과 들끓는 복수심 뿐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어떤 격정에도 끄떡없을 성품이고 그 무엇으로도 단단한 덕성을 긁지도 뚫지도 못할 거 같던", 장군의 자질은, 찬탈당한 왕처럼, 질투심에 자리를 뺏기고 브레이크 없는 차량처럼 파멸로 돌진합니다.
오셀로가 전쟁을 통해 체득한 건 빠른 판단력과 기민한 행동력입니다. 적과 아군만 있는 세계엔 모호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질투심이 생기자 결론은 순식간이고, 배신당한 마음을 속전속결로 복수로서 보상받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적은 항상 상대방이었으나 마지막의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적은 사방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도 있습니다.
오셀로는 이아고의 속내를 눈치 못 채 파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내 마음 속 열 길 심연을 마주하지 못해 파멸한 겁니다. 이아고는 질투의 격정이 휘몰아칠 경우 언제든 스스로 생기고 태어나는 마음의 다른 이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는 나]는 저주받은 괴물이고 세계는 지옥입니다.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저주받은 괴물로 추락한 자신을 낯설어 하며 내 마음 속 심연을 들여다보았다면, [질투하는 나]를 비출 수 있는 [또다른 나]가 눈뜰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질투하는 나를 바라보는 또다른 나]를 스스로 단단히 재구축하였다면, [질투하는 나]의 독주를 통제하였을 거고, 비극적 결말 또한 마주하지 않았을 겁니다.
질투는 내 마음 알지 못합니다. 악은 내 안에서 자라납니다.
내일밤 뉴스엔 또다른 오셀로가 비극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전집 5권], 민음사, 최종철 역,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