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in #kr-book6 years ago

이번에 남원 광한루에 가서  "'춘향전'을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하는데 이 말만큼 잘못된 게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춘향전은 우리 밑바닥 민중의 작품입니다.

춘향은 매를 맞으면서 "나도 한 지아비를 섬길 권리가 있다."라고 사또의 인권유린을 질타하면서 여권과 인권을 외쳤습니다.

춘향과 이도령의 첫날밤을 묘사한 장면을 보십시오.
유교윤리에 주술같이 묶여 있던 민중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자유연애의 욕구가 잘 나타나지요.
그리고 춘향전은 좌절된 욕망을 안고 몸부림치는 민중의 한을 담고 있습니다.

좌절된 사랑을 회복하고자 갖은 투쟁과 노력을 다합니다.

사또의 권위와 박해에 저항합니다.

감옥에서 점쟁이를 불러 점도 쳐보고, 방자를 시켜 서울에 있는 이도령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거기엔 보복이 없습니다.

춘향이의 한은 이도령을 만남으로써 풀렸습니다.

변사또에게 보복해서 한을 풀지 않습니다.

기생의 딸인 춘향이는 이도령과 결혼할 수 없는 신분인데도 사랑을 이뤘습니다.

여기에 민중의 신분상승 욕구와 평등에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지요.
학정에 대한 원망과 저항도 소극적이지만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로미오와 줄리엣'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토끼는 용궁에 끌려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지만 뭍에 와서 거북이에게 보복을 하지 않습니다.

흥부는 돈이 없어 매품을 팔고, 형수의 밥주걱에 뺨을 맞았지만, 부자가 되자 형과 재산을 나눠가졌습니다.

심청이는 왕후가 되고도 한에 맺혀 있었지만, 아버지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 한을 풀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특성은 한과 멋과 신명입니다.


- 김대중, <나의 길 나의 사상 - 세계사의 대전환과 민족통일의 방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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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3수에 떨어지고 정계를 은퇴하면서 1994년 전후로 강연한 내용들을 모은 책입니다.

비록 그 뒤에 다시 정계 복귀하여 대통령이 되셨긴 하지만요.
이 책은 부제에 나와 있다시피,

김 전 대통령이 주장하신 '3단계 통일방안'에 대한 내용이 그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1. 제1단계 : 공화국연합(국가연합) 방식의 통일

- 현존 남북 양 공화국은 현재의 독립국가로서의 권한, 즉 외교, 국방, 내정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한다.

- 양 공화국에서 동수 대표의 파견으로 공화국 연합기구를 구성한다.

- 공화국 연합기구의 임무는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2단계 연방제로의 진입) 등 3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 일방적 의사를 강요할 수 없는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연합에서의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제로 채택한다.

- 존속기간은 제2단계 연방제 진입까지 약 10년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 시기에 북한의 체제는 남한 및 서방과의 외교, 경제, 문화 등의 교류로 인하여 크게 변화되어 시장경제체제로 바뀜은 물론, 정치적 자유화도 진전되어 다당제와 자유선거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남한도 민족자주성 확립과 사회정의 실현의 주장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대응한다.


2. 제2단계 : 연방제 방식의 통일

- 10년쯤 진행된 공화국연합 단계를 거쳐서 북한 내에서 시장경제와 다당제, 그리고 자유선거가 스스로의 변화에 의해서 상당 수준 실현되면 자주적인 연방제로 이행한다.

- 연방제 아래서는 외교와 국방은 연방이 완전 장악하고 연방제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내정도 연방이 관여한다(현재의 미국식 연방제와 유사).

- 연방제 아래서 독립국가의 형태로 존재하던 양 공화국은 해소되고, 지역 자치정부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 연방정부 아래서는 연방대통령을 선출하고, 연방국회를 구성한다. 따라서 유엔도 단일 회원국으로 변하고 각국과의 국교도 단일화된다.

- 이 단계가 되면 상당부분 통일이 실현된 단계로 볼 수 있으므로, 완전 통일 단계까지는 수년의 단기간밖에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3. 3단계 : 완전통일 실현

- 연방단계 아래서의 지방자치정부는 해소되고, 남북이 분단 전과 같이 단일 정부체제로 전환하여, 1민족 1국가 1정부의 완전 통일국가를 이룩하게 된다.

- 통일국가의 이념과 체제는 21세기의 세계적 조류에 따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복지를 구현할 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 정리됩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데요,

김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20여년이 지난 현재로서도 가장 유효한 통일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국가연합과 연방국가의 1, 2단계의 기간에 대해서는 한 세대 정도씩, 그러니까 30년씩 총 60년 정도는 잡고 여유있게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서로 떨어져 있었던 기간만큼 차분히 서로를 이해하고 동화되기 위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일에서도 통일이 되었으면서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마음의 장벽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경제적, 사회적 격차와 대립이 해소되려면 적어도 한 세대에서 두 세대 이상 걸릴 것이라는 말이 정설이다'라고 합니다.

동서독은 우리 남북한만큼 경제적 격차가 크지도 않았고, 장기간 방송을 서로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듯 갈등과 비용이 많이 들어갔는데, 우리는 훨씬 더 차이도 크고 교류도 없었기 때문에, 훨씬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통일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아, 책 소개가 길어졌는데요,
맨 위에 인용한 글도 김 전 대통령이 강연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그리스 신화나 성경을 보면서,  서양 사람들은 전쟁이나 보복을 중시하는 반면,
우리네 단군신화나 다른 건국설화을 보면, 보복이 없는, 매우 평화로운 민족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의 말씀을 들으니, 우리나라의 건국이념 뿐만 아니라 춘향전, 토끼전, 흥부전, 심청전 같은 판소리 내지 민중소설을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비폭력과 평화가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통일도 비폭력 평화로 잘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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