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참만의 밤
한동안은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글, 특히 투박하고 즉흥적으로 써나가는 글에는 글쓴이의 마음이 깊게 배는데, 나는 후에 읽었을 때 즐겁진 않더라도 최소한 담담하게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글을 남기고 싶었다. 지금도 내가 담백하게 생각,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무너져 내리지는 않고 글을 마칠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을 담고 글을 시작한다.
2. 바람을 따라
24시간 영업하는 카페, 식당이 늘어서 있던 예전 동네와는 다르게, 이 곳에서는 꽤 걸어야 찾을 수 있는 편의점조차도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이 곳의 밤은 별이 보이는 완전한 밤이다. 문제는 낮이라고 크게 다르지가 않다는 것인데, 간단한 생필품을 사고 싶어도 걸어서는 왕복 1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경사가 심해서 내려갈 때는 시원하게 속도를 즐길 수 있지만, 올라올 때는 자전거에 메달리는 기대어 끌고 올라와야 한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어제는 꽤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4시에 아침을 먹곤 하는 내가 '이른' 시간이라고 하는 시간이라면, 보통은 '늦은' 시간이라 할 시간이다. 분명 잠을 더 청해야 할 시간인데,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옷을 입고 자전거에 올랐다. 한번도 지난 적 없는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사람도, 차도 많은 밝은 길에 도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24시간 영업을 하는 카페가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참을 서성였다. 마침 가방을 메고 왔고, 가방에는 몇달은 켜지 않은 랩탑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카페에 들어가서 예전처럼 글을 쓸 수도 있었다.계단에 발을 디뎠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안장에 걸터앉았다를 몇번이나 반복하고서는 결국 나는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모든게 나를 슬프게만 하는 것 같았다. 카페도, 랩탑도, 글쓰기도, 자전거도, 나 자신도.
3. 자멸적인 충동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는 자멸적인 충동이 인다고 하는데 실은 한번 깊은 슬픔에 빠지고 나면, 어떤 활동을 해도 굳이 자멸적인 충동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더라도 슬픔을 자아낸다. 상념에 의한 감정은 마치 꿈을 대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좋은 꿈을 꾸면 좋은 꿈이라 좋고 나쁜 꿈을 꾸면 그것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라는 것에 안도하며 감사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좋은 꿈은 그것이 현실이 아님에 슬프고 나쁜 꿈은 그 자체가 괴롭다.
내가 요즘 종종 하는 행동이 자멸적인 행동인지, 아니면 회복을 위한 행동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단지 지금은 그 행동이 나에게 슬픔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 행동이란 가방 안에 항상 편지 몇장을 가지고 다니며 틈틈히 읽는 것인데 그 중 하나는 15년이, 다른 하나는 1.5년이 지났다. 나는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다양한 분석을 들어보았다. 그 전문가들은 그러지 않기를 권했으나, 나는 내 마음 가는대로 사는 사람이다.
4. 샤덴프로이데
갑자기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샤렌프로이데는 남의 불행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마음을 뜻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읽으면,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불행을 느끼며 저열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5. 맺으며
혹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쓰기 위해서 많은 메모들을 남겼다. 하지만 어느 것도 쓰지 못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보다는 나은 기분이다. 읽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글이겠지만.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도 좋았다. 오랜만의 카페인이 내 속을 쓰리게 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더 나아지겠지요. 조금씩.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기를.
끝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끝이 난다면 그럴 수 있을 거에요.
오랜만에 무언가를 다시금 한다는건
시작이 어렵지 막상해보고 나면
SOSO한 기분이 들었던건 아닐까 싶은
님의 심정이 엿보입니다.
(아님말구요)오랜만입니다.
사실은 많이 어렵긴 했어요.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건 아니거든요. 몇번이나 내려놓아야 했었어요.
별이 보이는 완전한 밤, 자전거, 가방 안에 편지, 커피까지 여기 읽는 사람은 엄청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데요. 오르막길이랑 새벽 4시에 먹는 아침은 빼고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처럼 잘 관찰하시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시는 것 같은데요. 어려움은 곧 지나고 새로운 장소에서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이제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요. 단지 바라고 또 바랄 수 밖에 없겠죠. 하루하루가 지나며 바람만 갖고 살아가는게 어려워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