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운 주세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43년 처음으로 백운동서원(지금 소수서원)이 세워졌습니다.
이 서원을 세운이가 청백리인 주세붕입니다.
주세붕은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28세에 벼슬길에 올랐지만, 대쪽같은 성격 때문에 지방으로 좌천되었습니다.
여러 지방을 다니며 군수직을 맡았고, 1541년에는 풍기(오늘날 영주) 군수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풍기군수 시절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식량 생산을 늘려서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애썼으며, 분쟁이 생기면 명판결로 올바르게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풍기가 인삼으로 유명한데 그것도 다 주세붕의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을 더 윤택하도록 하기 위해 그가 인삼재배를 적극적으로 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큰 업적은 서원을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1542년 주세붕은 백운동에 안향의 사당을 세웠습니다.
안향은 고려 말에 성리학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대학자입니다.
그리고 이 사당에 많은 유학 서적들을 비치했고, 유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사당이 1543년에 세워진 최초의 서원 백운동서원입니다.
주세붕은 이 서원에서 사림파 제자들을 길러냈고, 성리학의 이치에 대한 토론도 벌이면서 지방 풍속을 유교적으로 교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운동서원은 명실상부한 사학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원의 인기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서원이 큰 성과를 있을까 의심을 품은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황에 이르러서 서원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게 됩니다.
주세붕은 1554년에 세상을 떠났고, 1550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가 바로 이황입니다.
이황은 백운동서원을 공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해 달라고 조정에 요청했습니다.
명종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땅과 노비, 책, 현판과 그리고 지금의 이름인 소수서원이라는 이름도 하사했습니다.
정부가 인정하는 서원을 사액서원이라고 부르는데, 백운동서원 즉 소수서원이 최초의 사학 교육기관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서원은 사림 학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게 됩니다.
오늘은 최초의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알려지지않은 한국사네요^^감사합니다
그렇죠 주세붕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요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한주 수고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짱짱맨님 늘 수고가 많으신것 같습니다
화이팅 합니다
주세붕님이라고 해야 하나.. 그림이 너무 재밌어요. 처음 봤는데 잊혀지지 않을 듯해요. 개인적으로 지명 이름 나오면 맨붕이 자주 와서 구글링 해봤어요.
영주시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북부에 있는 시이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명까지 찾으시고 너무 열성적이시네요 ㅎㅎ
앞으로 재미있게 봐 주세요
뒤로 갈수록 잘 모르겠는 분들이 많네요
정말 초상화가 너무 순진무구하게 생기셨어요 ;D
저도 초상화를 찾으면서 조금 재미가 있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