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코쿤족인 나는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한걸음 나서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이 내 안에 들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공부에 집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괜한 이동보다는 한 곳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먹고 살 궁리를 하는 편을 더 좋아하는 걸까?
하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모험을 감행하는 건 무섭지만 적정한 기술과 지식을 장착한 후에는 달라진다. 낯선 곳은 두려움이 대상이 아니라 수행해야 할 미션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렇다. 인류의 이동생활과 정착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을 짧은 나의 삶에 단순무식하게 적용해보았다. 잠시 생각해봤는데 기술과 지식이 있다면 나는 수렵·채집의 삶을 선택할 것 같다.
내가 품은 초기의 질문 몇 가지 중 하나는 바로 이거였다. 인류는 정착을 먼저 했을까? 농사를 먼저 지었을까? 그리고 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을까? 돌아다니는 게 힘들어서?
책 《사피엔스》에서는 크게 2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하게 말해보자면 이렇다.
1. 기후의 온난화
2. 종교적 이유
1. 기후의 온난화
약 18,000여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가고 지구는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비도 많이 오는 등 곡식이 자라기에 괜찮은 환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인류에게 곡식은 채집 식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곡식들이 따뜻해진 기후를 맞이하여 엄청나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로 먹는 채집 식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야생 곡식을 정착지로 가져가는 사이 낟알의 일부가 떨어져 싹을 틔웠다. 그렇게 점점 곡식들은 많아졌다. 그래서 이들을 수확하기 위해 처음에는 2주간 머물렀을 거다. 곡식이 더 많아지자 그다음엔 4주, 그다음엔 8주. 그러다 아예 머물러 살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악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수렵채집활동으로 동식물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던 그들은 도구를 만드는 기술을 접목해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기에 몰두했을지 모른다.
이 부분의 근거로 '나투프 문화'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나투프인들은 수렵채집인으로서 수십 종의 야생 동식물을 먹이로 삼았지만 영구 정착촌에 살면서 야생곡물을 집약적으로 채취하고 가공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피엔스》 p.131
TV에서 가끔 보는, 아직도 부족을 이루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들은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농사를 짓진 않을까 궁금했었다. 보이는 것으로만 따지자면 그들은 사냥을 하고 식물을 채집하러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해가 된다. 그 옛날 나투프인들도 그랬으니까.
나투프인들은 중석기 시대 사람들이다. 이들은 좀 더 탐구하고 싶은데 일단 지금은 지나가려고 한다. 찾아 보건대 나투프인만 다루는 대중서적은 찾기가 어려웠다. 설사 전문서적으로 있다고 해도 현재의 내 지식 레벨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투프인 = 중석기인 = 정착+수렵채집+약간의 농사'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2. 종교적 이유
보통은 1번의 이유로 농업혁명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기원전 9,500년에 세워졌을 거라 추정되는 유적이 있다. 바로 '괴베클리 테페'다. 일종의 신전인 이 구조물을 《사피엔스》에서는 수렵채집인들이 만들었을 거라 보고 있고 '두산백과'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시대를 구분하는 용어가 다를 뿐 비슷한 시기일 거라 생각된다. 두산백과의 내용을 일부 인용해본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직육면체 석회암 2개를 겹쳐 만든 T자형 기둥들로 이루어진 원형 구조물이 여러개 발견되었다. 원형 구조물의 직경은 3~5m이며, 16개 내외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운데 세워진 기둥 위에 지붕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둥의 최대 높이는 5.5m, 무게는 10~20t에 이르며, 유적지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부터 돌도끼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다듬고, 운반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발굴된 원형 구조물은 총 4개이며, T자형 기둥은 200여 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괴베클리 테페 [Göbekli Tepe] (두산백과)
대단하지 않은가. 기원전 9,500년이면 약 1,1500년 전의 일이다. 이것이 인류가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종교적 이유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괴베클리 테페를 지었을까? 혹시 이 구조물을 짓기 위해 정착생활과 농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괴베클리 테페도 궁금해서 따로 공부하고 싶은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다. 하지만 책 한 권은 빌려왔다. 읽어보고 내 수준에 괜찮으면 번외 편으로 글을 써볼까 한다.(아니면 말고)
유적만으로 그들의 생각까지 정확히 알아낼 순 없다. 이럴 때면 타임머신을 타고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나보단 고고학자들이 더욱 원하겠지? 그럼 나는 고고학자들이 다녀와서 내는 책을 읽는 걸로.
정리
대체로 인류가 정착을 먼저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듯하다. 물론 100% 똑같을 수는 없으니 누군가는 농사를 위해 정착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류는 신전을 짓기 위해 정착+농사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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