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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암호화폐 거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튤립이고, 그 다음이 남해회사고, 그 다음이 닷컴입니다. 하나같이 투기 광풍, 혹은 거품과 그 몰락에 얽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다들 한 소리를 하죠. 언제 휴지조각 되어도 안 이상하다. 도박하지 마라 그런 이야기들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북경협이라는 테마만 탔지, 실제 전철을 연결하기 위해 삽을 들지도 않았는데 날아오른 현대건설 우선배당주나 제가 얼마 전 전달해드린 부산산업은 왜 저렇게 급등했을까요? 반대로 DMZ라는 엄청난 호재와 더불어 북한 삼림 복원이라는 구체적 마스터플랜까지 나왔는데 퍼스텍, 누리플랜, 에코마이스터는 급격한 펌핑 후 덤핑을 맛봐야만 했을까요? 결국 주식이든 암호화폐든 선물이든 옵션이든, 성공한 투기는 투자고 실패한 투자는 투기가 되는거겠죠 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지금 월가를 우리는 엄청난 투기 자본들의 이전투구판으로 부르지만, 사실 초기 순수 자본주의 시대의 영국은 그 이상 무시무시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번 네덜란드의 몰락에 일조한 튤립에 이어, 남해 회사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남해회사 주식입니다. 분노의 펜자국이 보입니다(......)
남해회사(이후 사우스 시 컴퍼니, 혹은 사우스 시라 부르겠습니다)는 산업혁명 시대에 태어난 금융의 총아였습니다. 회사의 이름이 된 「사우스 시 제도」는 오늘날 페루와 멕시코 만 일대를 의미했습니다. 사실 페루, 칠레, 볼리비아 등중남미 지역은 철, 주석, 금, 은, 동 등 자원이 굉장히 많긴 합니다만... 교통과 급수와 같은 인프라 문제가 제법 커서 지금 세대가 되어서야 개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당시 영국 정부는 60만 파운드의 왕실 채무를 부담하는 대신 사우스시 컴퍼니에 면세권을, 스페인 왕실은 남대서양 영약의 무역독점권을 주었습니다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었습니다. 무역거래로 얻은 이익의 25%는 스페인에게 주어야 했고, 나머지 75%중 5%는 세금으로 부과되었습니다. 유일한 면세 상품은 노예 뿐이었죠. 요는 채산성이 매우 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우스 시 컴퍼니는 3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영국 국채를 모조리 자사주와 교환해주겠다고 나서며 국채 이윤을 4%로 내린다는 파격적 조건을 내세웁니다. 잉글랜드 은행은 국채 경매입찰을 포기했고, 국가가 보장하는 국채와 일개 기업 주식의 신뢰도는 순식간에 동격에 서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 주식을 우리가 사면 국가에서 반드시 보장해주겠다. 뭐 이런게 된거죠. 사우스 시 컴퍼니의 주가는 그날 하루만에 250% 가량 급등합니다.
약속된 뜨억상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사우스 시 컴퍼니의 오너, 로버트 할리는 이사진들에게 "스페인이 모든 식민지에서 우리 회사가 자유무역을 할 수 있도록 승인할 것이며, 영국-멕시코간 목화-금 교역을 사우스 시 컴퍼니가 무관세로 독점할 것이다"는 로드맵을 발표합니다. 모두 거짓말이었지만요.
허황된 로드맵만 맹신한 채 사우스 시 컴퍼니는 100만주를 유상증자했고, 런던 주식지수는 반년만에 3배 이상 불어납니다. 하지만 그 거품은 오래가지 못했죠. 사우스 시 컴퍼니가 나서서 많은 사기 회사들을 잡아넣는 '거품방지법'을 제정하고 이들 회사의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벌금을 매기게 했습니다. 네.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포화될 무렵, 약속된 냉각기가 찾아왔습니다.
로버트 할리는 "사우스 시 컴퍼니는 국가의 영웅으로서 관리와 성직자, 농민 및 국민 전체게 큰 부를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주역이며 투자자는 결코 사우스 시 컴퍼니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고 주주총회에서 역설했습니다만, 거듭된 시장 하락을 이겨내진 못했습니다. 주당 전고점 890파운드를 찍었던 주가는 1720년 9월 첫째주에 700파운드, 주주총회일인 9월 8일 640파운드, 다음날 540파운드, 다음날 400파운드로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지금 이정도 하락폭이면 바로 사이드카가 걸릴만한 낙폭입니다.
아이작 뉴턴 선생님도 추격매수했다가 고자가 되셨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우스 시 컴퍼니의 멸망에는 잉글랜드 은행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잉글랜드 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사우스 시 컴퍼니였거든요. 사우스 시 컴퍼니는 열심히 물을 탔습니다. 대세 하락장에서 잉글랜드 은행은 사우스 시 컴퍼니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루머를 곳곳에 흘려 데드캣 바운스를 일으켰죠. 실제 주가는 670파운드까지 반등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은행은 사우스 시 컴퍼니에 마지막 일격을 먹였습니다. 구제금융이 없을것이라고 발표하며 사우스 시의 주가는 120파운드까지 폭락,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루머를 흘리는 전후에 잉글랜드 은행과 관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루머를 퍼트린 뒤 매도하거나, 거품방지법이 입안되고 공표되기 이전에 잡주들을 펌핑 & 덤핑하는 등 수많은 악용이 가해졌습니다. 또한 잉글랜드 은행은 최고의 경쟁자였던 토지은행 '소드 블레이드 컴퍼니'를 압박하기 위해 사우스 시 컴퍼니의 주식을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소드 블레이드는 역시 토지를 배분해준다고 공언했던 사우스 시의 대주주였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 은행은 사우스 시의 채권을 대량 매집하고 소드블레이드 컴퍼니의 은행권까지 죄다 긁어모은 뒤 사람들을 조직해 뱅크런을 유발했습니다. 왕실에서 잉글랜드 은행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지만, 이미 사우스 시 때문에 4백만 파운드 이상 손해를 봤다며 핑계를 댔습니다. 그렇게 소드블레이드와 사우스 시가 도산 한 뒤, 잉글랜드 은행은 두 회사를 잡아먹고 국채 위탁 판매권을 획득하며 런던 은행업계를 제패하게 됩니다.
영국은행은 '강도로 돈을 번 부자'라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그런데, 또 이 배경에는 동인도 회사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먼저 뱅크런 공격을 가해온 것이 동인도회사였던거죠. 1707년 동인도 회사는 대량의 현물을 들여와 잉글랜드 은행의 은행권으로 바꿉니다. 30만 파운드의 은행권을 한번에 인출 요청하면서 잉글랜드 은행은 뱅크런 위기에 처합니다. 그 뱅크런을 막은 것이 앤 여왕과 서머셋 공작, 뉴캐슬 공작 등 든든한 정치적, 경제적 배경이 있는 대주주였습니다.
잉글랜드 은행의 이런 횡포는 어떻게 보면 처절한 생존경쟁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 이후, 금융시장의 각종 방어장치가 만들어지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거나 내부 정보를 사용해서 부정한 거래를 막게 되었지만, 이미 뉴턴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본 뒤였지요. 왕실의 마지막 히든카드로 불렸던 잉글랜드 은행, 그 뒤에는 무시무시하리만큼 냉혹한 자본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경제 시스템 뒤에도 이런 전쟁이 숨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한번씩 섬칫해지기도 합니다.
금융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금융이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려 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는 것은 지금 당장은 힘들것입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사우스 시 사건의 공포에서 벗어나 찾은 테제가 '공개', '공평', '공정'이었다는데서 우리는 블락체인 시스템과의 접점을 작게나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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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회사 말로만 들었는데 덕분에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지금까지 님의 글을 눈팅만 하다가 드디어 가입해서 첫 보팅을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써주시길 부탁합니다~!
아이작 뉴턴 선생님도 추격매수했다가 고자가 되셨습니다.
ㅋㅋㅋㅋ
결국 결과만이 투기냐 투자냐 를 정해주겠군요.
자주 나왔던 얘기라 이름만 알던 사건이었는데 정말 잘 정리해 주셨네요. 읽는 동안 똑똑해 지는 느낌이었습니다 ㅎㅎ
결국 숨어서 돈을 꼼치는 부류는 예~엣날 부터 있어왔고 그때도 "공개"가 어느정도 답이라는걸 알고 있었던 거군요... 왜 이렇게 블럭체인 기반 가상화폐를 못잡아 안달인지도 알것 같네요
그래프가 정말 무섭습니다.. 덜덜...
마음만 먹으면 가상화폐에서는 정말 쉽게 일어날수 있는 일이니 투자할때 정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피라던지 프로피라던지 프로피라던지.... ㅠㅠ
이란일도 있었군요.... 그나마 정보가 평등하게 제공되고 추적 가능하다는 점에서 블록체인이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ㅠ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역시 한번 매도한건 다시 쳐다보지 말아야합니다.
'공개', '공평', '공정'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버블투자에 대한 좋은 글이네요.
항상 개미들만 피해를 보는거 같습니다 불쌍한 뉴턴개미님 ㅠㅠ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정책보다 사전에 방지하는 정책의 중요성을 느낌니다(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요)
글 잘봤습니다~
뉴턴의 투자 패턴과 작년 12월 부터 올해 1월까지 저의 투자 패턴이 왜이렇게... 비슷한지 모르겠네요 ㅎ 참 사람 심리가 그런가 봅니다. : ) 블록체인을 통해 금융은 본질을 회복하고, 시장의 여러가지 비대칭성이 해소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미 댓글로 많은 분들께서 공감하셨지만 "Newton re-enters with a lot" 정말 슬프네요. ㅠㅠ
뉴턴은 한번에 고자가 되었지만, 다시 하면 많은 것을 배우고 언젠가 괜찮은 성과를 올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고자가 되어서 발..아니 재기불능이 되지 않도록 적은 돈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까지는 대부분 지키지만. 자신이 아직 실력부족으로 고자가 될 예정이란 사실을 모르는 채로 투자금을 늘리기 시작하더군요. 몇 개월 안에, 40% 손실 정도는 일반적으로 당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 남해회사는 오늘 처음 들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네요.
잘 정리하신 글 잘 보고 갑니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어디에 있냐를 생각해 보면, 화폐 이동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앴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마치 인터넷이 정보의 제약을 깨었듯이.
암호화폐 경제에서는 글에서 언급하신 '조작'이 불가능하다보니 제도권에서는 불편한 시각으로만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공개, 공평, 공정도 허상에 불과하지 않았을까요? 시스템 자체가 공평해져야 진정한 공평성을 논할수있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어렴풋이 알던 막연한 지식을 확실하게 해 주는 글입니다.
뉴턴의 ‘인간의 광기를 예측할 수 없다’의 가해자가 저 회사였엌ㅋㅋㅋ
나름대로의 규제가 있는 현대에서도 온갖 작전이 이루어지는데 규제가 없던 초기는 정말 ㅎㅎㅎㅎ
경제 이야기가 한편의 영화 같이 재미있네요. 가상화폐가 살아남을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치열한 경쟁속에서 결정 되겠죠^^
항상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시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항상 흥미 진진하죠. 권력이 같이 엮여 있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