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당(不知堂)의 차(茶)이야기 10.
“우리가 지금 남의 장단에 놀아나 다도를 배우고 있다는 말씀인교?”
수강생중 한 명이 내가 한 말에 항의를 하고 나서자 모두가 숨을 죽이며 내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비싼 수강료까지 내고 온 사람들에게 대놓고 멍청한 짓을 한다고 했으니 가만있지 못했나 봅니다.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세요. 어짜피 우리 모두는 남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살지 않나요? 하지만 알고 놀아나야 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眞實)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니까요.”
난 그 정도로 달래주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풀리지 않았나 봅니다.
“무신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심더? 선생님의 스승도 다도를 하신 분이지 않습니꺼?”
다른 학생이 다시 대드는 모습을 보면서, 효당 스님의 정체를 확실히 알려주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나는 이 강의를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가 효당 스님의 제자라는 이유로 수강신청이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데, 내 스승의 본색은 차인(茶人)이 아니라 불도(佛道)를 닥으시던 스님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다도(茶道)강의는 스승을 팔아먹는 것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중이 불도 이외의 것에 집착하면 외도(外道)가 되니까요.”
“그렇다면 스님은 다도(茶道)책은 왜 쓰셨는교?”
또 다른 사람이 비꼬듯이 물었습니다.
*이 사진은 다솔사를 위에서 바라본 정경입니다.
“스님은 ‘다도’책을 쓴 것이 아니라 ‘차도(茶道)’책을 쓰셨던 것입니다.”
“‘같은 차(茶)’자인데 그게 그거 아닌교?”
“‘도(道)’에는 다양한 길이 있듯이 차(茶)도 마찮가지죠. 스님은 한국의 차 형식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봅니다. ‘같지만 다르다’는 ‘평상심(平常心)’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
“그게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교?”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학생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솔직히 나역시 처음에는 스님의 책에 같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는 책에서 조선의 차인들을 소개하고 차 생활이 추구하는 목표가 삶의 멋과 풍미를 얻는 것에 있다고 쓰고 있지만, 차에 선(禪)의 의미를 붙이고 있는 일본의 다도와 무엇이 다른지 솔직이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본질적으로 다른 내용이 있었습니다.
- 전통사찰에서 볼 수 있는 돌상입니다. 민중들의 고통을 모두 해결해주는 거북을 상징합니다.
“효당 차도의 의미는 한마디로 ‘반야로(般若露) 차와 분죽차(糞竹茶)속에 있습니다.”
뜨악해 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말을 계속 이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직접 차를 만들면서 그 이름을 ‘반야로(般若露)’라고 했습니다. '반야'란 깨달음을 통해 얻어진 지혜란 뜻인데,
여기에 ‘이슬(露)'자를 붙여습니다. 지혜를 얻는 다는 것이 ‘이슬’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스님에게는 또 다른 차가 있었습니다. 그게 분죽차(糞竹茶)입니다. 이는 그의 차생활이 수행의 방편(方便)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분죽차(糞竹茶)라꼬요? 그기 무신 차입니꺼?”
학생들은 내 이야기가 너무 엉뚱했는지 차 우려 내는 것도 멈추고 모두 날 바라 보았습니다.
“효당 스님이 머물렀던 사찰은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多率寺)였습니다. 그곳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전통 문화가 짙게 묻어있는 곳이며, 그래서인지 가람의 형태도 아주 특이합니다.
그곳은 새가 날아가는 형태로 법당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입구에 아주 오래된 건물이 하나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다솔사의 뒷간입니다.”
사찰에서 뒷간은 본래 법당의 하나로 간주합니다. 그것은 수행자들에게 몸의 찌꺼기뿐만 아니라 마음속 잡념까지 모두 버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목조 건물 형태인 그 뒷간은 자연처리 방식으로 되어있어 똥과 오줌이 가득 모여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특별히 이 뒷간을 매우 중요시 여겼습니다. 썩은 나무가 보이면 곧바로 갈아끼우는 귀찮은 작업을 반복하면서도 이를 현대식 화장실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뒷간의 분뇨통 속에 잘 생긴 대나무를 골라 일년 이상 박아 두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면 대통 사이에 똥물이 스며들어가 고이게 되는데, 누군가 골병이라도 든다면, 이 대나무를 잘라 고인 똥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몸의 독이 빠졌던 것입니다.
“‘반야로’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차(茶), 그리고 똥통에서 뽑아낸 분죽차(糞竹茶), 차원이 다른 이 두가지 차(茶)는 스님이 추구했던 차 정신(精神)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다솔사 뒷간 모습입니다. 요즘은 깨끗이 보수를 해 놓았는데, 옛날에 비해 운치가 많이 떨어집니다.
“그 분죽차(糞竹茶)라는 기, 처음 들어보는 데, 혹시 모리선생님이 만들어낸 이름 아닌교?”
학생 한명이 던진 질문인데, 아마 내 이야기를 소설 쯤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분죽차는 내가 다솔사에 입문했던 1975년에 직접 경험한 최고의 차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번 강의로 미룹시다. 시작하면 길어질 내용이니까.”
나의 차도 강의 첫날은 이렇게 마감했습니다. 학생들은 의외로 큰 박수로 쳐주었는데, 왜 그같은 반응을 보냈는지 알 수없었습니다.
한주의 시작!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시작해요~^^
고맙습니다. 오치님도 즐거운 날이 계속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