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당(不知堂)의 차 이야기 11.
강의가 끝난 후 찻집 주인은 학생들과 함께 회식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인장은 스타급 차 강사가 출현했다며 비행기를 태워 주었고, 결국 간만에 술 한 잔을 걸치게 만들었습니다.
달빛과 별빛의 안내로 오르고 있었던 모릿재 길은 그날따라 기분좋은 산책같았습니다. 취기가 올라온 탓인지 산길이 더욱 흔들렸지만 당분간 식량걱정이 사라졌다는 안도감에서 콧노래까지 나왔습니다.
*(이 길이 모릿재로 올라가는 산 길입니다. 굽이구비 돌아가는 이 산길에는 무덤들이 있습니다.)
“와 그리 늦게 다니시는가?”
산길 중간쯤에 이르렇을 때, 누군가 문득 네게 말을 던져 날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길가 무덤 위에 힌 옷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십니까?”
정신을 차리고 그 노인을 바라보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효당 스님이었습니다.
“아니 스님이 웬 일이십니까?”
나는 그가 이미 열반했다는 사실마저 깜박 잊어버렸습니다.
“자네가 오는 것을 기다렸지. ‘반야로’의 본색을 ‘똥죽차’와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다니 역시 내 제자답다. 그 말을 해주고 싶었네.”
“정말이십니까?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어서 제 집으로 올라갑시다.”
“허허. 이제 그만 가보아야 겠네. 아무쪼록 수행자의 삶을 잃지 말거라.”
“잠깐만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선암사에 있는 오래된 강원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수많은 법문들이 여기서 펼처졌을 것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의 모습에 황급히 물었습니다.
“스님이 느꼈던 차 맛의 정체(正體)는 무엇입니까?”
과거에 묻지 못했던 ‘10 년 만에 알게된 그의 차맛’의 의미가 굼금해 물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답이 엉뚱했습니다.
“그건 ‘해골차’ 맛이지.”
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대답을 던지고 사라졌습니다. 없어진 스님의 모습을 찾아 불렀지만 보이는 것은 어두운 산과 별이 반짝이는 하늘 뿐이었습니다.
모릿재에 돌아오자 그대로 잠에 떨어졌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다음 비로소 전날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도데체 꿈을 꾼 것인지, 헛 귀신을 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분명히 17년 전에 돌아가신 효당 스님이었습니다.
‘똥죽차가 ‘해골(骸骨)차에서 왔다?’
분명하게 들었던 스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 ‘똥죽차’는 유신 정권에 대들다가 구속되었다가 출감한 후 다솔사(多率寺)에 들어갔을 때, 반 강제로 마셔야 했던 청색(靑色)색 차(茶)였고,
그것은 녹색(綠色)의 반야로(般若露) 차와 함께 고문으로 망가졌던 내 몸을 살려낸 ‘다솔사’ 특제 차(茶)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해골차에서 비롯되었다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릿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무덤입니다. 나는 가끔씩 이곳 귀신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날이 훤해지기 무섭게 난 어제 밤의 그 무덤에 찾아 가보았습니다. 아침 해가 솟아 올라 무덤을 밝게 비추고 있었으므로 난 그 위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그 의미가 1,300여년 전 무덤 속에서 마신 원효(元曉)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골이라는 다기(茶器)에 담겨진 물이 곧 차(茶)였던 것이고, 원효는 이 차를 통해 자신의 삶을 대오 각성하는 혁명적 사유(思惟)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心卽生 種種法生 (마음이 발동하니 온갖 법(法)들이 생겨나고)
心滅卽 龕墳不二 (마음이 없어지니 모두 같구나.)
三界唯心 萬法唯識 (세상 모든 것이 마음작용에서 비롯되고,
모든 현상이 지식(識)에 불과하다)
心外無法 胡用別求 (모두 마음속에 들어 있는데, 따로 구할 게 무엇인가)
해골차를 마시고 깨닫게 되었다는 이 시(詩)는 원효가 생존했던 사회적 대 혼란의 시기에 지어진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드려 백제와 고구려 정권을 무너트렸지만 그 후유증이 심각했습니다. 나라를 통체로 먹어버리려는 야심을 드러낸 당(唐)과 전쟁을 벌려야 했고, 멸망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을 통합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이같은시기에 불도(佛道)를 얻겠다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한가로운 짓이란 사실을 해골차를 통해 깨달았던 것입니다.
효당 스님의 차(茶)가 해골차의 맥을 잇고 있음은 분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시공을 초월한 원효의 똘마니로 살았던 그는 한국 불교가 권력에 빌붙어 민중들의 아품을 외면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하여 조계종을 탈퇴하여 ‘원효불교’라는 종단을 다솔사(多率寺)에 세웠던 것입니다.
효당의 이같은 행동은 1300년 전의 신라가 맞닥트린 사회와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던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당(唐)이라는 외세의 간섭으로 부터 벗어나야 했고, 민족끼리의 갈등도 통합해야 했던 신라(新羅)와 대한민국의 상황이 아주 유사했습니다. 효당이 추구했던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은 결국 반야로(般若露)로와 분죽차(糞竹茶)속 나타나 있었던 것입니다.
(이곳은 모릿재 화장실로 가는 문입니다. 저는 이 문이 입력과 출력의 경계로 가는 길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입력(入力)과 출력(出力)이 하나도 이어짐으로써 얻어지는 분죽차는 생(生)과 사(死)를 연결시켰던 해골차와 맥을 같이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반야로’ 차는 그 실체(實體)가 애매했습니다. 어째서 그는 자신이 만든 녹차(綠茶)를 반야로(般若露)라 했을까? 약속대로 다음번 강의 때는 이를 알려주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팔로워 하고 갈게요 ㅎ
괜찮으시면 맞팔 부탁드려요 :)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고맙습니다. 맞팔했습니다.
차에 얽힌 역사의 흐름과 의식의 흐름을 흥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셔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십시요ㅡ. ^^
3월의 시작을 아름답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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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님, 수고 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