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슬(露)'로 만든 茶.

in #kr-newbi7 years ago (edited)

부지당(不知堂)의 茶 이야기 12.

효당 스님의 ‘반야로(般若露)’차가 어떤 것인지 다음 강의때 알려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사실 그 답을 난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효당의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내용으로 그 답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모리재에 돌아온 나는 먼저 효당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반야심경(般若心經)에집중했습니다. 붓다가 설(說)한 이 경전은 깨달음의 정수(精髓)로 인정받고 있으며, 한마디로 ‘지혜를 얻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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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전은 지혜(智慧)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되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감(五感), 즉 눈,코,귀,혀,피부 감각을 믿지 말아야 하고, 상식적인 생각이나 의식(意識)마저도 믿을 바가 못 된다고 알려줍니다. 그래야 삶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말 골 때리는 수준의 공부를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니, 우리 같은 속인(俗人)들에게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반야'의 관점으로 본다면 차(茶)는 식품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색향미(色香味)를 따져 차를 평가하고 있으니, 차(茶)는 반야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물건이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기호 식품을 즐기기 위한 문화생활 정도라면 몰라도, 차 마시는 행위를 도(道) 닦는 행위쯤으로 품격을 올리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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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초의(草衣)나 효당 같은 불가(佛家)의 스님들이 어째서 차에 매달렸던 것일까요? 아마도 음료 식품 중에 녹차(綠茶)가 그 성질상 수행자들에게 가장 좋아할 만한 식품이었을 것입니다.

녹차는 다른 차들과 달리 다양한 맛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진정시키는 효과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이 ‘끽다거(喫茶去)’라는 화두(話頭)까지 만들면서 차를 즐겼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효당이 자신의 차를 어째서 반야로(般若露)라 했을까요? 그리고 차가 추구하는 색향미(色香味)를 부질없는 것이라고 깔아 뭉게는 반야(般若)에 자신의 차 이름을 갖다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이슬(露)’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슬’은 차(茶)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찻잎은 다른 식물들과 달리 외부적 충격이 가해지면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를테면 증기로 찔 경우나, 불로 덖어 내면 그때마다 맛이 달라지고, 또한 온도가 바뀌면 향(香)이 또 달라집니다. 이처럼 여건에 따라 변화무쌍한 맛과 향이 만들어 지거나 없어지기 때문에 이를 ‘이슬’에 비유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효당은 자신이 직접 차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마솥 사이에 두고 물과 불이 만나 어어러 짐으로 차가 완성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무(無)에서 유(有)가 왕래하는 반야로의 실체를 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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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은 스님들이 차를 덖어내던 부엌과 솥입니다.

어느덧 강의할 날자가 다시 다가왔습니다. 그 날도 일찍 강의장을 찾았는데, 주인장은 반갑게 맞으며 빨간색 오미자 차를 내왔습니다. 그는 혹여 내가 강의를 뻥크낼까 마음을 조렸다며 싱글거렸습니다.
“지난주 보다 두 명이 더 참석 했심더. 정원이 넘었다 케도 마구잡이로 들어와 할 수 없이 끼워 주었심더. 흐흐..”

강의가 재미없다는 사람이 생길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생각하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두 반갑게 날 반겼으므로 약속대로 ‘반야로’차에 대한 내 견해를 알려 주었습니다. 내 이야기에 공감했는지 모두 열심히 귀를 귀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예뻐보였습니다.

“그렇다면 효당 스님의 차도(茶道)는 어떤 형식이었습니꺼? 알려 주이소.”

이때 한 학생이 날 긴장시키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실 난 효당이 차를 마실 때 일정한 형식을 발견할 수 없었고 또한 그로부터 이를 배운 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먼저 생각할 시간을 좀 벌 요량으로 각자에게 차를 내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다구를 챙겨서 차를 내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과거 효당의 차생활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효당의 차 생활에 일정한 형식은 없었지만 신기하게 매우 자연스럽고 단순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행다법(行茶法)은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서 효당과 이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효당의 자연스러움은 동(動)과 정(停)의 일정한 형식에서 비롯된 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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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기까지!”
나는 그들의 동작들을 정지 시켰습니다. 그리고 효당 스님이 차도가 자연(自然)스러움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인간 삶은 긴장(緊張)과 이완(弛緩)이라는 두 가지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건강을 잃게 됩니다. 효당 스님의 차도는 이같은 자연의 이치를 구현(具現)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다기(茶器)를 어떻게 다루어야 자연스런 동작이 연출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학생 중 한 명이 우리 민족에게 다도와 같은 형식은 없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건 다음 시간에 이야기 합시다.”
나는 일단 발을 뺏습니다. 그 문제 역시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차의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다양한 식물들을 음료로 만들어 여기에 차(茶)라는 이름을 붙였는지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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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https://steemit.com/kr/@gudrn6677/3zzexa-and

오치님, 반가워요. 좋은 글 계속 기대합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먼저 팔로우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자주뵈요 ㅎㅎ

반가워요. 부지당 찻집 손님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