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룡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
키움출판사의 <어린이 공룡백과>를 쓸 때에도 공룡의 계통과 생김새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혼파망 수준이었지요. 이 책 나름 부모들한테서 꽤 인정받았는데(자랑 맞습니다), 저거 공부 진짜 열심히 해서 쓴 거거든요. 그런데 그때 공부한 내용과 지금 학계의 논의가 와 있는 지점의 하늘과 땅만한 격차를 보면, 절판된 현실이 아쉽지만 이 책은 잘 팔려도 절판되는 게 맞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공룡 = 초식공룡 + 육식공룡>이 아닙니다.
공룡이란 말은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위한 표현으로만 남는 추세지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육식공룡은 초식공룡이 아니라 현생 조류와 한 식구로 묶입니다. 공룡계의 대스타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아래 이미지는 최근의 학문적 조류가 반영된 것입니다.
위의 이미지처럼 고생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를 새에 가깝게 만들다가, 최근에는 다시 전통적인 파충류의 모습을 반영하는 중입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가 어릴 때는 새와 가까운 모습이었다가 성체가 되었을 때는 깃털이 빠졌을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업계(?)는 화석 하나가 발견되면 지난 연구성과가 와르르 무너지는 곳입니다. 한 학자의 수십년 노력이 화석 한 조각으로 물거품이 될 수도 있지요.
저는 생물학자들이 공룡의 계통을 어떻게 뜯어고칠지 대충 보인다고 생각했는데요. 최근 연구를 보니 이번에는 용반류와 조반류(음... 패스하겠지만 일단 그런 게 있습니다.)의 구분이 지각변동 수준으로 뒤집어질 수도 있을 모양입니다. 공룡은 나름 오래된 취미인데 통설이 변하는 속도가 이만저만해야 따라잡든지 할 텐데, 이거 손에서 놓아야 하나 고민입니다.
여기서는 공룡의 생김새에 관한 수다만 떨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공룡의 이미지를 복원하든, 상상도에 불과합니다. 실제의 모습과 상상도는 우리 예상보다 크게 다를 것입니다. 공룡 화석의 99.9%는 뼈 화석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2억년 후의 인류, 혹은 외계인이 코끼리 뼈 화석을 발굴했다고 해 보죠. 그들은 이 뼈를 가지고 코끼리를 복원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코끼리의 길고 기괴하며 유능한 코는 상상해낼 수 없을 겁니다. 또한 포유류가 대체로 털에 뒤덮인 생물군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코끼리의 상상도에서 털을 그려넣겠지요.
<티라노사우루스의 또다른 상상도>
공작새는 어떨까요.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텉을 누가 비슷하게라도 상상해서 그려넣겠습니까? 또한 한 종류의 사슴이라도 수컷은 덩치가 크고 화려한 뿔을 가진 데 반해 암컷은 작고 뿔도 없습니다. 오직 뼈만이 출토된다면 그들은 두 암수가 같은 종의 생물임을 유추해 낼 수 있을까요.
이건 어떤가요. 치와와와 시베리안 허스키의 뼈 화석만을 가지고 같은 종의 동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허스키가 늑대보다 치와와에 가깝다는 추론은, 한 개체씩의 뼈 화석만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뼈 화석만으로는 방울뱀의 독과 꼬리방울의 소리도, 카멜레온의 색 변신 능력과 기묘한 안구도 알 도리고 없습니다.
공룡 이미지 복원은 뼈에 살을 붙이고 피부의 색과 형태를 임의로 정하는 수준입니다. 뼈만 가지고는 앵무새의 색도, 독수리가 대머리라는 사실도 유추해 낼 방도가 없어요. 공룡은 녹색, 갈색의 파충류의 모습을 한 우리의 전통적인 관념보다 훨신 화려한 스타일을 가졌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식이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요. 종마다 천차만별일 것이고 암수가 다를 것이고, 어른과 새끼가 또 달랐을 테고요.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만약 DNA는 파괴된채로 병아리와 수탉이 살아있던 모습 그대로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면? 발견자들은 둘이 다른 생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병아리가 조류의 새끼라는 것 까지는 알아도 어떤 종의 새끼인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뼈만 나온다면 수탉의 벼슬은 알 수도 그릴 수도 없지요.
공룡 연구에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다른 종으로 알았던 화석이 알고 보니 하나는 성체, 하나는 청소년(?)임이 밝혀지는 경우가 있지요. 실제로 현재 공룡의 가짓수는 십 년 전에 비해 줄었습니다. 화석이 나온다고 자동적으로 새로운 종을 발견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위는 새로운 화석 발견의 결과에 따라 상상한 벨로키랍토르(벨로시랩터. 주라기공원에서 애들 쫒는 그 랩터입니다.)의 이미지입니다. 이것만 해도 나름 전통적 관념을 지키려고 노력한 거지요. 아예 아래와 같은 상상도도 있습니다.
어린이 공룡백과를 썼던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최근의 연구를 반영한 새 같은 모습의 공룡을 아이들이 좋아할까? 그리는 사람이 신경만 쓴다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공룡에 열광했던 건 파충류를 좋아해서는 아니었거든요. 크고 기괴하고 무서웠기 때문에 좋아했습니다. 조류의 모습으로 그려도 그로테스크함을 유지한다면, 공룡은 여전히 아이들의 인기스타일 겁니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상상력이 발을 뻗을 자리가 더 넓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책임 못 질 그림을 마음 가는데로 그려댈 수도 없다고 하기에는...
공룡 이미지는 원래부터도 무책임하긴 했습니다. 누군가는 조심해서 그리고 누군가는 작심하고 확 지르겠지요. 앞으로 당분간은 공룡 일러스트 구경하는 재미 하나만큼은 쏠쏠할 것 같습니다.
Cheer Up!
으아아아ㅏㅏㅏ.... 이건 거의 동심파괴 수준인데요??? 지금 까지 믿어왔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ㅠㅠ 나의 티라노사우르스는 저렇지 않아! 엉엉어엉 ㅠㅠ
그래도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약한 보팅파워지만.. 보팅하고 팔로우하고 가요~
아이들은 공룡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더군요. ㅎㅎ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이미 어릴 때부터 공룡모습에 대한 고정관념이 박힌 상태에서 저런 새모습의 공룡을 첨봤을때는 충격이 었습니다 ㅎㅎ 그래도 이후 몇년이 지나서 이제는 좀 받아들일 준비는 된 듯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공룡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고대생물이 아닌 현실의 캐릭터가 되는것 같습니다
상상의 동물로서,
앞으로 더 다양한 공룡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상식과 편견이 파괴되는 유쾌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재밌습니다! 재밌습니다!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상상도들이 널리 알려진 모습보다 저는 더 마음에 드네요. 알록달록 예쁩니다 :-D
이 때문에 영화 쥬라기공원 리부트 할 때 고민이 많았다지요 ㅋㅋ 최근 트렌드에서는 깃털을 달아야 하는데 그럼 영화의 캐릭터성이 죽는다고요. 결국 깃털은 안 붙이고 전통적인(?) 공룡을 선택했답니다. 요즘 공룡 모습 복원한 이미지 보면 알록달록해서 보는 재미가 좀 있는 거 같아요-
우와~ 공룡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 많네요! 리스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