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공부를 할 때 맷돌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깜놀했었다. 나에게 맷돌은 어릴 적 외할머니가 콩을 갈 때 쓰던 시골의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 맷돌이 인류의 식량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경이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맷돌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했다.
밀은 단단해서 그냥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단단한 무언가로 갈아야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맷돌이다. 가루가 된 밀로 죽을, 빵을, 그리고 국수를 해 먹으며 인류, 특히 서양인들은 살아왔던 것이다.
사실 지금의 맷돌은 갈판과 갈돌로 시작되었다. 그전 버전도 있는지는 확실하게 모르겠다. 넓적한 돌(갈판) 위에 밀알을 올려두고 긴 돌(갈돌)을 밀며 가루로 만드는 방식이다.
아래 사진은 청주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자세히 보면 어떤 자세로 곡식을 갈았는지 알 수 있다.
갈판과 갈돌로 시작된 도구가 맷돌로 진화한 것은 얼마나 혁신적인 일인가. 두 손으로 열심히 갈아도 잘 갈리지 않던 곡식을 한 손으로도 얼마든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강화도 보문사에 갔을 때 찍은 맷돌 사진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는 맷돌(at 강화도 보문사)]
내게 이 맷돌과 같은 존재가 또 등장했으니, 그것은 바늘이다. 그냥 바늘이 아닌 바늘귀가 있는 바늘이다.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었는데 이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정말 컸다. 동물의 가죽을 대충 끈으로 여며 입는 것과 내 몸에 딱 맞게 기워 입는 것은 빙하기에는 큰 차이를 만들어줬을 것이다. 아래 문장을 살펴보자.
네안데르탈인이 산처럼 쌓인 눈과 오랫동안 지속된 영하의 날씨에서 얼마나 잘 견딜 수 있었는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들에게는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것도 아주 작아 하찮아 보일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없었다. 바로 뿔이나 뼈, 상아로 만들어진 바늘귀가 있는 바늘이다. 《크로마뇽》 p.41
너무 평범해서, 너무 흔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생존에 있어 혁명적인 도구였다니! 이런 물건이 비단 맷돌과 바늘뿐일까. 앞으로도 (내 인지 속에) 계속 등장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