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의 고전에세이] 개인과 대중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질료(materia) 개념

in #kr-newbie7 years ago

안녕하세요? @jin90g입니다. 오늘 연재로 저질러놓은 고전 에세이 [군주론]편을 마무리 하려합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자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은 근대 정치학의 시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고전 정치철학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의 도덕 개념은 그리스 로마 철학의 도덕 개념인 ‘훌륭함arete’ 개념의 재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마치 도덕과 정치, 사실과 당위를 구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히려 도덕적으로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져 있죠.
이어서 마키아벨리는 형상질료이론을 통해 ‘군주’에게서 ‘나라에 형상을 부여하는 자’의 역할을 끌어냅니다. 군주가 군대의 총사령관이자 지휘자로서 나라에 법과 질서를 가져온다고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고전철학과 마키아벨리의 차이점은, 고전 철학은 각 국가가 가진 형상의 내용에 집중했다면, 마키아벨리는 형상을 부여하는 힘의 원천(원인)이 지금 누구에게 있느냐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국을 논할 때 힘이 군주 자신에게 있느냐, 원군에 있느냐, 용병을 샀느냐, 행운으로 지위를 얻었느냐, 인민의 지지를 받느냐 귀족의 지지를 받느냐 등을 다뤘죠.
그런데 만약 ‘군주’가 ‘형상을 빚어내는 도공’과 같은 존재라면, ‘군주’에게는 반드시 ‘질료’ 다시 말해 군주의 디자인대로 빚어질 점토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질료(materia) 개념이 나오고, 이 질료의 성질과 군주라는 형상 부여자의 성질 사이의 상호관계에 따라서 군주국이 굴러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대망의 마지막 군주론 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질료개념에 대하여’ 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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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질료(materia, matter) 개념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마지막장, 이탈리아를 야만족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블라블라....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깁니다. (책은 똑같이 강정인 역입니다.)

-“...... 그리고 여기(이탈리아)에서 발견되는 질료(materia, matter)가 신중하고 역량있는 군주에게는 영광을, 그리고 모든 인민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형태로 빚어질 기회를 과연 확실히 보장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175p

-“이탈리아에는 어떤 형상으로든 빚어낼 수 있는 좋은 질료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다음의 구절을 봤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마키아벨 리가 근대 정치학과는 담 쌓은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정치학은 일종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 정치철학의 시대적 재해석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이 구절에서 말하는 “질료” 가 무엇을 뜻하냐는 것입니다. 당장의 힌트를 뽑아봅시다.

  1. 이탈리아의 질료는 이탈리아에 있다.
  2. 군주가 군사업무를 통해 질서를 부여하면, 질료는 그 질서에 따라 빚어진다.
  3. 성공할 경우 군주에게는 영광을, 모든 인민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4. 질료는 다만 빚어질 기회를 보장한다. 스스로 형태를 빚지 않는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기고 질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삼갑니다.

-“이탈리아인들의 힘, 능력 및 재주가 얼마나 탁월한가를 보십시오. 그러나 일단 군대라는 형태로 싸우는 일에서는 결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도자의 유약함 때문입니다.” 178p


(개인단위로 강한 존 스노우와 북부 자유인들 vs 잔혹한 렘지 볼튼의 질서잡힌 군대 / 왕좌의 게임6 서자들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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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개인과 대중

그렇다면 도대체 질료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우선 마지막 구절에 언급된 사안에 직접 대응하는 것은 개인입니다. 개인은 잘 싸우는데 이탈리아 군은 왜 이 모양이냐... 이런 질문이죠.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그 책임을 군주에게서 찾습니다. 왜냐하면 군주국에서 군주는 법질서와 군대의 원천이기 때문이며, 군주가 그것들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군대의 형태로 빚어질 수 있는 사람이 질료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단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개인 1인은 질료가 될 수 없습니다. 무슨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처럼 ‘원맨 아미’ 같은 것을 떠올리지 않는 다음에야, 개인이 군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군대의 질서를 받아들이려면 최소한 개인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집결된 개인들이 군주의 형상을 받아들이려면, 그들은 먼저 형상이 없는 질료 상태, 군대의 형태로 재편되지 않은 느슨하고 자연스러운 응집 상태로 뭉쳐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 사이에 어떤 질서나 형상이 있다면, 이들은 이미 질료가 아니라 질료+형상의 복합체로서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면서 군단인 예외적인 경우의 예시... 는 아니지... 저그 군단이 질료 역할이잖아.)

그렇다면 마키아벨리 그가 생각한 질료 개념은 “정치 공동체(혹은 군대)라는 하나의 질서에 묶여있지 않은 상태로, 느슨하게 응결되어있는 개개인 인민들”을 뜻하며, 그 핵심 성질은 “수동성(피동성)”이 됩니다.

이러한 이해는 군주론의 다양한 구절들을 일관되게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가령 술탄국과 같은 절대군주국을 정복함에 있어서 정복 후에 단지 술탄 가문을 몰살하는 것으로 그 지역은 매우 안정되게 통치되는데, 그 이유는 모든 인민이 술탄의 형상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성 외에 다른 자율성을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봉건영주들로 느슨하게 엮인 프랑스 같은 나라는 혼란을 일으켜 침투하기는 쉽지만, 스스로를 군주와 대등하게 여기는 영주들이 여럿 설치고 다니기 때문에, 마치 손발이 스스로 뇌를 갖고 따로 움직이는 꼴처럼 다스리기 힘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군주국이 공화국 지역을 정복할 때 완전히 정복하려면 반드시 도시 자체를 파괴하고 절멸시켜야 한다며, 마키아벨리는 “잊혀지지 않는 ‘자유’라는 옛 전통”은 아무리 군주가 선한 통치를 펼쳐 인민들을 만족시켜도 공화국의 인민들 사이에서 되살아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달리 말해 공화국의 핵심은 자유, 자율성이고, 공화국의 시민들은 자율성이 강해 그들 스스로 하나의 형상 빚는 자(군주)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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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인민=질료 개념이 갖는 한계, 인민의 자율성은 어디에?

마키아벨리는 역사학에 기반 해서 정치학을 전개하는 사람이라 그의 이론은 다분히 실증적이면서, 동시에 완전하게 일관성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사람이 이미 복합체로 존재하고 복잡한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죠.
가령 군주국에서 인민이 질료고 군주는 형상을 부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개인도 전적으로 수동적인 질료이거나, 전적으로 형상을 부여하는 능동적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살펴봐도, 이미 형상을 부여하는 능동적인 측면과 동시에 외부 자극에 따라가는 수동적인 측면에 혼재합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인민=질료 개념은 이론적 차원에서 일관되게 그의 주장을 정리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지, 그가 인민을 순도 100% 질료로 이해했다고 보시면 곤란합니다.

만약 인민이 순도 100% 질료적이라면, 첫 번째로 공화국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공화국의 핵심은 자유이고, 공화국에는 군주가 없기 때문에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군주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능동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더불어 만약 인민이 순도 100% 질료적이고 수동적이라면, 군주가 인민에게 신망을 잃거나 축출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탈리아에 빈번히 일어났으며, 마키아벨리 본인도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군주가 취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합니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인민의 재산과 명예”를 이야기 하며, 이것을 건드리면 아무리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삶에 찌든 백성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군주를 암살하고 복수하려 들며, 그 원한을 잊지 않는다고 설명 합니다.

달리 말하면 “재산과 명예”는 수동성에 찌든 질료적인 인민들 조차 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 자율성, 능동성의 구체적인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재산과 명예가 인간 자율성의 디폴트값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재산은 쉽게 돈이나 재물 등이고, 명예는 좀 민망한데,,,, 당시가 전근대 사회고 남성중심사회라서,,,, 남의 여자를 추행하거나 건드리는 것을 일종의 사회적 살인 행위이나 모욕죄로 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키아벨리가 그렇게 묘사해놨더군요. // 요즈음 같으면 어떤게 될 까요?)

더불어 일단 견고한 군주국을 유지하던 군주는 한번 나라를 잃어도 한 두 번은 쉽게 나라를 수복할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하는데, 이는 인민들에게 적용된 형상이 견고할 경우,, 군주가 없어도 그 자체로 하나의 질서와 자기동일성을 충분히 습관처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도 인민들에게 어느정도의 자율성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죠.


(인민이 순도 100% 수동성, 질료성을 띈다면.. 애초에 탈북자는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탈북자가 여럿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 개개인을 비롯해 인민도 전적으로 질료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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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정리

이로서 마키아벨리의 형상질료 개념을 살펴봤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고전철학의 르네상스라는 측면에서 정치철학을 전개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형상을 부여하는 능동성과 형상에 따라가는 질료적 성격이 있습니다. 전자는 군주 혹은 자율적인 공화국 시민들의 능력이고, 후자는 정치군사적으로 재편되지 않은 느슨한 개인집단에게서 두드러진 성격입니다.
군주는 군사업무를 통해 이들에게 형상을 부여하고, 인민들은 군주의 디자인에 따라 군대, 정치 집단으로서 재편됩니다.
그리고 이를 잘 유지하기 위해 군주는 보통은 잔인하다거나 이상하다고 보여지는 행동들을 필요할 때 할 수 있어야 하죠. 군주만의 미덕은 군대를 통한 형상 부여자 역할을 최대한 잘 수행하는데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근대정치철학의 아버지라기 보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의 후계자 및 재해석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모든 것을 논리가 아닌 역사사례의 통찰을 통해 실증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례를 하나의 질서로 묶어내는 것이 여간 힘든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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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에세이 3부작이었습니다.

다들 그동안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생애부터 그의 “경제적 조화”이론을 천천히 다듬어 보는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겠습니다.

특히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경제적 조화 이론은 코인 모르는 저 같은 문과 충과 더불어, 요즈음 너무 복잡해져 경제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고전 경제학 시기의 경제학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됐고, 어떤게 쟁점이 됐는지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물론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PS. 로저 버... 라는 분이 ‘프레데릭 바스티아’에 관심을 쪼금 갖고 있다고 하니.... 여러분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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