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은 먹으면 행복해야 한다.
애초부터 계획이 있었다거나 한 것은 아닌데, 우리는 하루에 한 개씩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것에 재미와 동시에 의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 간 것도 아니고, 현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도 아닌 '아이스크림'에 왜 그렇게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긴 한데, 어찌됐든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은 군것질의 제왕에 속하는 것이니 만큼, 그 매력에 일정 기간 좀 더 깊이 심취 했다고 해서 영 이해 못할 일은 아닌것 같다. 게다가 관광지에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많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 분위기에 절로 함께 동참하게 되기도 하고...
헬싱키의 도처에 있는 아이스크림차는 크게 두 개의 브랜드인 듯 보이는데, 하나는 '곰표'이고 하나는 '펭귄표'다. (내 마음대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곰표와 펭귄표라니 북유럽에도 아이스크림에도 참 잘 어울리는 마스코트가 아닌가. 애교도 있고.
그 둘의 메뉴 차이가 크다거나 한 것은 아니어 보였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사서 먹다 보면 '어, 펭귄인 줄 알았는데 곰이었네' 하는 식이다. 2~3유로면 와플콘에 한 스쿱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데 양을 의외로 인심 좋게 주기도 했거니와 맛이 썩 좋아서 먹을 때 마다 기분이 좋았다 (당분섭취의 사이드 이펙트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 와플콘이라는 것이 내심 큰 매력이었는데, 모든 아이스크림 가게가 기본적으로 와플콘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대체로 컵에다 받아먹는 것을 고르는 나도 와플콘을 골라 먹었다. 와플콘의 퀄리티에 따라 그 집의 실력을 평가하기도 하고.
스톡홀름의 아이스크림 가게는 헬싱키와는 그 양상이 아주 다르다. 일단 노점들이 본격 아이스크림만 취급하는 곳은 드물고 주로 핫도그를 파는데 “흠, 이것 만으로는 성의가 약간 없어 보이니까 혹시 모를 아이스크림 사냥꾼을 위해 구색을 좀 갖추어볼까?” 하는 느낌으로 아이스크림도 옆에 놓는 형국이다. 그러고 보니 헬싱키에서는 핫도그 노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말이다. 두 나라가 제공하는 관광객용 군것질 꺼리의 느낌이 썩 다르다. 결국 우리도 헬싱키에서는 떠올려보지도 않았던 핫도그를 사먹게 되었으니까 환경은 무서운 것이다.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라니 단어만 배열해 놓아도 참으로 다른 심상이다.
대신 스톡홀름의 감라스탄에는 진정한 아이스크림 전문점들이 몇 개 있다. 그 자리에서 와플콘을 구워 아이스크림을 담아주는 곳들인데, 굽다가 망가졌거나 한 와플콘을 모아놓고 시식하게 내놓은 바구니가 있는 가게도 있어, 지나가다가 맛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스톡홀름이 관광객에게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자세에 있어서 더 진지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브뤼셀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겨를도 없이 온갖 단 것들이 입안을 채우고 있기 일쑤였기 때문에 달리 아이스크림 사냥을 하지 않았다. 와플과 초콜렛과 프릿츠가 제공하는 탄수화물이 생성하는 기쁨 호르몬의 효과는 대단하니까. 뇌에 호르몬과 당분을 공급하는 일을 충분히 수행하고도 남은 당들은 몸의 중앙 언저리에 잉여의 노란 덩어리들을 착착 쌓아간다.
엔트워프에서는 역 앞에서 발견한 무려 '오스트레일리아 핸드메이드 아이스크림'을 표방하는 캥거루표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았다. 맛과 양 모두 아주아주 만족스러웠을 뿐더러, 북쪽의 물가 보다는 아무래도 덜 부담스러운 것이 흡족함을 배가시켰다. 엔트워프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동시에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살다니!!!
네덜란드에서는 주로 벤&제리를 이용했다. 웬일인지 핸드메이드 아이스크림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도 했거니와 벤&제리도 꽤 괜찮은 맛을 자랑하니까 뭐... 별달리 아쉬울 것은 없었다. 미국인 벤과 제리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체인점이 온 유럽을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우정이 왠지 돈독했을 것 같기도 하고...
코펜하겐의 니하운에서 아이스크림 전문체인이 보이기에 반가운 마음에 냅다 시도해보았는데, 감라스탄의 와플콘에 비해 너무나 퀄리티가 떨어지는 맛에 실망하고 말았다. 아이스크림 자체의 맛 역시, 서로 다른 맛인데도 같은 막을 씌워놓은 것 같은 개성 없는 느낌을 풍겨서 혀에 무언가(무언가와 가장 비슷한 것을 말해보자면, 어릴 적 먹었던 불량식품 중 얇은 필름 같은 걸 한 장씩 녹여먹는 무슨 맛인지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 정도랄까...) 하나를 씌우고 먹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적으로 음냐음냐 이게 무슨 맛이지? 해야 하는. 그 후에 다른 집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괜찮은 집은 없나 찾아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들어오는 곳이 없었던 중에 거의 마지막 날 즈음, 디자인박물관 근처의 반 지하 가게에서 그나마 괜찮은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하나쯤은 건져서 가는구나 하고 안심하게 되었다.
확실히 서양 사람들이 우리보다 아이스크림을 부담 없이 즐기는 듯 보이는데, 특히나 아저씨들 둘 셋이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담소를 나누며 앉아있는 것을 보면 아가씨들이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맛있게 피면서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한 쾌감을 선사한다.
역시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은 먹으면 행복해야 한다.
오늘 서울의 날씨는 아이스크림이 잘 어울린다.
FINLAND
비어 있어 여유로운
북유럽처럼
본 포스팅은 2013년 출판된 북유럽처럼(절판)의 작가 중 한 명이 진행합니다.